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싣는 순서>
① '예능 대세' 유병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② 김탁환 "세상은 추리소설처럼 '사필귀정' 아니더라"
③ 세월호 가족에게 '가족'으로 불리는 언론인
④ "1주기 지나면 언론은 또 썰물처럼 다 빠지겠죠"
⑤ "단상 위 대통령과 무릎 꿇은 母…내겐 충격적"
⑥ 배우 최민수, "세월호 참사는 미래에 대한 수장식"
⑦ '세월호 1주기'…다큐 영화 '다이빙벨'이 남긴 것
⑧ 형제자매들…"부모님 앞에서 슬픈 내색 못해요"
⑨ [르포] '아고라' 된 광화문 광장…꿈틀거리는 시민들
⑩ 배우 정진영 "세월호는 '비극'…유가족 발언 '경청'해야"
⑪ '표현의 자유'…세월호와 함께 침몰하다
⑫ '제자리서 맴맴' … 세월호 이후 '재난보도'는 그대로
⑬ "세월호를 연극으로? 도저히 못하겠더라"
⑭ 임형주 "세월호 1주기, 발언 주저하는 상황 슬퍼"
⑮ '추적 60분' PD "그 분들은 매일 4월 16일입니다"
⑯ "슬픔 토해내세요"…세월호 아픔 치유하는 공연 무대에
⑰ 김미화 "정치인은 말장난…코미디언이 쓴소리
(계속)
15일 남산 교통방송 사옥 로비에서 만난 김미화는 '좋은 카페가 있으니 거기로 가자'며 기자를 안내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앞에 커피를 두고 소박한 카페에 앉았다.
첫 만남이었지만 어색함은 없었다. 워낙 말재주가 좋은 김미화 덕분이었다. 왜소한 체격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강한 힘이 서려 있었다.
그에게 이미 세월호는 일상이었다. 인터뷰 동안 추모 종이접기를 위해 통화를 하는가 하면, KBS창원에서 녹화한 방송에서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과 만남을 가졌다.
"이야기 듣고 많이 울었죠. 내일(16일)이 또 녹화 당일이라 추모 행사에는 참석을 못해요."
아쉬워하는 그에게 실종자 가족과 만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아픔을 누가 당해 보겠어요. 위로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다 쪼개진 가슴에 두 번, 세 번 다시 정을 박는 그런 일들이 너무 많아요. 이분들 눈물이 말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평범한 엄마, 아빠, 누나, 오빠, 동생. 그 사람들이 왜 길거리에서 저러고 있어야 됩니까. 그런 것조차 아파하지 못하나요?"
1년 간 마음 한구석에 켜켜이 쌓여간 피해 가족들의 한(恨). 그것이 김미화를 가장 아프게 했다.
"지금은 너무 오랜 세월, 가족들의 한(恨)이 맺혀 있어요. 그것이 결코 국가가 가는 길에 좋은 것이 아니죠. 이 분들이 말도 안되게 떼를 부리거나, 정말 법의 심판에 맡겨야 될 일을 하시는 게 아니잖아요. 정말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혀달라고 했는데 그 한(恨)을 못 풀어주니까 그대로 거리에서 울고 있는 겁니다. 정말 마음이 아프죠."
"광화문에 갔을 때 김장훈 씨와 유민 아빠께 말씀드렸던 게, 밥 굶지 마시고 단식투쟁하지 마시라는 거였어요. 절대 쓰러지지 말아라. 세월이 길어지니까 이분들도 어쩔 수 없이 식사하다가 또 거리로 나오고…. 이런 것들이 반복적으로 이뤄지죠. 그런 한(恨)들을 (사회가) 어루만져줬으면 좋겠습니다."
가벼운 고통사고에서조차 진행되는 것들이 세월호 참사에는 없었다.
"아픔을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어려운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가벼운 교통사고가 나도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되고, 환자가 있으면 치유하고, 망자가 있으면 좋은 곳으로 가라고 빌어주고…. 그러면서 유가족들도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맞죠."
그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여론이 분열된 것에 권력자들의 책임이 있다고 봤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그것을 휘두르냐에 따라 국민들은 따라가게 돼있어요. 여당이나 야당 상관없이 모든 권력자들을 말하는 겁니다. 그들이 정말 그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추모의 물결에 함께 섰다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있었다면 국민들은 그렇게 갈라지지 않았을 거예요."
이어 권력자들이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을 '한 사람'이 아닌 '한 표'로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그 분들은 모든 것을 표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정의나 따뜻함 이런 것들이 아니라 304명의 희생자 대 반대표로 계산하는 게 아닌가. 한 사람, 한 사람을 기계적으로 '저 표는 사(死)표다. 선거 때 버려야 되는 표다. 저 표는 얻어야 되는 표다' 이렇게요. 그걸 위해서라면 사람을 과감하게 버리는 매정한 정치 논리죠."
"세월호 피해 가족들을 색안경 끼고 바라본다거나, 여기에 동조하면 '빨갱이', '종북' 소리 나오잖아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그 말입니다. 권력 가진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쓰는 그런 용어들은 버려야 돼요."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 및 정부 관료에게도 쓴소리를 남겼다.
"그런 것들이 국민정서와 동떨어지게 움직이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고 해서 야당은 잘하고 있느냐? 그 분들도 마찬가지로 표죠. 함께 아파해주고 있지 않아요. 만약 굉장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앞서서 '우리가 똘똘 뭉쳐서 해낼 수 있다'고 했다면 피해 가족들이 거리로 나왔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방송 복귀 한 달, 왜 김미화는 또 다시 위험을 감수하고 세월호 참사 행동에 나섰을까.
그는 시골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생활하는 지금, 삶의 여유와 풍요로움을 찾았다. '마이크의 자유'. 한 때는 '이름있는 마이크'에 충성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제 그렇지 않다.
"나이 들었잖아요. 연륜인거죠. 저는 제 인생에 자신이 있어요. 방송에서 안 써주면, 꼭 방송만이 정답은 아닌거죠. 돈을 쫓아서 살만큼 풍족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요. 동네 사람들이 저 불쌍하다고 고기도 구워주고 그래요. (웃음) 제게서 마이크는 뺏을 수 없잖아요. 물론 써주면 좋지만 제 재능을 죽이고 싶지는 않아요. 말하는 건 제 재능이고, 그러니까 마이크에도 힘이 있습니다."
"코미디언이 코미디를 못하고, 왜 변방으로 나돌아야 됩니까. 제 마이크를 찾고 싶고,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어요. 아무리 공격을 해도, 저는 '종북'도 아니고, 정치권을 기웃거리거나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사회의 아픈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소망을 가진 웃기는 코미디언일 뿐이죠."
김미화는 코미디언과 정치인의 역할이 바뀐 아이러니한 세태를 이야기했다.
"저는 웃기는 것으로 기쁨을 준 사람인데, 사회에서 쓴소리를 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코미디언)가 하는 건 말장난이어야죠. 그런데 지금은 권력 가진 사람들이 말장난을 하고 있고, 코미디언들이 쓴소리를 하고 있어요."
방송시간이 임박해 다시 방송국으로 이동하면서도 김미화는 끝까지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아직 세월호 참사를 향한 그의 희망은 꺼지지 않았다.
"정치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정치 논리는 다 버리고 국민들에게 잘못하고 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면 됩니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또 때리면, 그건 학대죠. (국민들 역시) '인면수심'인 이 상황에서 이제 악한 마음을 내려놓고 세월호 참사의 본질적인 아픔을 되돌아 봐야 합니다. '어질 인(仁)'이잖아요? 원래 어진 국민들이니, 저는 우리 사회가 충분히 그런 마음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