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겨진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선명한 아픔…"그래, 조금만 기다려…"
9분 55초 분량의 흑백 영화 '편지'는 거리 곳곳에 보이는 노란 리본을 하나 하나 수거하는 한 중년 남성의 초췌한 모습을 비추며 시작된다.
잠시 쉬면서 전화 통화를 하는 그가 그리움에 사무친 목소리로 말한다. "아빠가 은지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한 거니까…. 아니 괜찮아. 그래, 조금만 기다려. 그래 그래, 조금만 기다려…."
이어 카메라는 집 안 식탁 앞에 앉아 있는 한 중년 여성을 비춘다. 그녀는 "우리 먼저 먹자"며 식탁 맞은편 빈 자리에 놓인 국에 밥을 떠 넣는다.
방 안에 들어선 여성은 누구에겐가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보지만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라는 기계음만 들려올 뿐이다. 그리고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교복을 입은 딸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보인다.
영화는 중년 남성과 여성의 행동을 교차 편집해 그들의 극대화된 절망을 표현한다. 남성은 낮에 수거한 노란 리본들을 엮어 긴 줄을 만들고, 여성은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그 안에 자신의 몸을 누인다.
같은 시각 중년 남성은 노란 리본을 엮은 긴 줄을 나뭇가지에 걸고, 자살을 기도한다. 그는 지금 두렵다. '발 아래 놓인 의자만 발로 차내면 딸 은지를 만날 수 있을까.' 그때 가녀린 손이 남자의 다리를 붙든다. 뒤를 돌아보니 딸이 서 있다. 서럽게 울먹이는 아버지는 딸의 몸이 괜찮은지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지고 부둥켜안는다.
남자를 다시 삶으로 이끈 딸의 모습은 어느새 앞서 언급한 중년 여성으로 바뀌어 있다. 서로를 껴앉은 둘은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키우려는 듯 웃음을 머금는다.
끝으로 카메라는 하나로 엮인 노란 리본을 따라 내려간다. '보고 싶어' '사랑해요' '너무…'라는 글귀를 비추는 와중에 흑백의 화면은 어느새 칼라로 바뀌고, 선명한 노란색이 화면을 물들이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 "살아갈 용기 없어질 때 널 위해 할 일 남았음을 기억할게"
6분 31초짜리 짧은 영화 '다시 사월'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이야기'라는 문구가 검은 화면에 뜨며 시작한다.
카메라는 이사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집 안을 둘러보는 한 젊은 여성을 비춘다. 버릴 물건을 싸놓은 비닐봉지를 발견한 그녀. 그 안을 살펴보니 타다 남은 밀랍초가 눈에 들어온다.
이어지는 여성의 회상 신에서는 택배를 수거하러 온 기사가 등장한다. 그가 "사업하시나봐요?"라고 묻자, 그녀는 "세월호를 기억하는 밀랍초예요. 사람들 반응이 좋아서 앞으로 보낼 일이 많을 것 같아요"라고 답한다.
다시 현재.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 온다. "밀랍초 자기가 버렸어?"라는 여성의 물음에 남편은 "그거 안 쓰잖아"라고 말한다. 전화를 끊은 여성은 초가 담긴 봉지를 들고 일어선다.
뉴스를 들으며 갑갑해진 그녀의 눈에 창밖 나뭇가지에 걸린 노란 리본이 눈에 들어온다. 이어서 흐르는 노래 '기억할게'.
"나의 마음이 아직 너를 보내지 못해. 빛나는 별들 그 가운데 네가 있다 생각해. 아직 많은 걸 몰라. 너를 보내지 못해. 그곳에서도 알고 싶을 진실이 밝혀지길. 우리는 작고도 약하지만 너를 사랑한 마음의 크기만큼 힘을 내 앞으로 나아가네. 너의 기쁜 얼굴 떠올리며."
노래를 배경으로 4·16 참사 당시 분노하고 울며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행동으로 옮겼던, 밀랍초를 만들며 '잊지 않겠다' 다짐하던 그녀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노래는 그 와중에도 계속 흐른다. "여기까지만 하고 멈추라 하는 사람들. 가만 있으라는 말보다 더 아픈 건 없는데. 잊지 않겠단 다짐 벌써 다 잊었나요. 감추어진 모든 것들이 드러나게 도와줘요. 우리는 작고도 약하지만, 나를 사랑한 마음의 크기만큼 힘을 내 앞으로 나아가네. 너의 기쁜 얼굴 떠올리며. 살아갈 용기 없어질 때 널 위해 할 일 남았음을 기억할게. 너의 착한 얼굴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영화는 숨겨져 왔던 인연의 고리를 드러내며 세월호 참사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것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