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60분' PD "그 분들은 매일 4월 16일입니다"

[문화연예 세월호 기획⑮] "세월호에 갇힌 가족들, 구조할 '골든타임' 놓쳤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문화·예술·언론·연예계에서도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CBS 노컷뉴스 문화연예팀이 '세월호 연속 보도'를 마련했습니다. [편집자 주]

<기사 싣는 순서>
① '예능 대세' 유병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② 김탁환 "세상은 추리소설처럼 '사필귀정' 아니더라"
③ 세월호 가족에게 '가족'으로 불리는 언론인
④ "1주기 지나면 언론은 또 썰물처럼 다 빠지겠죠"
⑤ "단상 위 대통령과 무릎 꿇은 母…내겐 충격적"
⑥ 배우 최민수, "세월호 참사는 미래에 대한 수장식"
⑦ '세월호 1주기'…다큐 영화 '다이빙벨'이 남긴 것
⑧ 형제자매들…"부모님 앞에서 슬픈 내색 못해요"
⑨ [르포] '아고라' 된 광화문 광장…꿈틀거리는 시민들
⑩ 배우 정진영 "세월호는 '비극'…유가족 발언 '경청'해야"
⑪ '표현의 자유'…세월호와 함께 침몰하다
⑫ '제자리서 맴맴' … 세월호 이후 '재난보도'는 그대로
⑬ "세월호를 연극으로? 도저히 못하겠더라"
⑭ 임형주 "세월호 1주기, 발언 주저하는 상황 슬퍼"
⑮ '추적 60분' PD "그 분들은 매일 4월 16일입니다"
(계속)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1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등대 뒤로 해가 저물고 있다. (사진=윤성호 기자)
잔인한 4월, 봄을 알리는 비조차 스산하고 우울하게 세상을 적셨다. 세월호 1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취재진은 KBS 2TV '추적 60분'의 정택수 PD를 만났다.

카페 주문대에서 커피를 받아온 정 PD가 먼저 기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를 왜 인터뷰하려고 하시나요?"

그는 KBS에서 벌써 몇년 째 시사프로그램에 몸담아 온 베테랑 다큐 PD다. 늘 프로그램을 통해 보람과 만족을 느꼈던 그에게도 세월호 특집은 풀리지 않는 실타래였다.

그는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세월호 피해 가족들을 취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쉬운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가족들에게 무관한 이야기만 듣다가 온 적도 있었고, 집 안 취재는 사전에 약속이 되어 있었지만 마감 날짜에 간신히 맞춰 들어갈 수 있었다. 4월 16일 그날처럼, 여전히 가족들은 세월호를 말하고 기억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세월호 생존자인 화물차 운전기사 김동수 씨와 정택수 PD. (방송 캡처)
그렇게 정 PD는 가족들 마음에 걸린 빗장을 조금이나마 열고, 그들의 마음을 방송에 담아냈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 그리고 생존자들의 속마음을 듣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을 해냈음에도 정 PD는 좀처럼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제 생각에는 많이 미흡했어요. 가족 분들이 '힘들다. 이 인터뷰를 꼭 해야겠냐'고 하셨을 때 절실히 느꼈어요.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아무리 뭘 해도 풀리지 않는 것이 이 사건에는 있어요."

그는 세월호 가족들과 생존자들이 여전히 4월 16일에 머물러 있다고 봤다. 아직도 이들의 상처는 현재진행형이다.

"그 분들은 매일 4월 16일입니다. 4월 16일이 다가올수록 조바심과 부담감이 커지고, 이제 사회 불신으로 극도의 공포감까지 가지게 됐어요. 전 아직도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이들의 트라우마는 이 사회와 국가의 구조에 대한 불신이 낳은 트라우마라고 느꼈어요. 아직도 그 분들은 세월호 안에 갇혀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그 분들을 배에서 구조해야 하는 거죠. 왜 다친 마음을 구조해내지 못하는가 생각해야 피해가 더 확장되지 않을 겁니다."


2월, 팽목항에서 실종자 허다윤 양의 제사를 지낸 박은미 씨. (방송 캡처)
이를 위해 정치권과 언론이 움직여야 했지만, 오히려 이들 사이에서 세월호 피해 당사자들은 객체로 전락했다.

"정부나 언론이나 세월호 사건을 형식주의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힘 싸움에서 피해 당사자들은 소외됐어요. 가족들에게 정부가 특별대우를 한다고 하는데, 그것조차 가족들에게는 상처입니다. 가족들의 마음을 들어주지 않고 있는 정부와 언론 때문에 그 괴리는 점점 벌어지고 있죠."

그가 중심적으로 만난 실종자 가족들은 선동꾼도, 시위자도 아니었다. 그저 자식의 시신이라도 돌아오길 바라는 평범한 부모들일 뿐이었다.

"저는 그 분들이 그렇게 싸우는 것이 편하지 않은 분들이라고 느꼈어요. 그런 일에 단련된 분들이 아닙니다. 세월호 사건 이전까지는 자식 성적을 걱정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평균적인 부모들이었죠. 그 분들이 왜 1년 동안 그러고 있겠어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정부와 언론이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겁니다. 그 분들이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우리가 같이 편해질 수 있을까요?"

실종자 박영인 군을 위해 부모님이 마련한 새 축구화. (방송 캡처)
그가 만난 피해 가족들은 이미 사회에서 받은 각종 상처들에 면역된 상황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분들이 저를 걱정하시더라고요. '방송 나갈 수 있냐', '큰 기대는 안 한다'. 피해를 겪은 당사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기관들에 대해 욕을 넘어서서 단념하는 지점이 심각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이 분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걸 들어야 합니다. 그것마저 멈추고, 입을 닫고 열지 않을 때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한국 사회의 주춧돌이나 다름없던 공감의 연대가 깨졌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사건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큰 틀이 무너졌어요. 감정적 연대의 틀이 깨진 거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감정적으로 소통하는 근본에 큰 잠재력이 있었는데 그것이 깨진 걸 심각하게 봐야 해요. 우리 사회 균열이 너무 큽니다. 진심으로 순진하게 이야기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에요. 서로 달라도 최소한 대화할 수 있는 기반은 깨지면 안 되는데 세월호를 통해 그 틀이 깨지고 있는 것이 보여요."

정 PD는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쉽고 본질적인 알맹이를 찾아야 한다고 봤다.

"세월호 사건 직후, 국민들이 죄책감을 느끼며 함께 힘들어했던 것.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할 수 있는 씨앗은 거기에 있다고 봅니다. 가장 쉬운 것을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피해 당사자들의 본질적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어떤 것도 무의미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후조치를 주도하는 소위 엘리트인 사람들은 이 사건의 본질을 보지 않고 어렵게 생각하고 대처하고 있습니다. 피해 가족들이 기술적인 어려움을 이해 못할 분들이 아닌데 막힌 것은 진심을 가지고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죠."

실종자 조은화 양의 어머니 이금희 씨. (방송 캡처)
그의 작업 역시 그런 연장선상에 있었다.

"(방송을 통해) 보통 부모의 마음을 그리는 것이 이 사건을 되돌아보는 출발점이 됐으면 했습니다. 분명히 힘든 것도 있지만 (그렇게 접근하는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힘들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이번 방송에서는 편집을 잘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보는 사람들이 직접 느껴야 되니까요."

피해 가족들을 왜곡되게 바라보고 있는 일부 시선도 경계할 대상이었다.

"그 분들을 누구의 편에 서서 유리하게 행동한다고 바라보면 안 됩니다. 그 분들은 누구의 편도 아닌 자식의 편이에요. 지겨우니까 그만하자, 그 이야기가 나오는 근본부터 짚어야 해요. 불신은 계속 깊어지고 있고, 이것도 어떻게 보면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분들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한 것을 넘어 조롱과 멸시까지 하고 있는 것이 일부 흐름인데 사회가 그것을 잘 통제하지 못하고 방관하는 느낌이에요. 정치권과 언론은 사건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각자가 가진 틀 안에 집어 넣으려고 하고 있고요."

그는 가족들에 대한 이런 괴리감과 시선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월호 가족들이 무언가를 노리는, 이상한 목적이 있는 사람들처럼 여겨지는 걸 바로잡아야 하고, 공감을 회복해야 해요. 이건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굉장히 큰일입니다. 다른 일이 일어났을 때, 마찬가지로 피해자는 거추장스러운 사람이 되는 건데 그러면 이 사회에 희망이 없잖아요. 왜 1년 째 그러고 있는지, 가족들의 마음을 듣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故 허재강 군 어머니 양옥자 씨. (방송 캡처)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정 PD는 자신의 방송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방대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담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세월호 참사는 그에게 영원한 과제로 남았다.

"어떤 부조리가 가족들을 거리로 나서게 만드는지 규명을 했어야 했는데 한 시간 안에 다 다루지를 못했고, 한편으로 소화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걸 파헤쳐서 진행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더 해야될지 저도 고민은 많은데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무언가 열심히 해야 되겠죠. 그런 마음들이 있어요."

세월호 참사는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아직 세월호 참사는 진행 중인데 (방송이) 끝났다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온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이 사건이 형식적, 도식적, 산술적으로 마무리하면 끝날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가족들 한명 한명을 기억하지 못하면 영구적으로 해결 불능이겠죠. 지금이 시작입니다. 5년이 됐든 10년이 됐든 계속 바라봐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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