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의 시위 당시 정권을 비호하던 반공청년단이 시위대를 습격하자, 이튿날인 19일 3만 명의 대학생·고교생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수천 명의 학생들이 가세했습니다. 이날 서울에서만 약 130명이 죽고 10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시위가 갈수록 거세지자 이승만은 결국 4월 26일 대통령직을 내려놨습니다.
4·19 혁명 당시 많은 시들이 발표됐습니다. 관련 시 가운데 당시 혁명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10편을 모아 봤습니다.
기성세대는 자성하라
고려대학교
1. 기성세대는 자성하라.
2. 마산사건의 책임자를 즉시 처단하라.
3. 우리는 행동성 없는 지식인을 배격한다.
4. 경찰의 학원 출입을 엄단하라.
5. 오늘의 평화적 시위를 방해치 말라.
- 1960년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일동
4월
박화목
4월은 거칠은 계절풍이 부는 가운데도/ 굳은 땅을 뚫고 짓누른 돌을 밀어 제치며/ 어린 푸른 싹이 솟구치는 달이다.// 사월은 정녕 생명의 외침을 아무도 막아내지 못하는 달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고…// 그 누가 착하고 어진 우리를 억누르고/ 한 몸의 영화를 그 속절 없는 부귀를/ 누리려고 했던가?/ 썩은 권력은 언제든 허물어지고 마는 것을…// 한 겨우내 죽은 듯/ 침묵속에서 살아온 뭇 생명들/ 이제 활활히 분화처럼 활활히 솟구치나니/ 아 진정 4월은/ 부활의 달.
유안진
지금쯤은 장년고개 올라섰을 우리 오빠는/ 꽃처럼 깃발처럼 나부끼다 졌답니다만/ 그 이마의 푸르른 빛 불길같던 눈빛은/ 4월 새닢으로 눈부신 꽂빛깔로/ 사랑하던 이 산하 언덕에도 쑥술헝에도/ 해마다 꽃으로 다시 살아오십니다./ 메아리 메아리로 돌아치던 그 목청도/ 생생한 바람소리 물소리로 살아오십니다./ 꽃진 자리에 열매는 열려야 했지만/ 부끄럽게도 아직은 비어 있다하여/ 해마다 4월이 오면 꽃으로 오십니다./ 눈 감고 머리 숙여 추도하는 오늘도/ 울음인가요 웃음인가요 저 꽃의 모습/ 결고운 바람에도 우리 가슴 울먹입니다.
역사를 증언하는 자들이여 4·19의 힘을 보아라
윤상규
거리에 불붙은 4월의 혼을 보라./ 내가 그날 보았던/ 짓붉은 피의 뜨거운 여울/ 두 주먹에 정의를 불끈 쥔/ 거대한 항거를 보라./ 헛되이 만용을 부리지 않고/ 그들은 역사와 힘으로 싸웠다./ 핍박을 향하여 내던진/ 장엄한 희생을 보라./ 그 쾌적한 울분이여/ 핍박을 향하여 온몸을 바친/ 아, 우리들의 큰 희생이여,/ 4월 하늘을 갈라낸/ 그들의 함성을 들어보라./ 뜨거운 피의 여울을,/ 역사를 증언하는 자들이여/ 그 힘을 보라.
죽어서 영원히 사는 분들을 위하여
박목월
학우들이 메고 가는/ 들것 위에서/ 저처럼 윤이 나고 부드러운 머리칼이/ 어찌 주검이 되었을까?/ 우람한 정신이여./ 자유를 불어올 정의의 폭풍이여./ 눈부신 젊은 힘의/ 해일이여./ 하나, 그들이 이름 하나하나가 아무리 청사에 빛나기로니/ 그것으로 부모들의 슬픔을 달래지 못하듯,/ 내 무슨 말로써/ 그들을 찬양하랴./ 죽음은 죽음./ 瞑目(명목·눈을 감다)하라./ 진실로 의로운 혼령이여.// 거리에는 5월 햇볕이 눈부시고/ 세종로에서/ 효자동으로 가는 길에는/ 새잎을 마련하는 가로수의 꿈 많은 경영이/ 소란스럽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나간 것은 조용해지는 것/ 그것은 너그럽고 엄숙한 역사의 표정/ 다만/ 참된 뜻만이/ 죽은 자에서 산 자로/ 핏줄에 스며 이어가듯이./ 그리고, 4·19의 그 장엄한 업적도/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의 빛나는 눈짓으로/ 우리 겨레면 누구나 숨쉴,/ 숨결의 자유로움으로,/ 온 몸 구석구석에서 속삭이는/ 정신의 속삭임으로/ 진실로 한결 환해질/ 자라나는 어린 것들의 눈동자의 광채로/ 이어 흘러서 끊어질 날이 없으리라.
1976년 4월 20일
최하림
검은 도시도 멀리 사라지고/ 기념비들만 수척하게 서 있는 공원에서/ 나는 어둠을 닦으며 비문을 읽는다./ 진달래꽃이 산언덕에서 고운 폐혈처럼/ 피를 토하고 접동새들이 울고 숱많은 모발을/ 하늘로 날리며 돌밭길로 묘비새로 서성거리던/ 형제들의 그림자도 없는 어둠 속에서/ 나는 그날의 함성을 환청으로 들으며/ 비문을 읽는다. 피의 거리의, 피의 거리의/ 어둠에서 떠는 어둠의 소리를 읽는다.
정희성
보이지 않는 것은 죽음만이 아니다/ 굳이 돌에 새긴 피/ 그 시절의 무덤을 홀로/ 지키고 있는 것은 석탑(石塔)뿐/ 이 땅의 정처없는 넋이/ 다만 풀 가운데 누워/ 풀로서 자라게 한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룬 것은 없고/ 죽은 자가 또다시 무엇을 이루겠느냐/ 봄이 오면 속절없이 찾는 자 하나를/ 젖은 눈물에 다시 젖게 하려느냐/ 4월이여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군중
김요섭
무차별 사격 그리고/ 커다란 집이 불을 뿜고 하여도/ 군중들이 몰려 다닌 낮에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태양이 데모대들을 비쳤기 때문일까요!// 어둠이 내리고/ 데모대들이 흩어진 밤/ 집에 돌아와/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이에서 자는데/ 오히려 무서운 생각이 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나는 커다랗게 눈을 뜨고/ 아침과 군중을 기다렸습니다.// 그것은 나도/ 참을 때는 바위/ 터질 때는 화산과 같은/ 군중의 일부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데모대들의 외침이 내게도 있었던가 봅니다.// 어머니보다 아버지보다/ 저 군중과 누가 나의 마음을/ 굳게 묶어 놓았을까요// 아니 누가 묶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군중은 같은 뿌리를/ 우리 국토에다 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뿌리의 이름은 민주주의.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