김우빈은 영화 '스물'에서 그간 지켜왔던 모든 멋진 모습들을 내려놓았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달라고 떼 쓰는 철부지 차치호에게서는 능글맞고 어른스러운 김우빈의 자취를 좀처럼 느낄 수 없다.
이번에도 김우빈의 신공은 발휘됐다. 그는 다소 수위 높고, 민망한 대사들도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며, 치호 캐릭터에 제대로 색을 입혔다.
스물일곱의 김우빈, 그에게 영화 '스물'은 어떤 '스물'의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다음은 김우빈과 취재진의 일문일답이다.
▶ 영화 '스물', 차치호 캐릭터 성격이 독특해서 해석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대사의 문제였죠. 치호의 유별난 대사들 때문에 도저히 답이 안 내려지더라고요.(웃음) 원래 평소에 거의 모든 대사들을 경우의 수로 갖고 가는데 현장 분위기를 맞춰야 되니까 2배 정도를 가지고 갔어요. 여러 버전이 있었는데, 현장에서도 답이 안 내려져서 감독님한테 '고민했던 거 다 할 테니 골라 쓰시라고 했죠.
▶ 그래도 감독님이 쓴 대사니, 특별한 디렉션이 있지 않았나요?
감독님도 모르죠. 그런 말을 해봤어야 알잖아요.(웃음) 치호라는 인물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쓰긴 썼는데 감독님도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저는 치호처럼 용돈 달라고 떼 써 본 적도 없고, 되게 바빴어요. 괜히 성인이니까 혼자 해보겠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도 하고…. 드디어 제가 그렇게 하고 싶었던 모델학과 공부를 하니까 하루 하루가 신났죠. 술자리는 일 년에 네 다섯 번 정도밖에 안 했고, 무조건 연습실과 기숙사 헬스장 오가고 그랬어요. 제 판이 펼쳐진 거죠. 그러다가 2학기 때 데뷔하게 되면서 바빠졌어요.
▶ 스물 일곱 살에 스무 살을 연기했는데 사랑에 대해선 어때요? 스무 살의 자신보다는 좀 더 알 것 같나요?
스무 살에도 나름 연애도 해보고 그랬지만, 뭘 알겠어요. 치호 같았을 것 같더라고요.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랑이었던 건가, 좋아했었던 건가 싶기도 하고…. (사랑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아요. 지금은 답하기가 힘드네요.
▶ 차치호와 김우빈의 스무살은 굉장히 다른데, 닮은 점 하나는 있나요?
친구와 만났을 때의 밝은 에너지, 그 느낌은 닮았어요. 영화에서 보면 치호는 숨 쉬는 게 목표인데 그건 남들이 보는 치호이고, 저는 그 친구가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대본을 보거나 이럴 때 펼쳐 놓고 보지 않고 상상하는 시간을 가지거든요. 일대기를 많이 그리기 위해 전사를 만들고, 그 사이 사이 일을 만들어요. 그 때문에 가만히 있는 시간이 많죠.
감독님이 문젭니다.(웃음) 당연히 여자 분들은 궁금하죠. 감독님 같은 분도 계시지만 일단 과반수 이상이 그렇지 않아요. (여자 이야기가) 주가 될 수 없는데 주가 되는 날도 있죠. 웬만하면 저는 그래요. 여자가 (이야기)하는 만큼, 남자도 한다고 생각해요.
▶ 친구 세 명과 함께 촬영한 소감이 궁금해요.
현장에서 정말 친한 친구 연기를 하다 보니 거기에서 나오는 특별한 효과가 있어요. 어느새 저희도 친한 친구가 돼서 매일 연락하고 지냅니다. 서로 약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애드리브를 했을 때 말을 받아주는 특별한 호흡과 타이밍. 그런 것들로 장면이 재밌고 더욱 풍성해졌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이 특별한 디렉션 없이 믿고 던져줬기 때문에 더 똘똘 뭉치고, 많이 공유하고, 대화를 나눠서 진짜 친구가 됐죠.
▶ '스물' 역시 B급 정서와 무관하지 않죠? 요즘 이런 정서의 영화들이 극장가에서 잘 되고 있어요.
B급 정서나 '병맛' 같은 느낌은 영화를 보면 '아, 이거구나' 할 것 같아요. 처음에는 관객들이 당황할 지 몰라도 어느 새 녹아들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일단 스물을 앞둔 친구들이나 15살 이상인 관객들은 모두가 공감 가능한 소재가 아닐까요? 불완전한 모습으로 자라나는 새싹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는 경쟁작이라 안 보게 되더라고요.(웃음)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차치호 할래'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어요. 영화 '기술자들' 촬영 중간이라, 나올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었죠. 그래서 한 달 늦게 합류했어요. 부수적인 스케줄이 많이 있어서 무리해야 할 수 있는 스케줄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진하고 싶었어요. 놓치면 후회할 것 같고, 다른 배우 분이 하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았거든요. 저는 일단 작품을 중요시하고, 그런 걸 따지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연출을 잘하니까 감독님이 되신 건데, 이제 시작하는 입장인 제가 평가할 입장은 아니죠. 그냥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은 진짜 천재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결정했어요. 시나리오에 의심할 겨를이 없었으니까요.
▶ 김우빈 씨는 굉장히 쉼 없이 일하는 20대 남자 배우 중 한 명이죠. 그런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나요?
영화나 드라마를 가리고 싶지는 않아요. 각자의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드라마 한 편이 끝나면 촬영하는 동안은 '끝나고 쉬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또 며칠 지나지 않아 드라마 대본을 찾고 있어요. 쉴 때 작품 검토하면서 조금 더 저에게 맞는 옷을 찾는 거죠. 늘 휴식을 원하지만 막상 오면 불안해져요. 이번에 처음으로 차기작을 고르지 않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