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된 협정문안을 놓고 한국 정부와 일부 언론은 '한국의 핵주권을 찾는 첫 발자국'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그동안 양국간 가장 큰 쟁점이었던 '핵연료 재처리'문제는 사실상 진전을 이루지 못해 '절반의 성과'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 최대 쟁점 '핵연료 재처리' 문제, 여전히 미해결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의 가장 큰 쟁점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였다. 원자력 발전소의 핵연료는 사용 뒤 안전한 장소에 폐기보관해야 한다. 지하 100미터 이상의 깊숙한 곳에 10cm이상의 콘크리트로 방을 지어 사용후 핵연료나 방사능에 오염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작업복·장갑 등을 방사능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보관 한다. 사용후 핵연료는 매우 강한 방사능을 방출하는 고준위 폐기물이며 작업복·장갑 등은 상대적으로 방사능 방출이 낮은 중·저준위 폐기물이다. 문제는 국내에 고준위 폐기물을 보관할 수 있는 방사능물질폐기장(방폐장)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중저준위 폐기물의 경우 경주에 방폐장이 마련돼 가동에 들어간다. 하지만 고준위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방폐장은 없어서 각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에 보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국내 원전 23기가 쏟아내는 고준위 폐기물은 연간 750톤 정도로 2024년이면 임시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른다.
한국 정부가 핵연료 재처리 권리를 미국에 집요하게 요구한 것은 바로 핵연료 재처리를 통해 고준위 폐기물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핵연료 재처리는 일종의 재활용 과정이기도 해서 다 쓰고 난 폐 연료봉에서 우라늄235를 추출해 다시 원전의 연료로 쓸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와 정치권, 워싱턴의 싱크탱크들은 한국의 재처리 권리 요구에 냉담한 반응을 보여 왔다. 북한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해 '영변 핵발전소의 핵연료 재처리를 중단하고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행하라'고 요구해왔는데 아무리 평화적 이용이라 해도 한국에 대해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허용하면 그동안 미국이 애써 지켜온 '세계적 비확산 체제'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미 국가안보국(NSC)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이었던 게리 세이모어는 지난 2013년 한 세미나에서 "미국은 한국의 재처리 요구를 핵확산을 우려해 바람직스럽게 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한국 정부가 원자력협정 재개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제적 의도 외에도 말하지 않는 의도가 있다"며 "북한과 일본이 핵연료를 재처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도 (미국의 핵우산 이외에) 별도의 방안을 갖기를 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섀론 스쿼소니 확산방지국장 역시 "경제성을 이유로 한국이 재처리 권한을 요구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며 "한국의 재처리 경제성은 러시아나 그 외의 나라보다 높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미국 정가의 거부감이 커지자 한국 정부가 들고 나온 방안이 '파이로프로세싱' 안이다. 기존 재처리 방식은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플루토늄이 나오는데 이 방식은 플루토늄이 나오지 않는다. 핵무기 원료로 쓰이는 플루토늄이 나오지 않으니 한국이 핵무기 개발을 할 것이라는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는게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한국의 주장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이로프로세싱'기법 자체가 아직 효율성을 검증받지 못했고, 한국이 자체적으로 재처리하기 보다는 영국이나 프랑스·러시아 같은 제3국에 맡겨 위탁 재처리하는 편이 훨씬 편리하고 경제성이 있다는게 미국 정부의 입장이다.
결국 재개정된 이번 협정에서도 핵연료봉 재처리 문제는 파이로프로세싱 기법에 대한 한미간 공동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양국 정부가 합의해 추진해 나가는 메카니즘을 마련하는 어정쩡한 선에서 봉합됐다. 파이로프로세싱 기법이 기술적으로 타당해도 미국 정부가 경제성이나 핵확산 우려를 감안해 재처리에 동의하지 않으면 한국의 재처리는 요원할 수 밖에 없다.
◇ 두번째 쟁점 '우라늄 농축'
보통 원전 원료는 우라늄235인데 천연 우라늄의 경우 이 농도가 매우 낮다. 원전 원료로 쓰기 위해서는 이 동위원소의 농도를 8~9% 정도까지 높여야 한다. 이 과정이 '농축'이다. 문제는 농축을 과도하게 하면 원전 원료가 아니라 핵무기 원료가 된다는 점이다. 핵무기 원료로 쓰이는 우라늄 농도는 90% 정도이다. NPT는 저농축과 고농축의 기준을 20%로 설정해 놓고 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원전 원료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는 한국이 천연 우라늄은 수입하더라도 농축만큼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원전 수입국에서 벗어나 세계5대 원전강국이자 원전 수출국으로 발전한만큼 우라늄 농축 권리를 확보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며 지금은 농축 비용이 싸지만 위탁업체들이 언제든 카르텔을 형성해 농축가격을 올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미국은 "세계적으로 원전이 축소되면서 우라늄 농축 시장은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한국은 캐나다와 호주 등 외국과 핵연료 장기계약을 맺은만큼 핵연료 공급불안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해왔다.
미국 정부는 또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각국이 원전계획을 재검토하면서 핵연료 수요가 많지 않아 원전기업인 프랑스 아레바가 미국 아이다호에 핵연료 농축·재처리 시설을 건설하려던 계획을 보류한 것은 물론 미국의 웨스팅하우스마저 핵연료 재처리시설을 개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점을 들어 핵연료 농축과 재처리 능력이 원전수출에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결국 '20% 미만 저농축은 양국이 합의해 추진할 수 있는 메카니즘을 만들기로' 하는 선에서 양국은 우라늄 농축 문제를 넘어갔다.
이처럼 한국 정부가 핵연료의 평화적 이용과 경제적 활용 관점에서 원전협정 문제를 접근하지만 미국은 정치적·세계적 비확산 체제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 왔다. 한국 정부가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얻기 위해서는 이 문제를 역시 미국과 같은 프레임으로 바라봐야 한다. 북한 핵문제와 평화정착 문제를 남북이 주도적으로 풀어 나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