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검찰총장 직속으로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지검장)이 꾸려져 진행중인 수사에 행정부 최고 수장과 직속 장관이 잇따라 발언을 하는 것은 수사의 독립성을 해할 뿐 아니라 수사를 흔드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4.29 재보선 선거 당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성완종 특사 관련 의혹을 규명해야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 "단서가 있을 때에는 수사권을 발동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황 장관은 사면 의혹과 관련해 수사에 착수하는 것이 맞느냐는 이춘석 새정치민주연합의 질의에 "범죄단서가 있을 때는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단계가 아니다"면서도 "범죄 단초가 발견되지 않는다면 수사를 할 수 없는데 단초가 생긴다면 살펴봐야 하지 않느냐는 원론적인 말씀을 드린다"고 답했다.
아직은 수사 검토의 단계가 아니지만 범죄 단초가 발견되면 언제든지 수사에 착수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그러면서 "금품이 오고가는 경우 말고도 여러 범죄가 있을 수 있다"며 범죄 단초의 대상을 포괄적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황 장관은 성 전 회장의 사면에 대해 "단계에 걸쳐서 사면이 거듭되는 일은 이례적이고 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이는 성 전 회장의 특사와 관련해 금품수수 외에도 광범위한 형태의 불법 정황이 포착되면 수사 착수를 할 것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황 장관은 "검사는 수사가 시작되면 관련 증거들을 모은다. 그 과정에서 비리(혐의)가 생긴다면 범위 제한없이 철저하게 수사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수사 단서가 생기면 철저히 수사하도록 검찰을 지휘하겠다"고 강조했다.
황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전날 박 대통령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발언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아직 범죄 단초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는 했지만 수사 착수 가능성을 활짝 열어둔 것이다.
범죄 수사 착수의 권한은 오로지 검사 개인과 이를 지휘하는 검찰총장에게 있지만 법무부장관이 수사 착수에 여부에 대해 상당히 자세한 지침을 내린 것.
현 정권에서 반복되는 수사가이드라인 논란에 대한 검찰 내부의 불만이 고조되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도 검찰 조직의 독립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박주민 변호사는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 검찰은 수사를 착수할수도, 안 할수도 없는 이상한 상황에 몰리게 된다"며 "사면과 관련한 수사를 진행된다고 해도 누가 독립적인 수사라고 생각하고 신뢰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박 변호사는 이어 "대통령의 발언이 오히려 검찰의 성역없는 수사에 방해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며 "검찰의 독립성 논란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고 의견을 밝혔다.
검찰의 인사권에 청와대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상황에서 수사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위 검사직에 대한 인사권을 행정부가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추상적인 표현이라도 수사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해외의 경우에 검사장을 직선제로 뽑거나 평검사들이 사법최고위원회 위원을 뽑는 등 검찰 인사가 어느정도 독립돼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상 청와대가 검찰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수사가이드라인이 더욱 위험하다"는 것이다.
정치의 영역이 검찰의 영역으로 넘어오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도 고조되고 있다.
모 검찰 고위 간부는 "정치의 영역과 검찰의 영역은 절대적으로 다른 성격이다. 한쪽은 활발히 논쟁하고 한쪽은 처벌하는 성격이다"며 "자꾸 정치의 영역이 검찰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두 쪽 모두 치명상을 입을 수 밖에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