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파악 후 지원하지 않고. 다른 부처에 책임 미루기도.
- 기준 모호해 지원 대상에서 빠진 사람도 있어.
- 이주민 탑승자, 통역 통한 빠른 정보제공 받지 못해.
- 민간 잠수사, 후유증 심한데 치료비 지원도 끊겨.
- 그물에 시신 올라온 진도 어민, 트라우마 치료 1월 종료.
- 정부, 시행령 강행으로 진실 접근 의지 꺾고 분열 조장해.
- 존엄과 안전위, 인권 관점에서 어떻게 슬픔 대할까 고민.
- 평등팀은 단원고 학생 아닌 피해자들 지원하는 역할.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5년 4월 17일 (금)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최현모, 이은정 (대책위 존엄과 안전위 평등팀)
◇ 정관용> 세월호 참사, 우리가 챙겨야 할 분들이 참 많습니다. 단원고 학생들 우리가 제일 많이 기억하죠. 하지만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 또 구조된 분들, 지난 1년 이분들 어떤 시간을 보내왔는지 인권활동가들이 그 실태를 조사해 왔다고 합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겠습니다.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 평등팀의 활동가이십니다. 두 분 모셨어요. 최현모 씨, 어서 오십시오.
◆ 최현모>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이은정 씨, 어서 오세요.
◆ 이은정> 네, 안녕하세요.
◇ 정관용> 존엄과 안전위원회? 어떤 위원회입니까?
◆ 최현모> 존엄과 안전위원회는 세월호 참사가 난지 약간 시간이 지난 5월 초순 정도부터 인권활동가들이 모임을 하면서 이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는 그 질문들 그리고 이 참사로 인해서 우리가 반드시 돌아봐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인권의 관점에서 이 큰 슬픔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고민을 하면서 만들어진 겁니다.
◇ 정관용> 인권단체들이 주로 연대해서?
◆ 최현모> 그렇습니다. 다양한 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모였고요. 말씀드린 것처럼 참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인권적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 특히 피해자 모두에게 당연히 인정돼야 할 권리의 문제들 그리고 진짜 우리 사회는 안전한가에 대한 질문, 그런 것들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해 왔습니다.
◇ 정관용> 지금 범국민대책위원회, 국민대책위원회 여기는 온갖 사회단체가 다 모여 있는데 이 가운데 특히 인권단체들이.
◆ 최현모> 네, 맞습니다.
◇ 정관용> 그 가운데 또 팀 따로 있어요? 평등팀, 무슨팀 이렇게 있어요? 어떠어떠한 팀이 있습니까?
◆ 최현모> 저희 존엄과 안전위원회는 세 개의 팀으로 구성했습니다. 첫번째 팀은 자유팀이고요.
◇ 정관용> 자유?
◆ 최현모> 네, 그리고 두번째는 평등팀. 그리고 다음은 안전대안팀이라고 세 개의 팀을 구성했습니다. 각각 팀별로는 자유팀에서 주로 하는 활동들은 참사로 피해를 입었던 분들이 본인들의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정부와의 어떤 대화나 이런 것을 요구할 때 아시지만 많은 시위가 있었고 집회들이 있었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 최현모> 그 자리에서 당연히 인정되어야 될 이런 집회와 시위의 권리 그리고 표현의 어떤 권리들이 실제 많은 부분에서 막혔거든요. 그런 부분을 감시하고 온전한 권리로서 인정받아야할 이분들의 자유, 그러니까 그런 것들에 대해서 노력을 했고요.
◇ 정관용> 집회, 시위의 자유를 지키는 팀이군요. 어제, 오늘 광화문 시청에도 계속 계셨고요.
◆ 최현모> 네, 맞습니다.
◇ 정관용> 알겠고요.
◆ 최현모> 그리고 평등팀에서 사회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이번 참사에서 조금은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멀어져버린 분들. 화물피해자 분들과 또 보통 일반인 희생자로 분류되는 단원고와 연결되지 않은 그런 피해자 분들 그리고 저희가 꼭 바라봤던 것은 이번 참사에서 구조에 참여했다가 역시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민간인 잠수사 분들. 그리고 또 그 지역인 진도 어민 분들, 이런 분들을 만나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분들 이야기를 외부에 노출시키고 함께 지원하는 역할을 했었고요. 안전대안팀은 이번 참사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것이 안전이었거든요. 우리 사회는 정말 안전한가. 특히나 기업이라든지 또 이런 가진 이들에 의해서 자행되는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위험으로 몰아가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 이런 것들을 좀 지적하기 위해서 기업살인법이나 이런 것들을 다루어 왔습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평등팀의 대상이 그냥 일반인 희생자, 일반인 구조뿐만 아니라 민간잠수사 또 진도 어민까지이니까 대상 범위가 넓네요.
◆ 최현모>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우선 모두 304명의 희생자가 있는데 특별히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단원고 학생 말고 다른 사람들의 상황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도 기록에 남기고 사람들에게 알려야 되겠다, 이런 관점을 가지신 건데 그분들을 여러분도 접근하면서 몇 가지 부류로 나눈다고요? 어떻게 나눕니까?
◆ 최현모> 사실 그 나눔이라는 것은 저희 입장에서는 모두 다 피해자로 봤는데요. 당시 사회적 시각이 단원고와 비단원고, 일반인 이렇게 이름으로 나누어버린 것이 좀 있습니다. 다만 그런데 사람들이 나누어지고 그룹화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거예요. 단원고라고 하는 공통성이 있었고 화물기사 분들 역시 공통성이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그룹화된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다만 그 그룹화된 것들이 이후에 정부지원이나 피해자를 대하는 어떤 사회적 시선에서 차별적으로 좀 적용된 부분, 그렇게 비추어진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저희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분류 자체가 어쩌면 좀 잘못된 그런 것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있고요. 정부가 특히, 아시지만 재난지역 선포를 하게 됩니다. 재난지역 선포된 곳이 안산과 진도거든요. 그런데 사실 일반인으로 분류됐던 많은 분들, 특히 화물기사 분들도 그렇고 일반인 분들도 그렇고 전국에 다 깔려 계세요.
◇ 정관용> 흩어져 살고 계시죠.
◆ 최현모> 그런데 이분들에 대한 지원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각각에 대한 상황을 좀 세세하게 고려해서 이루어져야 하고 또 지원을 맡은 각 지자체들이나 정부 부처가 그분들 모두를 파악했어야 하는데 실제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분들이 물어물어, 자기가 너무 힘들고 답답하니까 물어물어 찾아가신 경우였고 그 물어물어 찾아가도 담당자인 사람은 그런 사람이 자기 지역에 있는지도 모르고, 기준 또한 몰라서 자기도 역시 물어보거나 다른 부처에 미루거나 이런 일이 아주 비일비재했습니다.
◇ 정관용> 여기부터 시작이네요. 안산과 진도가 아닌 전국에 흩어져 살고 계신 분들, 그분들은 놓치고 있었던 놓치지 것 아니냐.
◆ 이은정> 그런 과정에서 이런 질문들도 받으셨어야 했어요. 피해자들을 만나고 있는 사회복지사가 이분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알고 싶은데 해당 구청에 문의를 했더니 이 분은 가난하지 않은데 왜 우리가 이분까지 챙겨야 하냐.
◇ 정관용> 구청 관계자는 그분이 세월호 희생자나 구조된 분이라는 걸 모르는군요?
◆ 이은정> 아니, 알고 있는데...
◇ 정관용> 그냥 재산 상태만 보고 마는군요?
◆ 이은정> 알고 있는데 재산 상태를 보고 이분은 가난하지 않은데 우리가 왜 지원해야 하냐, 이렇게 질문했었던 적도 있다고 합니다.
◆ 최현모> 그런데 그런 기준이라는 게 되게 모호했던 게요, 사실은 지원기준 중에 이 참사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분에 대한 지원이다라고 하는 그런 기준이라기보다는 기존에 있는 긴급복지지원이나 생활안전지원, 이런 것을 기준으로 갖다 대다 보니까 그 기준 안에 현금으로 3000만원 정도가 통장에 입금되어 있으면 지원기준의 대상이 되지 않고 아니면 자가로 자기가 집을 소유하고 있으면 안 되고 하는 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인터뷰한 분 중에 어떤 분이 있었느냐면 최근에 어떤 가게를 하려고 대출을 받으신 거예요. 그래서 통장에 몇 천만원이 들어와 있었던 거죠.
◇ 정관용> 대출금이 들어와 있군요.
◆ 최현모> 그게 현금으로 잡힌 거죠. 그래서 지원 기준에 안 된다라고 하는 어이없는 말도 들으신 분도 있으셨고.
◇ 정관용> 일반적인 기준으로 현금이 얼마 이상 있으면 안 된다, 대출금 받은 게 통장에 있으니 지원 대상에서 빠지더라?
◆ 최현모> 네.
◇ 정관용> 그런데 제가 금방 또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게 지금 304명의 희생자 또 구조된 분, 다 합해봐야 사실 한 500명 안 되잖아요. 그분들의 리스트가 다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리스트별로 접근해 들어가는 게 전혀 없나보죠?
◆ 최현모> 저희가 참 힘들었던 것 중에 이분들 만나뵐 때요, 명단을 파악하는 게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한 분이 연결되면 그분을 통해서 그 주변분들을 연결해서 만나게 됐어요.
◇ 정관용> 아...
◆ 최현모> 물론 정부에서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개인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라고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거고 그렇기는 했지만 예를 들면 아까 이은정 씨께서 말씀하신 것 중에 사회복지사를 통해서 정부가 일종의 지원을 하기 위한 어떤 방안을 찾았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그분들에게는 적어도 그런 게 제공이 되어야만 정상적인 지원을 하고 조사를 하고 상호를 파악할 수 있는데 그게 이뤄지지 않았던 거죠.
◇ 정관용> 저는 민간활동가 물어본 게 아니고 정부에서 500명도 안 되는 숫자인데 그분들 리스트업 딱 하고 사는 곳, 지역 해서 어떻게 누가 누가 담당하고 이게 안 돼 있나 보죠?
◆ 최현모> 그게 안 돼 있었던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래요?
◆ 이은정> 그 여성가족부에서 하는 위험가족지원 프로젝트 이런 것들이 있었는데 그 프로젝트로 ‘세월호 가족들을 지원해라’라는 공문이 내려와서 그걸 받은 사회복지사가 각 구청에 이렇게 사정하고 물어야 그 해당피해자가 살고 있는 아닌지 여부를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 최현모> 실제로 어떤 분은 자기가 살고 있는 그러니까 해수부나 이런 데 문의를 해보니 지방자치단체에 찾아와서 얘기하면 된다라고 해서 찾아갔는데 그 구청에서는 자기가 그곳에 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라는 거죠. 그런 피해자가 자기 관내에 있는 줄 몰랐다 그래서 그분은 결국 그 구청관계자는 지원기준이 있는지 그것도 모르는 거니까 그때서 부랴부랴 찾게 되는데 그때 이미 나오면 새로운 기준들이 적용되는 거죠. 그 적용은 말씀드렸던 것처럼 약간 어이없는 기준들이 있었죠. 물론 더 말이 안 된다면 처음에는 이러이러한 기준 때문에 안 된다라고 했는데 그 후 한 2, 3개월 후에 갑자기 연락이 와서 지원해 줄 테니 오라라고 하는 그런 말도 많이 들었다고 하고요.
◇ 정관용> 당신은 세월호 관련자이니 별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그걸 두세 달 후에 가서?
◆ 최현모> 그 이후에 아마 굉장히 많은 문제제기가 있은 이후에 그 문제제기에 대해서 정부가 어느 정도의 변화를 하지 않은가 하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 정관용> 이것만 봐도 얼마나 종합적, 체계적 대책이 없었는지 또 그게 현장과는 전혀 연결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고요.
◆ 최현모, 이은정> 그렇습니다.
◇ 정관용> 조사하신 내용 많겠고 또 한 분 한 분의 사연이 다 사실은 소중하고 구구절절합니다만 여기서 우리 청취자 분들을 위해 몇 가지만 전하기로 하죠. 먼저 이른바 일반인 유족 분들, 그분들도 대책위도 따로 꾸리고 그래서 일부 언론에서는 단원고 유족들과 좀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내부에 다툼이 있다 이런 얘기도 막 들리고 그러던데 가까이 가서 보니까 어땠습니까?
◆ 최현모> 저는 그 부분에서 언론에 대해서 약간 질타를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언론이 진실을 찾고자 하는 피해자들의 어떤 노력의 본의를 살려서 또 진실을 찾아갔어야 하는데 마치 그 안에 굉장히 큰 문제가 있고 역시 과거에 참사들도 이랬는데 이번도 비슷할 것이다 하는 그런 방식의 어떤 구도들을 함으로써 오히려 분열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었고요. 이것 때문에 사실은 저희는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풀지 못하는구나 하는 식의 전 사회적 트라우마가 걸렸다는 생각이 들어요.
◇ 정관용> 약간 그분들은 소외감 같은 것 있던가요?
◆ 최현모> 맞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 최현모, 이은정> 네.
◆ 최현모> 실제로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멀어진 것에 굉장히 소외감을 느끼셨고 특히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로 따로 구성하신 그 와중에는 정부의 차별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성토를 하세요. 그런데 정부의 차별만이 아니라 ‘우리도 좀 봐주세요’라고 말을 너무 이렇게 하시면서 언론으로부터 우리는 소외받고 있다라는 얘기를 하시는 거죠. 일례로 에피소드 중에 처음에 팽목항에 갔을 때 그분들 말씀 중에 좀 안타까운 부분이 굉장히 많은 사회단체가 와서 유가족들을 지원하고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한 텐트를 치고 많은 이런 지원시설을 만들었다고 해요. 그런데 다 보면 이렇게 번호가 써 있더랍니다, 텐트에.
◇ 정관용> 무슨 번호요?
◆ 최현모> 반 번호인 거죠.
◇ 정관용> 단원고 1반, 2반 이렇게?
◆ 최현모> 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누구시냐 그러니까 우리 일반인 유가족이다 했더니, 일반인은 저쪽으로 가셔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그래요.
◇ 정관용> 그 일반이 2학년 1반?
◆ 최현모> 네.
◇ 정관용> 일반인이라고 했는데?
◆ 최현모> 그렇게 알아들을 만큼 사회에서는 이분들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거죠. 그로 인한 소외감과 박탈감이 굉장히 크셨어요.
◇ 정관용> 음... 상대적으로 단원고 학생들 숫자도 많았고 또한 동시에 그 부모님들이나 가족 분도 어떻게 보면 금방 더 조직이 잘 될 것이고 상대적으로 이분들은 조직되기도 어려울 것이고, 사회적 주목도 덜 받고 그러면서 자꾸 더 밀려왔다 우리가... 그런 것들이겠군요.
◆ 최현모> 네, 맞습니다.
◇ 정관용> 그 후에는 정부의 어떤 각종 지원이나 이런 것들은 동등하게 이루어졌습니까, 어떻습니까?
◆ 최현모> 실제로 저희가 인터뷰를 한 이후에 일반인 분들, 화물차 기사 분들을 포함해서 일반인 분들에게 지원된 내역이 아주 터무니없이 잘못된...
◇ 정관용> 아니 아니, 그 구조되신 분들은 이따가 다시 얘기하고 유가족들에 대한 여러 가지 지원 있잖아요. 그거는 단원고 학생과 일반인 유가족은 똑같습니까, 그건?
◆ 최현모> 좀 다릅니다.
◇ 정관용> 어떻게 달라요?
◆ 최현모> 예를 들면 단원고 지역이 특례적용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좀 어이없는 예가 뭐였느냐면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하는 지원방안을 책자로 만들어서 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안산에는 배포가 됐어요. 그래서 안산에서 그것들을 알고 또 안산 같은 경우에는 한 가족당 한 공무원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밀착지원을 한다는 방법으로 정부가 역할을 했는데 다른 일반인 유가족 분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어요. 대부분 다 본인이 알아서 찾아가고 본인이 알아서 요청하고 안 되면 같은 서류를 해수부에도 내고 구청에도 내고 해경에도 내고 하면서 그렇게 해 왔고요. 그 불편함을 다 겪고 했어도 실제로 약간 애매한 기준에 의해서 배제된 분이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저희가 지원을 하면서 문제제기를 하고 서류를 만들어서 장관 면담을 요청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동안 관계자가 제대로 만나주지도 않다가 이런 문제제기를 하게 되니까 장관면담이 곧바로 이루어졌고 이루어진 다음에 상당 부분, 그전에 이상한 기준에 의해서 안 됐던 것들이 많이 풀어졌습니다, 물론 100% 지원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좀 차별적 적용이 있었죠, 정부에 의한 차별적 적용이 이분들을 더 소외되게 만들었죠.
◇ 정관용> 모여서 아우성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더라, 그걸 확인하는 거네요.
◆ 최현모> 사실은 그래서 이분들이 자체 독자적인 대책위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으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 정관용> 방금 또 말씀하시다가 제가 자꾸 끊었는데 이제 구조되신 분들 얘기로 넘어갑시다. 그분들 가운데 첫 번째, 화물차 기사 얘기하셨잖아요. 저희도 따로 인터뷰를 한 바도 있습니다마는 어떻게 그분들 사연을 전해주시면요?
◆ 최현모> 화물기사분들을 처음 만난 건 제주도에서 만났었는데요. 이분들이 화물기사분들 중에 희생되신 분들이 없으십니다.
◇ 정관용> 다 구조가 됐어요?
◆ 최현모> 네. 구조라기보다는 이분들 표현을 정확히 하면 ‘탈출’입니다. 아무도 구조되지 않았다, 자기들은 모두 탈출한 것이고 탈출도 가까스로 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 정관용> 그나마 그분들은 배를 좀 아니까, 자주 탔던 분들이니까.
◆ 최현모> 그렇죠, 한 달에 10여 일 정도를 찾으시던 분들이었기 때문에 또 그분들이 묶으시던 방이 대부분 선미 끝에 있어서 탈출이 약간 용이한 지점이었습니다. 그런데 탈출해서 나온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하느냐’ 하는 말을 할 때 대부분 정부 관계자들은 ‘잘 모른다. 살아난 사람이 알아서 가라’라고 하는 말에 집단적으로 항의를 하니까 그때서야 버스를 내줬고 그래서 간신히 그다음 날 아침에 완도에서 출발하는 배가 있거든요. 그 배로 제주도에 오니까 아무도 나와 있지 않다가 선사로 찾아가니까 선사를 대신하는 보험사에서 와서 자기네가 병원 여기저기 좀 알아놨으니, 이제 항의하면서 나온 거죠, 알아놨으니 거기로 가봐라 해서 갔더니 그때부터 치료라고 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 정관용> 진도에서 병원으로 간 것도 아니고?
◆ 최현모> 아닙니다, 아닙니다. 부상을 당하신 두 분만 진도 지역에서 목포라고 제가 알고 있는데 목포 지역으로 병원을 옮겼다가 상황이 심해서 서울로 이송되셨고요. 대부분 제주도로 가셨죠. 그런데 가서 절대안정이 필요한 분들이 계세요. 잠을 제대로 못 이루고 잠을 잘 때마다 아이들이 눈에 자꾸 보이고 그런 악몽을 자꾸 꾸고 그래서 절대안정이 필요한 분들에게 독방을 이용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었는데, 독방을 이용하겠다고 하니 ‘독방은 지원되지 않으니까 독방 이용하지 마라’ 또는 ‘본인 돈으로 추가 비용을 낸다면 독방 이용해도 좋다’ 이런 식의 말을 들었던 거죠. 그래서 다시 역시 문제제기를 하니까 그때서 마지못해 들어주는 척 하면서 다시 독방을 이용하게 되고... 사실 당연히 받아야 할 지원을 권리로써 인정받아야 될 분들에게 구걸하게 만드는, 구차함을 느끼게 만드는 그런 과정이 계속 반복됐어요. 지금도 치료를 받고 계신 화상 입으신 어떤 분은 인터뷰를 많이 하신 분이긴 한데 독방을 절대안정이라고 해서, 화상을 심하게 입으셨기 때문에 독방 이용하셨거든요. 그래서 상당수 시간이 지나고 나서 갑자기 원무과에서 연락이 와서 ‘추가비용 800만원 나왔다, 이걸 지불하지 않으면 퇴원해라’ 이런 말을 듣고 그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눈물을 보이셨어요. 그러니까 ‘본인이 가진 트라우마로 인한 슬픔도 너무 깊은데 이렇게 구차하게 만드는 이 정부가 자기는 너무너무 힘들다’ 하는 말씀을 하셨고 최근에 어떤 분은 ‘차라리 내가 죽었더라면...’
◇ 정관용> 아이고.
◆ 최현모> 우리 가족이라도 도움을 받을 텐데, 나는 생계도 못하고 1억원이 넘는 화물차를 빠뜨렸고 생계수단 다 잃었고 지원도 이렇게 받지 못해서 힘든데 내가 죽었더라면 보상금이라도 받아서 우리 가족이 잘 살 텐데, 이게 무슨 꼴이냐고 하면서 한탄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 정관용> 제가 인터뷰 할 때 보니까 30몇 만원인가 몇 달 지원 받다가 그것도 안 나온다던데요, 사실입니까?
◆ 최현모>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됐습니다. 화물 기사분들이 상당 부분 제주에 계셨는데 제주도에서는 그 기준이 3개월이었던 것 같아요. 그 3개월 그것도 가족수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다 다르게 지급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분들은 화물차 할부금이라고 하죠, 보통 할부금융을 이용해서 사시니까 돈이 없는 서민들이시기 때문에. 할부금만 200만원씩 갚아가고 있는데 지원금이 60만원, 108만원 이걸로 어떻게 살라는 얘기를 하시게 된 거거든요.
◇ 정관용> 그것도 몇 달만?
◆ 최현모> 네. 그래서 할부금 유예를 해달라고 그것도 요청을 하니까 금융사에 따라서 어느 곳은 유예해 주고 어느 곳은 안 해 주고... 사실은 정부가 나서서 이건 유예하라고 하거나 이자는 좀 감면하라고 할 수 있었을 거거든요. 그런데 그러지 않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개별적으로 접근을 하셨던 거고 상황마다 달랐던 거죠.
◆ 이은정> 더불어서 제주에는 이제 그 화물 생존자 분들이 많이 살고 계신데요. 그분들의 트라우마를 치료할 곳이 제주에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 정관용> 안산까지 오신다면서요?
◆ 이은정> 네, 매번 안산까지 비행기 타고 오시는데 또 그 비행기 타는 공포 또한 계속... 어려움을 겪고 계시고요.
◆ 최현모> 실제로 정부에서 나온 지원책 중에 정말 당혹스러운 것은 이분들이 가장 분노하는 부분 중의 하나인데요. 그냥 돈을 줄 수 없으니 대출을 해 주겠다라는 제의를 낸 거죠.
◇ 정관용> 대출 알선을 해 주었죠.
◆ 최현모> 네, 맞습니다. 그런데 그 대출의 기준이 다시 화물차를 사서 육지에 왔다갔다하는 화물업을 하는 걸 전제로 하는 거였어요. 이분들이 그걸 보고 화물일을 하다가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살아서 이 큰 트라우마로 몇 년을 치료받을지 모르는 사람에게 다시 화물일을 하고 ‘너희가 다시 사지로 가라는 말밖에 뭐가 더 되냐’고 하면서 너무 분노하셨어요. 물론 이후에 약간의 기준이 바뀌어서 그것과 무관하게 대출이 진행되기는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처음에 정부의 이런 기준은 각각 개별적인 사람들의 어떤 상황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전혀 안 되고 그랬던 거죠.
◇ 정관용> (한숨) 또 세월호 탑승했던 분들 가운데 베트남, 중국, 러시아 이런 데서 온 이주민 분들도 있었지 않았습니까? 이분들의 사연은 또 어떻던가요?
◆ 이은정> 아직 돌아오고 계시지 못한 9명의 실종자 분들 중에서 권재근, 권혁균 님이 있습니다. 이분들 가족들이, 이 두 분은 서로 부자지간이고 그런데 이 온가족이 이제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가서 살려고 제주도로 이사를 하는 길이었는데요. 권재근 님의 부인이신 한윤진님이 원래 베트남 분이셨습니다.
◇ 정관용> 아하.
◆ 이은정> 그래서 이 가족 중에 한 명, 6살 지연이만 살아 돌아왔고요. 그래서 이 가족은 어찌 보면 가족 안에 희생자, 실종자, 생존자가 다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한윤진 님의 베트남 분인 아버님과 여동생 분이 지금 1년째 계속 한국에 와 있는데요. 그러니까 1년째 내내 그냥 기다리고만 계시는 거예요. 처음에 너무 낯선 환경과 언어도 통하지 않고 그래서 계속 사고초반에는 날씨가 매우 더운데도 불구하고 계속 그 두꺼운 잠바를 입고 벗지 않으시고 계시기도 하고 그러면서 지금은 계속 아직도 본인의 사위와 손자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서 그 실종자를 구출하는 것에 인양을 하라는 내용으로 계속 같이 이렇게 목소리도 내기도 하시고 광화문에 오시기도 하시고...
◇ 정관용> 말도 잘 안 통할 테고?
◆ 이은정> 네, 그런 어려움이 있고.
◆ 최현모> 사실 이주민들이 가장 필요한 것은 통역이나 이걸 통한 빠른 정보제공이 있어야 하거든요.
◆ 이은정> 그래서 이분들 가운데서는 그런 정보제공이 빠르게 되지 않아서 사실은 해수부나 이런 데에 지원을 받는 데에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어려움들이 계속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정관용> 쭉 얘기 들었지만 찾아와서 도와주는 분은 있을 리가 없고.
◆ 최현모, 이은정> 네, 그렇습니다.
◇ 정관용> 또 민간잠수사 분들 만나보셨죠, 그분들은 어떻던가요?
◆ 이은정> 같이 광화문 농성장에 간 적이 있어요.
◇ 정관용> 아, 그분들도?
◆ 이은정> 이분들이랑 같이 오시고. 그런데 그때 그 농성장에서 펑펑 우셨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요. 이렇게 계속 시신을 인양하는 과정에서 서로 배에서 소통하면서도 내내 울면서 시신을 인양하셨다고 합니다. 이 세월호 참사 이후에 바뀌어야 되는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는 이런 재난 피해자들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재난 자체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런 구호 활동으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하고요. 이분들이 지금 뼈가 썩는 병을 앓고 계시다고 합니다.
◇ 정관용> 왜요?
◆ 이은정> 쉼 없이 계속 구조 활동을, 잠을 못 자가면서 하시면서.
◇ 정관용> 잠수 후유증?
◆ 이은정> 네, 잠수 후유증으로 그렇게 되고 있는데 이게 수술만이 답인데 그게 정부에서는 처음에 구조작업 시작할 때는 다 해 줄 것처럼 하더니 지금은 치료비조차도 지원을 해 주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 정관용> 그래요?
◆ 이은정> 네, 그런데 심지어는 이제 배보상특별법에서 이 민간잠수사들에 대한 지원내용은 전혀 빠져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팽목항에서 그 첫 문장이 실종자와 유가족과 더불어서 민간잠수사나 소방헬기 유가족 이야기도 했는데 오히려 법에서는 전혀...
◇ 정관용> 대상이 안 되고 있다?
◆ 이은정> 네, 지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 정관용> 진도 어민들에 대한 지원은 또 어떻게 됩니까?
◆ 최현모> 진도 어민분들 얘기할 때에 제일 먼저 생각해야 될 것은 이분들이 평온하게 살던 지역이 어느 순간 참사지역이 돼 버렸다는 걸 고민해야 되는 거고요. 다들 진도 어민 이렇게 얘기하시는데 사실 어민만 계시는 건 아니에요.
◇ 정관용> 물론이죠. 식당 주인도 있을 것이고.
◆ 최현모>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에 대한 지원과 배려라고 한다면 정부의 정책은 그걸 다 고려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실제로 지금 진도 어민에 대한 지원책이 나오긴 했는데 그 지원책은 거의 모든 게 물적보상에만 집중돼 있고 그것도 어로작업을 하지 못함으로 인해 생긴 피해만 보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은 분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 정관용> 관광객 없어졌을 것이고.
◆ 이은정> 관광으로 하는 데...
◆ 최현모> 그래서 삶이 다 깨졌다라고 하는 게 정확히 맞고요. 또 그 참사지역에서 구조활동을 하시던 분들도 꽤 있거든요.
◆ 이은정> 그 과정에서 그물에 시신이 같이 올라와서.
◇ 정관용> 걸려서.
◆ 이은정> 네, 아직도 계속 그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힘들어하고 계시는 분도 계시고요.
◆ 최현모> 그런데 그분들에 대한 치료가 이번 올 1월까지, 1월 전에 종료가 됐어요.
◆ 이은정> 끝났다고 합니다.
◇ 정관용> (한숨) 한 분 한 분 사연 들을 때마다 그렇겠지라고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게 제가 처음에 얘기했던, 아니 다 합해봐야 500명도 안 되는데 그분들 한 분 한 분 이렇게 체계적인 지원이 안 됐군요, 그분들도 안 되는데 진도 어민 챙기겠습니까?
◆ 최현모, 이은정> (한숨) 맞습니다.
◇ 정관용> 갑자기 막 화가 나네요, 그런 대목에서. 아... 정말 아까 이은정 활동가가 이런 대형참사 재난이 닥치면 이제 그 재난 피해자의 어떤 개념부터 우리가 좀 달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종 지원에 대한 어떤 방법론 또 체계를 잡는 것, 앞으로 좀 나아질까요? 좀 여러분의 어떤 기록에 의해서 앞으로는 좀 그런 게 더 좀 체계화될 수 있을까요? 마지막 한 말씀 들어보면?
◆ 최현모> 저희가 이분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것은 저는 그냥 한마디로 구조작업에서 무능하고 무책임했던 정부가 그 이후 피해자들을 대하고 접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당연한 권리로써 인정돼야 될 지점인 지원이라는 부분 그리고 배보상이라고 하는 것, 이 부분에서도 너무너무 무능하고 너무 무책임했다라고밖에 저희는 평가할 수 없고요. 지금 나와 있는 배보상에 관한 특별법, 그 특별법은 아까 제가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마는 모든 사람의 의견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이용해서 악용하려는 의도가 나쁘다고 그랬는데 지금에 와서 저희가 느끼는 것은 그 배보상특별법이라는 것에 의한 시행령 그리고 그걸 가지고 이제부터 정부가 알아서 다 지원하고 해 주겠다고 말하면서 설명회를 하고 다니는 것들을 보면서... 역시 또 피해자들을 모욕하는구나. 저들이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그 의지를 저 말로 꺾으려고 하는구나, 이걸로 역시 또 분열시키려 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한숨) 하긴 뭐 상징처럼 되어 있는 단원고의 아버지, 어머니들을 지금도 거리에서 잠자게 만들고 있으니 다른 얘기는 해서 뭐할까, 이런 느낌까지 드는군요. 그래도 여러분 마지막까지 활동 계속 이어가주시고 기록 남겨주시고 중요한 자료를 좀 생산해 주시고요. 직접적으로 그분들한테 옆에서 도움도 좀 많이 돼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두 분 고맙습니다.
◆ 최현모, 이은정> 네, 감사합니다.
◇ 정관용>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 평등팀 최현모, 이은정 활동가 함께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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