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오늘 뭐했지?]KS 4연패 해태가 개막 5경기 무승이라고?

"우리가 최고였지." 1986~1989년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정상에 선 해태. (자료사진=KIA 타이거즈)
[90년대 문화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토토가'는 길거리에 다시 90년대 음악이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90년대는 스포츠의 중흥기였습니다. 하이틴 잡지에 가수, 배우, 개그맨 등과 함께 스포츠 스타의 인기 순위가 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90년대 스포츠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90년대 문화가 시작된 1990년 오늘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2010년 이후 프로야구는 삼성이 대세입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통합 4연패라는 최초의 업적을 달성했는데요. 삼성은 올해도 비록 초반이지만, 10승5패로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도 삼성 같은 팀이 있었는데요. 바로 해태입니다. 1983년 처음 우승을 차지한 뒤 통산 9번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는데요. 특히 1986년부터 1989년까지는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습니다. 그 사이 통합 우승은 1988년 한 번 입니다.

그렇게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 해태가 이듬해 개막과 동시에 졸전을 거듭했는데요.

25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90년 4월17일에는 해태가 삼성에게 지면서 개막 후 4번째 패배를 당한 날입니다. 무승부까지 포함하면 개막 후 5경기에서 1승도 챙기지 못했습니다. 다른 팀이라면 아무 일도 아니겠지만, 앞서 한국시리즈 4연패를 했던 해태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당시 해태 멤버는 막강했습니다. 한국시리즈 5연패도 무리가 없어보였습니다. 투타 주축인 선동열, 김성한에 투수 김정수, 이강철, 조계현, 이광우, 신동수, 마무리 문희수, 타자 한대화, 박철우, 김종모, 장채근, 백인호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홍현우와 정회열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죠.

하지만 시범경기부터 주춤했습니다. 문희수, 백인호의 부상 탓도 있다지만, 5경기에서 1무4패에 그쳤는데요. 타율 1할7푼1리, 평균자책점 5.36 모두 최하위였습니다. 물론 시범경기 때마다 죽을 쒔던 해태기에 큰 의미는 없었지만, 분명 분위기 반전은 필요했습니다.

빙그레와 개막전. 김응용 감독은 선동열을 선발로 내세웁니다.


흔히 말하는 개막전 필승 카드였죠. 하지만 선동열은 5회 2사까지 9피안타 7실점 한 뒤 마운드를 내려옵니다. 빙그레의 1~5번 좌타 라인에 당했는데요. 1985년 해태에 입단한 선동열이 선발로 나서 5이닝을 못 채운 것은 앞서 세 차례에 불과했습니다. 결국 5-10으로 졌고, 선동열은 홈 구장 14연승에 1989년부터 이어온 12연승 행진도 마감했습니다.

빙그레와 2차전도 1-3으로 졌습니다. 이번에는 이강철이 선발로 나섰는데요. 3회까지 무안타 경기를 펼치다. 4회 김상국에게 투런 홈런을 맞은 것이 뼈아팠습니다. 물론 1점에 그친 타선의 침묵도 패배의 원인이었죠.

"그 때 해태 진짜 강했었지."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였던 선동열 전 감독. (자료사진=KIA 타이거즈)
해태의 부진은 계속됐습니다.

특히 OB와 세 번째 경기는 타격이 어마어마했습니다. 0-1로 뒤진 6회 2사 1, 3루에서 선동열을 등판시키는 강수를 뒀는데요. 선동열은 6회 위기는 넘겼지만, 7회에만 2피안타 2실점하며 무너졌습니다. 1-3 패배. 당시, 아니 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투수 선동열이 선발로, 구원으로 두 번 연속 무너졌으니 해태로서는 속이 쓰렸겠죠. 게다가 타선은 김진욱에게 8회까지 안타 4개를 뽑는 데 그쳤습니다. 다음 OB전 역시 연장 12회 접전 끝에 2-2로 비겼습니다.

그리고 4월17일에는 삼성을 만났는데요.

7회까지 2-1 리드를 잡으면서 개막 첫 승을 눈앞에 뒀습니다. 하지만 7회말 이광우가 선두 타자 김종갑을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시킨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결국 이현택, 류중일의 연속 안타 등으로 3점을 내주면서 경기가 2-4로 뒤집혔습니다. 8회에는 이만수가 쐐기 솔로 홈런을 날리며 해태를 개막 5경기 무승 늪으로 밀어넣었습니다.

이런 저런 말도 많았습니다. 시즌을 앞두고 결혼한 선동열의 부진 원인을 결혼 후 부진했던 다른 스포츠 스타와 묶어 결혼에서 찾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해태의 진짜 문제는 5경기 팀 타율 1할8푼1리에 그친 타선이었습니다.

결국 첫 승을 안긴 것도 선동열이었습니다. 해태는 이튿날 다시 삼성과 맞붙었는데요. 선발 이강철이 5회까지 호투하다 6회말 연속 볼넷에 이어 이만수에게 적시타를 맞았습니다. 그러자 선동열이 마운드에 올라왔습니다. 3-1로 앞선 6회 무사 1, 2루. 선동열은 이후 13타자를 상대로 4사구 2개만 내주는 완벽투로 3-1 승리를 지켜냈습니다. 해태는 정확히 6경기 만에 첫 승을 신고했습니다.

그렇다면 1990년 해태의 성적은 어땠을까요.

68승3무49패로 정규리그 2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정규리그 1위였던 LG와 1.5경기 차였으니, 개막 후 5경기 부진이 조금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결국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LG가 통합 우승까지 차지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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