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한때 정치인이었던 기업인의 오싹한 뒤끝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 얘기를 가감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경남기업 성완종 전 회장 (윤성호기자)
성완종 게이트가 여의도 정치판을 넘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정치판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던 한 기업인의 검은 돈이 유력 정치인들의 정치적 생명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게이트의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미 특검정국은 기정사실화되며 연일 뜨겁게 고조되는 분위기다.

'이런 판국에 대통령이 남미 순방길에 오를 수 있는가' 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라면 최고 권력 청와대까지 높은 파고가 미치고 있다 하겠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살아 꿈틀거리는 실세 중 실세들이다.

가장 정점에 있는 이완구 총리는 참으로 기구하기 짝이 없다.

청문회 등 임명 과정에서의 온갖 의혹과 구설수를 넘어서 천신만고 끝에 총리자리에 오른 지 두 달도 채 안됐다.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개발 비리를 겨냥하며 난데없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가 결국 본인 부패와의 전쟁에 빠진 꼴이다.


성 전 회장이 가장 배신감을 느낀 이는 바로 이 총리인 듯하다.

그는 이 총리의 2013년 4월 보궐선거 당시 3000만원을 줬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총리를 ‘머리도 크신 분’으로 지칭하고 자신은 성심성의껏 했다고 했다.

이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에 대해 “대단히 감정적이고 원망이 섞인 상태에서 남겨 놓은 메모로 객관적이지 않고, 냉정하지 못하고 의도성이 있다”고 폄하했다.

하지만 격앙된 나머지 부산시장의 이름까지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 리스트는 당연히 의도를 갖고 머릿속으로 자신이 돈을 건넨 여당 내 실세들을 떠오르는 순서대로 적어놓은 것이라는 게 맞을 듯하다.

구체적인 액수가 적시되지 않았지만 바로 목 앞에 칼끝이 와있는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김기춘, 허태열 전임 실장의 경우도 대통령과 지근거리에 있거나 있었던 핵심 실세라는 점에서 더 강도 높은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성완종 리스트는 결국 분노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절체절명의 난관에 빠졌는데 평소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정작 아무도 손을 뻗어주는 이가 없는 비정한 정치현실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격한 분노 끝의 극단적인 선택은 검찰 조사를 받고 나서 굳은 표정으로 따라붙는 기자들을 거세게 밀치며 빠져나올 때부터 어쩌면 예고됐다.

그는 평소 친분이 있고 본인의 얘기를 가감없이 그대로 실어주리라 믿는 모 신문사 부장에게 죽기 전 친절히 녹음해달라는 주문까지 했다.

자신의 잘못된 검은 돈 거래를 인정하며 은혜를 저버린 이들의 괘씸한 행각까지 세상 밖으로 꺼내놓고 싶어했다.

과거에도 기업들이 어두운 정치자금을 건넨 이른바 정경유착의 예는 숱하게 많았지만 이번처럼 기업인으로 또 한때 정치인으로 정치권을 넘나들면서 돈을 뿌린 경우는 매우 특이하다.

정치에서 정당하게 쓰인 ‘돈의 힘’이 큰 위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무서운 ‘돈의 독’이 숱한 이들을 정치적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교훈을 다시금 증명한 사건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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