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싣는 순서>
① '예능 대세' 유병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② 김탁환 "세상은 추리소설처럼 '사필귀정' 아니더라"
③ 세월호 가족에게 '가족'으로 불리는 언론인
④ "1주기 지나면 언론은 또 썰물처럼 다 빠지겠죠"
⑤ "단상 위 대통령과 무릎 꿇은 母…내겐 충격적"
⑥ 배우 최민수, "세월호 참사는 미래에 대한 수장식"
⑦ '세월호 1주기'…다큐 영화 '다이빙벨'이 남긴 것
⑧ 형제자매들…"부모님 앞에서 슬픈 내색 못해요"
⑨ [르포] '아고라' 된 광화문 광장…꿈틀거리는 시민들
⑩ 배우 정진영 "세월호는 '비극'…유가족 발언 '경청'해야"
⑪ '표현의 자유'…세월호와 함께 침몰하다
⑫ '제자리서 맴맴' … 세월호 이후 '재난보도’는 그대로
⑬ "세월호를 연극으로? 도저히 못하겠더라"
(계속)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Adorno)가 한 이 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 이후 문화의 부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지적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해 4월 16일 벌어진 세월호 참사는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를 통해 느낀 감정을 한국 연극인에게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1년이 다 되가는 지금까지 진상 규명은커녕 유가족조차 위로하지 못하는 이 한국사회에서 ‘연극’과 ‘극장’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 것이다.
연극인들은 지난 1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세월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포럼을 진행했다. 당시 참여한 발제자와 토론자의 이야기들을 정리해, ‘세월호 참사’ 이후 연극인들의 고민을 살펴봤다.
◇ 기국서 연출 "세월호를 연극으로…도저히 못하겠더라"
배우 기주봉의 형이자 대학로 원로(본인은 극구 아니라고 하지만) 연극인인 기국서 연출가의 말이다.
그 뒤로 가장 충격이 큰 일이 용산참사였습니다. 광주 다음으로 충격적이었어요. 그건 분노라기보다 눈물같은 비인간에 대한 충격이었습니다. 이후 쌍용자동차 파업이 있었지만 그 정도의 충격을 받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세월호는 정말로 충격이었어요. 이건 분노와 눈물을 지나서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상태에요. 그저 기가 막히는 상황입니다.
여러분 다 비슷하게 느꼈을 겁니다. 그런 참사는 도저히 영감을 얻어서 머릿속으로 작품 쓰고 상상을 하는 게 안 됩니다. 이 사건이 극화로 문학으로 예술로 나올 것이라 기대하고 생각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못하겠어요. 공백상태가 됐습니다. 그래도 그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꾸역꾸역 작품에 반영하고는 했는데…."
◇ 이양구 작가 "요즘 극장에서 관객을 기다리는 일은 얼마나 한가로운가요"
손해배상 가압류를 당한 파업 노동자와 세월호 참사를 연결시킨 연극 '노란봉투'를 무대에 올리고 있는 이양구 작가는 이날 '세월호의 창으로 무엇을 보는가'라는 발제를 했다.
정부가 시행령과 보상금으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어떻게 해서든 막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요즘 극장에서 관객을 기다리는 일은 얼마나 한가로운가요? 유가족 분들이 스님처럼 머리를 깎으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니 세월호의 창으로 무엇을 볼 것인가는 이분들의 눈물 맺힌 마음의 창―그것이 이제는 세월호의 창이겠지요―으로 무엇을 보는가 하는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우연한 기회에 고잔이 곶 안, 그러니까 배가 닿는 곳이라는 뜻을 지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뜻을 가지고 비유를 하자면 고잔이 팽목항입니다. 고잔은 아직 도착하지 않는 9명의 고도를 기다리는 가족 분들이 살고 계신 곳입니다. 부모들이 먼저 떠나보낸 자식들을 다시 만날 때까지 세월을 보내야 하는 안산(安山)의 마을입니다.
오늘날 극장과 연극은 팽목항(고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극장의 안과 밖에서 열리는 연극은 팽목항(고잔)에 도착하는 순례의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연극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가족을 향해 ‘세월’호를 타고 돌아오는 9명의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살기 좋은 마을 안산(安山)의 공동체에 도착하고 합류하여 함께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 이 풍경이 언젠가 도착하는 세월호의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장용철 배우 "우리는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절망적"
장용철 배우(극단 작은신화)는 지난해 연극미래행동네트워크를 결성하고 매주 마로니에공원에서 연극인들과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을 켜고 있다. 그는 이날 발제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진행된 '마로니에 촛불', '연극인 릴레이 동조 단식', '플래쉬몹' 등 연극인들의 행동을 일기 형식으로 정리해 소개하고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 지금도 같이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는 가족의 한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여전히 304개의 우주가 저물어가는 것을 그저 쳐다만 보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어른이라는 것, 그래서 비통합니다. 미안합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후쿠시마는 2만 명이 희생당한 사건이 아니다. 하나의 죽음이 2만 개 있는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대참사는 304명이 희생당한 일이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하나하나의 꿈과 희망이, 그 하나하나의 절망과 공포가, 그 하나하나의 기다림과 기다림, 끝내는 '사랑해요, 미안해요' 라고 말하고 있던,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그 단 한 개의 우주가 304번이나 반복적으로 사라져버린 사건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저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절망적입니다. 지난 1년의 시간은 그걸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마로니에 촛불'은 이제 보이지 않는 집이 되었습니다. 마로니에공원에서 피워낸 촛불이 우리를, 오히려 우리를 위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04개의 별빛이 우리를 따스하게 위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집에서 나와서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월호를 잊지 않겠습니다.”
◇ 윤한솔 연출 "연극으로 고통의 감각 끊임없이 회복해야"
지난해 조지 오웰의 '1984'를 무대에 올려 제2회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한 윤한솔 연출(극단 그린피그 대표)의 말이다.
기억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기억은 단순히 보존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변신, 변화의 문제입니다. 기억함으로써 단지 저장의 의미가 아닌 주체가 되는 기회가 돼야 할 겁니다. 세우는 주체가 될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되겠냐는 거죠.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예술의 무능함, 무고함에 진절머리가 날 때가 있습니다. 그걸 극복해보고 싶어 노력해 보지만 무능함을 느낍니다. 아마 안산 순례길이 끝나면 쫑파티하고 늦게까지 잘 겁니다. 누군가는 생활을 위해 알바와 일을 하겠죠. 그리고 내가 이걸 참여했다는 걸로 위안을 삼겠죠. 저는 그런 무력함을 극복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시도가 얼마만큼 유효한지는 모르겠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을 끊임없이 확인함으로써 고통의 감각을 회복하는 것 같습니다. 동일시하는 감각 회복은 불가능하겠지만 그것과는 다른 고통의 시간을 회복하는 거겠죠."
◇ 김소연 평론가 “다양한 방식으로 낱낱이 오래도록 질문하는 게 중요”
김소연 연극평론가는 '연출가가 자기 분노를 관객에게 강요하는 방식의 예술'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본 공연 중 세월호를 기억하자고 하지만, 작가나 연출가 등 창작자가 자기 분노의 감정을 관객에게 강요하는 공연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세월호를 다루고 기억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세월호를 다룬 작품 중 가장 좋았던 것은 연극 '노란봉투'였는데, 이 연극은 시민단체 손잡고가 손해배상 가압류 소송을 당한 노동자를 돕는 캠페인으로 시작한 겁니다. 이 연극에 '이고'라는 이름의 PD가 등장합니다. 한때 파업을 취재했던 그가 안산 한 공장의 노조 사무실을 다시 찾은 이유는 안산에 있는 세월호 분향소를 취재하러 왔다가 입니다. 아마 세월호 사고가 아니라면 다시 안 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취재 아이템이었던 사건을 다시 돌아보는 것. 저는 그런 순간을 잡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세월호 전체를 다 인식하기는 제게 너무 버거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너는 '세월호를 잊었어'하며 감정을 강요하는 것도 예술이 할 일은 아닙니다. 더 낱낱이, 오래도록, 질문하지 않는 안쪽까지 질문하는 것 등 다양한 방식으로 두껍게 이 시간을 살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김사빈 연출 “예술이 영원히 침묵 속에 가라앉을까 두렵습니다”
이날 포럼의 마지막 발표자는 김사빈 연출(극단 라나앤레오 대표)이었다. 아직도 잔인했던 지난해 4월의 악몽을 아직도 꾸고 있다고 한 그는 "진실을 알아가고 기억하는 것을 포기할까 두렵다"고 고백했다.
지난 일 년 우리는 모두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부패한 자본, 무능력한 권력, 그리고 이념의 충혈된 눈으로 피갑 칠을 하고 덤벼드는 그 어떤 사람들. 그러나 진정으로 시험대에 오른 것은 자본도, 권력도, 이념도 아닌, 바로의 우리가 가진 우리의 가치였습니다. 자본보다, 권력보다, 이념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져야 만 할 것, 인간…. 그리고 그 인간이 갖는, 무너지지 않는 본질적 가치에 대한 시험이자 도전…. 그리고 그런 인간의 가치를 표현하는 예술은 역시 마찬가지로 험난한 시험과 도전을 받아야 했습니다.
나는 진실을 잘 모릅니다. 나는 두렵습니다. 진실을 모르기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진실을 알아가고 기억하는 것을 포기할까 두렵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예술이 우리가 행하고 있는 예술이 영원히 침묵 속에 가라앉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런 예술을, 그런 우리를 무너지지 않고, 먹혀버리지 않고, 공포에 질리지 않게 해주는 것, 우리에겐 멈추지 않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기억해야만 할 의무가 필요합니다. 서로의 손을 굳게 잡을 연대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겐 우리가 필요합니다. 하여, 세월호는 우리에게, 바로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