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의 '쩐(錢)도라 상자' 열리니 "소비자가 피해자"

종편인가, 마케팅 전문 채널인가

8개 언론·시민단체가 주최한 '종편 광고영업 추악상 드러낸 MBN X파일 진단과 대응방안 토론회'가 20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8층 배움터에서 열렸다. (유연석 기자)
"그간 뒷소문이 무성했던 불법, 탈법의 약탈적 광고영업의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최근 공개된 MBN 미디어렙 영업 1팀의 업무일지를 분석한 신태섭 교수(동의대 광고홍보학과·민언련 정책위원)의 말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과 언론노조, 언론개혁시민연대 등 8개 언론·시민단체는 20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종편 광고영업 추악상 드러낸 MBN X파일 진단과 대응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신 교수는 "(MBN 업무일지에는) 자본과 언론의 관계 투영을 넘어서서 아주 야만적이고 추악한 불법과 탈법의 오만가지 작태가 표현돼 있다"며 방송법과 공정거래법, 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미디어렙법) 등의 위반 문제를 지적했다.

유출된 업무일지에는 영업 1팀이 2014년 12월 1일부터 2015년 1월 20일까지 51일 동안 수행한 영업활동에 대한 387건의 기록이 들어 있다. 이 중 신 교수가 불법·탈법 등 문제가 있다고 추정한 것이 총 53건(42개 업체)이다.

유형별로 분석하면 ▲뉴스보도에서 업체나 제품을 불법 홍보하거나 광고수주 압력 행사 ▲뉴스 이외 프로그램에서 제품을 불법 홍보 ▲조폭식 갹출 또는 뇌물로 의심되는 불법 협찬증빙 ▲기자의 불법 영업 광고 등이다.

◇ 돈 주면 홍보하고, 안 주면 흉보고

2014년 12월 2일 업무일지에는 ‘ㅎ공사’의 기록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금년도 하반기 컬러풀 아프리카 선청구 되었던 건 12월 경제포커스에서 소진 예정. 12월 6일 <경제포커스>(이슈포커스)에서 자원외교에 대해 다뤄지며, ㅎ공사 부각시킬 예정."

신 교수는 "민언련의 모니터에 따르면, 실제 12월 6일 <경제포커스>에서 여러 공기업들의 투자 실패를 집중 조명했다. 하지만 ㅎ공사에 대해서는 장황한 성공사례로 칭송하기 바빴다. 사회자는 '(ㅎ공사가) 전문 회사다 보니 경험이 많은 것 같네요'라고 말하며, 화면에 'ㅎ공사 전문회사로서의 경험 살려 안정적인 자원 확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고 했다.

한편 광고 제안을 거절하면 부정적인 보도가 나간 것으로 보인다.

신 교수는 "한 한우 판매 행사 보도 제안으로 2,000만 원이라고 적힌 2015년 1월 19일자 업무일지가 있는데, 해당 업체가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며 "몇몇 언론이 단신으로 이 행사 소식을 전했는데 MBN은 침묵했고, 오히려 며칠 뒤인 12월 16일 한우 신뢰도에 손상을 줄 '바코드로 한우 원산지 확인…찍어봤더니 무용지물'이라는 단독 보도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행태에 대해 신 교수는 "긍정적 보도해 줄 테니, 혹은 부정적 보도 안 할 테니 금품을 달라는 겁박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 홈쇼핑과 연계한 신종 마케팅 기법까지

홈쇼핑과 연계된 홍보도 있었다. 2014년 12월 3일 업무일지이다.

"천기누설 기획 PPL 확정. 1/4(일) 신년특집 한 살 덜 먹기 프로젝트! 젊음의 비밀 편, ㅇ(건강기능식품) 아이템 확정, 12월 선청구 예정으로 3,000만 원, 익일 계약서 초안 작성 예정."

해당 일자 방송에선 건강기능식품의 재료의 효능만을 소개했지, 광고를 집행한 ㅎ사의 제품은 전혀 노출하거나 언급하지 않았다.

신 교수는 "의문을 풀어줄 단서는 2015년 1월 20일자 업무일지에 있었는데 '1월초 방송됐던 ㅇ(건강기능식품) 건의 경우 홈쇼핑에서 목표치의 150% 판매를 달성했다고 함'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했다.

이어 "해당 방송(천기누설)은 1월 4일 저녁 9시 40분 시작했는데, 잠시 후인 10시 35분 한 홈쇼핑에서 ㅎ사에서 출시한 ㅇ제품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해당 홈쇼핑은 '끊임없는 언론의 찬사! MBN <천기누설>이 오늘 ㅇ의 유용성 집중보도'라는 대형 고지를 대대적으로 계속 내보내면서 ㅎ사의 물건을 팔았다"고 밝혔다.

신 교수는 "이같은 사례들은 방송 프로그램을 특정 사업자의 홍보물로 전락시켜 부당 이득을 편취한 행위로, 시청자에 대한 기만행위이자, 방송법과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 괴담처럼 떠돌던 ‘협찬 증빙’ 사례에 ‘탈세’ 의혹까지

MBN 업무일지에는 그간 괴담처럼 떠돌았던 '협찬 증빙'에 대한 기록도 5건이 있다.

'협찬 증빙'이란, 실제 기업이 협찬하지 않았음에도 방송에선 협찬을 한 것처럼 허위로 증거를 만들고 기업으로부터 협찬금을 수수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신 교수는 "이런 비용은 결국 대기업이 매체사에게 몸 보신용으로 주는 뇌물인가? 매체사가 조폭식으로 뜯어가는 보호비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라 물으며, "이것이 사실이라면 언론권력과 경제권력 간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불법적인 거액의 금품수수가 연례행사처럼 관행화된 것으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협찬 증빙'은 사후에 꾸미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방송 당시 프로그램에는 협찬을 고지한 내용이 없다"면서 "기업이 실제로 협찬을 했는지 여부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 후 보관하고 있는 실제 방송 당시의 프로그램을 모니터링 하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허위 '협찬 증빙'에 이어 금액을 부풀리기 한 기록도 보인다"며 "이는 리베이트와 비자금 조성 및 탈세 등의 또 다른 불법·비리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전했다.

◇ MBN이 받은 건 기업 돈이 아닌 소비자 돈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김춘효 매체 정치경제학 박사는 "누가 돈을 내고 있는가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방송 광고가 늘면, 마케팅 비용이 늘어나는 거고, 이는 물건 값에 포함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광고 비용이) 나가는 셈"이라면서 "이는 국민적인 사기극이다. 언론사 경영진에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관리·감독해야 하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관계자들도 검찰에 고발해야 한다"며 "(이러한 문제를 예상하고) 종편을 허가하지 말라, 1사 1렙 안 된다고 했을 때, 해결할 수 있다며 자리를 차지한 방통위 사람들을, 업무를 소홀히 한 문제로 반드시 국민들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사회를 맡은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역시 "종편들의 약탈적 광고영업의 피해자는 결국 소비자"라며 "우리가 덤터기를 쓴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토론자인 김준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언론위원장은 "종편의 1사 1렙은 방송사와 미디어렙이 한 편이 되고 있고, 광고주에 대해서는 '금지 규정'이 없기 때문에 입법적으로 개선이 필요하다"며 "처벌 규정을 강화하고, 1사 1렙이 타당한 제도인지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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