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물밑에서 포스코건설 등 주요 수사를 벌이자 핫라인을 통해 보고받은 이 총리가 의제를 선점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한 것을 두고 검찰총장이 매우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검찰총장의 우려 속에서도 사정의 신호탄을 먼저 울린 이완구 총리는 결국 사정의 대상이 돼 자리를 내려놓을 위기에 처했다.
대검찰청 고위 간부들에 따르면 김진태 검찰총장은 이완구 총리가 지난달 12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직후 내부 회의에서 "수사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완구 총리의 대국민담화 내용을 뒤늦게 보고받은 김 총장은 "이런 식으로 정치권이 나서면 오히려 검찰 수사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수사 검사들의 사기가 얼마나 떨어지겠느냐"고 개탄했다고 한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대검의 고위 간부는 "총리의 강도높은 발언을 듣고 총장님이 우려를 많이 가졌던 것은 사실이다"면서 "검찰은 나름대로 스케줄을 가지고 수사를 하는데 정치권이나 외부의 압박을 받으면 수사가 방해될 수 있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정치권이 검찰에 지시를 내리는 듯한 모양새가 수사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 일선 수사 검사들의 사기를 걱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황교안 법무장관이 이 총리의 발언 다음날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고 공표한데 반해 대검찰청은 따로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것도 검찰총장의 불편한 심기를 반영한다.
앞서 이완구 총리는 대국민담화를 통해 "암적인 요소들을 과감히 도려내야 한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는 등의 강도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기자회견 불과 몇시간 전에 출입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등 긴급하게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이 총리의 담화문 발표 다음날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조상진 부장검사)가 포스코건설 본사를 압수수색하며 비자금 수사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엿새 뒤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임관혁 부장검사)가 자원개발 수사의 첫 타깃으로 경남기업과 고 성완종 전 회장 주변을 압수수색했다.
김진태 총장의 우려는 실제가 됐다. 검찰은 포스코건설 비자금 수사 및 자원개발 관련 수사를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경남기업의 경우 본류인 '성공불융자' 부분보다는 곁가지인 기업 횡령 및 분식회계 혐의에 더 집중해 '별건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고 성 전 회장이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이 총리를 지목하며 반발한 부분도 이 총리가 검찰 수사를 기획했다고 믿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이 총리가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경남기업이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것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성 전 회장)에서는 이 총리가 모든 것을 기획했다고 믿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사정을 부르짖던 이 총리가 사정의 대상이 된 아이러니한 상황은 결국 본인이 자초한 면이 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