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좀…. 힘들 것 같아요.", "그 관련해서는 인터뷰 안 하십니다."
기자가 지난 1일부터 세월호 참사 1주기 취재를 하며 열 번도 넘게 들었던 말이다. '스케줄이 바빠서', '세월호는 민감한 문제라서'. 이유만 달랐을 뿐 거절은 매한가지였다.
직접 만나는 인터뷰는 물론, 서면 인터뷰, 전화 인터뷰까지 원천 차단됐다. 기자는 이들에게 한 가지 질문도 할 수 없었다.
당초 잘 풀리리라 생각했던 취재가 이렇게 난항에 부딪칠 줄은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다. 국민 모두를 슬픔에 빠지게 했던 세월호 참사 1주기의 상징성 때문이었다. 연예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1주기를 맞아 이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터뷰 요청은 소속사 측에서 단칼에 끊어내기 일쑤였고, 지금까지도 이 요청이 연예인에게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다.
CBS 노컷뉴스 문화연예팀이 수 십 차례의 실패 끝에 결국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이는 단 5명이었다. 방송인 겸 방송작가 유병재, 배우 최민수, 배우 정진영, 팝페라 가수 임형주, 개그맨 김미화.
누구보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유병재는 밤늦게 기자의 전화를 받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아, 그 이야기(세월호 이야기)는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말에서 유병재가 '세월호 1주기' 인터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첫 인터뷰가 이뤄졌다.
평소 민감한 사회 현안이 있을 때마다 소신 발언과 행동을 보여온 정진영의 경우는 전화가 연결되지 않아 이른 아침 인터뷰의 취지를 설명하는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그날 밤 9시 30분쯤 문자 메시지 한 통이 왔다. '정진영입니다. 너무 늦었지요? 촬영이 이제 끝나서요. 12시까지 안 잘 테니, 그 전에 아무 때나 전화 주시면 됩니다.' 정진영과의 인터뷰는 이렇게 성사됐다.
최민수는 운좋게 인터뷰가 성사된 경우다. 그는 쇼케이스 현장에서 불쑥 세월호 이야기를 꺼낸 기자를 외면하지 않고, 진심어린 속마음을 들려주었다.
김미화와는 아예 매니저로부터 휴대폰 번호를 받아 연락이 됐다.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벅찬 일정에도 불구, 그는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하고 기자와 만남을 가졌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도 취재진의 인터뷰 제안에 흔쾌히 응했고, 담담하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했다.
한 관계자는 "솔직히 세월호 인터뷰는 힘들다. 정치적인 사안이 아닌데도 인터뷰를 하게 되면 비난이 쏟아지고 프레임 안에 갇히게 된다. 소속사도, 연예인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자칫 잘못하면 연예 활동에도 영향이 갈 수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연예인을 쓰지 않을 때, '쓰지 않겠다'고 말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밥줄이 걸린 일이니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암묵적인 연예계 분위기를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당일, 많은 연예인들은 SNS를 통해 노란 리본을 달고 추모를 이어나갔다.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세월호의 상처를 위로한 셈이다.
영국 유명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의 악당 '볼드모트'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다. 모두가 그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세월호는 각계를 불문하고 마치 '볼드모트'와도 같다. '세월호' 세 글자조차 내뱉을 수 없고, 당연한 추모까지도 조심스러운 상황이 된 것이다.
정치 논리에 갇혀 두려움의 대상이 된 세월호 참사. 이번엔 그 두려움이 또 한 번 세월호를 침몰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