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이 12일간의 남미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뒤 건강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완구 총리의 사표를 수리하고 이어 정국현안에 대한 입장까지 밝힌 것은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이완구 총리 사퇴로 인한 국정 혼란상을 조기에 매듭짓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현안에 대한 인식을 보면 오히려 정국 수습보다는 혼선이 가중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의혹의 본질과 이완구 총리의 사퇴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은 국민 여론과 동떨어져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개입된 비리와 관련한 의혹들이다.
이로 인해 총리까지 물러나는 사태가 빚어졌다.
대통령은 국민에 심려를 끼쳐드려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국정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총리의 사의를 수용한 것이 안타깝다는 것에 더 무게가 실려있었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전현직 비서실장과 친박 실세 의원들의 자금 수수의혹과 관련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고 다만 진위 여부는 엄정한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고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을 뿐이다.
또 박 대통령 자신과 최측근의 문제를 정치권 일반의 문제처럼 표현하면서 정치개혁을 필요성을 강조하며 핵심을 비켜갔다.
오히려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졌던 고 성완종 회장의 특별사면 문제였다.
측근들의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공정한 수사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지켜보자는 입장을 보이면서 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진 성 전회장의 특별사면에 대해서는 부적절했다고 단정지었다.
검찰의 수사의 물꼬를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인의 비리 의혹 진실규명에서 특별사면 과정의 문제점으로 돌리려는 의도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앞으로 검찰 수사가 현정권 실세들의 금품수수 의혹보다는 과거 정권의 특별사면으로 초점이 맞춰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경제인에 대한 특별사면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마치 과거 대통령들의 특별사면을 부적절한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논리대로라면 얼마 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특별사면을 건의했던 최경환 경제부총리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최 회장측의 로비를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정권의 악재가 터질때마다 모든 정치적 현안들을 편가르기와 물타기, 엉뚱한 곳으로 화살을 돌리며 국면을 전환해왔다.
국정원 댓글사건이 문제가 됐을 때는 과거 정부의 NLL발언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로 맞불을 놓았고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진상규명 문제마저 진영논리로 접근해왔다.
이번에도 또다시 같은 방식으로 위기를 타개해 나가려 한다면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나아가 대통령 측근이고 여당의 실세들이라 해서 검찰 수사와 법의 심판을 피해나간다면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법치나 정의가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
대통령의 국정현안에 대한 입장은 이 사건의 본질을 가리고, 선거를 하루 앞두고 오히려 정쟁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정국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