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박 12일이라는 힘겨운 중남미 순방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총리 낙마와 친박 실세 정치인들의 금품 수수설로 빚어진 국정공백과 대결 정국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박 대통령의 머리가 지근거렸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27일 공식 일정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순방에 따른 육체적 피로와 함께 고산병까지 겹친 심신을 달래야할 처지임에도 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국내 정치 상황이 대통령의 휴식을 용인할 만큼 녹록치 않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남미순방 비행기 출발 시간을 늦추면서까지 김무성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27일 귀국 이후 총리 문제를 결론내겠다"고 밝혔다.
국민은, 정치권은 27일중 박 대통령의 총리 사표 수리가 이뤄질 것으로 기다리고 있다.
박 대통령의 순방 기간 동안 이완구 총리는 국무회의도 주재하지 않는 등 사실상 식물총리나 마찬가지였다.
총리실도 이 총리의 퇴임식을 준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머지않아 총리 사표 수리에 따른 후임 인선을 매듭지어야 한다.
김무성 대표는 국민대통합 차원에서 호남 총리론을 거듭 제안했으며 청와대와의 교감설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새누리당 내 충청 의원들과 친이계 의원들은 호남 총리론에 대해 부정적이다.
박 대통령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총리 사표 수리와 후임 인선 문제가 아니라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한 대국민 사과다.
박 대통령 개인적으로는 '내가 뭘 잘못해 또 사과를 하느냐'는 인식을 할 수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말했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이란 자리는 국정의 알파에서부터 오메가까지의 무한 책임의 자리인데다, 친박 핵심 실세들이, 특히 전 비서실장 두 명이 금품수수설에 휘말렸으며 총리 인선을 잘못한 데 따른 인사 실패의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28일 국무회의로 예상되는 박 대통령의 사과 수위가 벌써부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럴지라도 사과를 하지 않고 넘어갈 국면이 아니다.
국민의 싸늘한 여론은 별개로 치더라도 여권 내 여론도 차디찬 얼음장 같다.
사과를 계속 미루거나 자칫 무늬만 사과로 그쳤다간 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대국민 사과 이후 여론이 악화될 수도 있고 여당 내에서부터 불만이 제기될 개연성도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를 우려한 듯 2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은 이 문제(사과)에 관한 대통령의 정직한 목소리를 듣기 원한다"며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진솔한 말씀을 직접 해주실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대통령 사과' 발언에 이어 초재선 의원그룹 내에서도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은 27일 '아침소리' 정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중남미 순방으로 고생하셨지만 정치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해 대통령의 입장 또는 대국민 사과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가 국정개혁과 정치개혁의 필요충분조건임을 강조한 것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사과는 기정사실이라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 수위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수위를 놓고 고민 중에 있으며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29일로 다가온 재보궐 선거와 공무원연금 개혁 등을 위한 동력을 살리려는 의도로 읽힌다.
사실 공무원연금 개혁 등 정부여당의 국정 개혁이 성완종 리스트와 이완구 총리의 사퇴 파문에 휘말려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진퇴양난의 국면이다.
대통령의 단순한 사과가 아닌 '책임성'이 담긴 진솔한 사과만이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촉발된 국정 난맥상 타개의 '출발선'이라는 인식이 여권 내에 팽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