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11일 대구에서 열린 KIA와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홈 경기 짜릿한 연장 승리를 합작했다. 나란히 홈런포를 쏘아올렸고, 연장 11회 극적인 끝내기의 발판을 놨다. 사자 군단의 과거와 현재, 그리그 미래가 동시에 그려진 의미있는 경기였다.
이승엽이 먼저 4회 포문을 열었다. 1-1로 맞선 가운데 KIA 선발 험버를 상대로 우중월 솔로포를 터뜨렸다. 이에 구자욱도 2-2로 맞선 5회 역시 험버를 두들겨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1점 아치를 그렸다.
연장 11회말도 둘이 없었다면 승리도 없었다. 3-3으로 맞선 가운데 먼저 구자욱이 선두 타자로 나와 기회를 만들었다. 구자욱은 이어진 박찬도의 희생번트 때 협살에 걸렸지만 재치있게 2루에서 살아남았다.
이어진 2사 2루에서 이승엽은 고의4구를 얻어내 기회를 이어갔다. 결국 박해민의 안타 때 구자욱이 끝내기 득점을 올렸다. 야마이코 나바로의 1회 솔로포를 빼면 삼성이 올린 4점 중 3점에 둘이 관여했다.
▲'아기 사자' 일깨운 우상의 조언
하지만 9일 롯데전부터 다시 살아났다. 4-4로 맞선 9회말 끝내기 안타를 터뜨리며 5-4 대역전승을 견인했다. 삼성은 3-4로 뒤진 9회말 박석민의 홈런을 동점을 만든 뒤 최형우의 볼넷, 이승엽의 안타에 이어 구자욱의 적시타로 끝을 냈다. 구자욱의 1군 무대 첫 끝내기였다.
그러더니 10일에는 홈런과 끝내기 득점까지 올린 것이다. 경기 후 구자욱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정말 기분이 좋다"면서 "관중도 많은 1군 무대라 더 그렇다"며 벅찬 소감을 밝혔다.
대선배의 조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구자욱은 "사실 최근 감이 좋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면서 "그런데 이승엽 선배가 조언을 해주신 게 큰 힘이 됐다"고 귀띔했다. 타격감이 한참 떨어진 구자욱에게 이승엽은 "중학교 야구도 아니고 프로인데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다"면서 "고비가 오는 게 당연하니 편안하게 마음을 먹고 넘기라"고 애정어린 충고를 했다.
이에 구자욱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감각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구자욱은 "10일 경기가 끝나고 이승엽 선배가 '이제야 좀 야구 선수가 된 것 같네'라고 하시더라"면서 "기분이 좋았다"고 웃었다. 이승엽은 초등학교 때부터 구자욱의 우상이자 롤 모델이다. 함께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런 대선배가 자신을 조금은 인정해준 것이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주전 1루수 채태인(33)의 재활로 운 좋게 개막전부터 선발로 뛰기는 했다. 그러나 채태인이 10일 복귀하면서 구자욱은 벤치로 밀렸다. 9일 경기에서는 베테랑 강봉규(38)가 선발 출전하기도 했다. 아직 붙박이 주전이 아닌 엄연한 신인인 것이다.
이런 상황을 구자욱도 잘 알고 있다. 구자욱은 "채태인 선배의 복귀로 나는 이제 뒤에서 대타나 대주자, 대수비 등으로 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시범경기 때 외야수로도 출전하기는 했지만 박해민(23)의 수비력에는 아직 못 미친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도 제대로 했다. 구자욱은 "우연찮게 채태인 선배가 아파서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10일 선발 출전한 채태인은 3회 볼넷을 골라 나간 뒤 왼 옆구리 통증을 호소해 구자욱과 교체됐다. 그리고 돌아온 5회 타석에서 홈런을 날리는 등 펄펄 난 것이다.
구자욱은 "사실 욕심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코치진에게)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기회가 있을 때 최대한 자신의 기량과 존재감을 각인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이제 1군 무대 11경기를 구자욱은 "야간 경기에 상대 투수들의 변화구까지 역시 1군은 다르다"면서 "때문에 체력 소모도 상당하지만 집에서 맛있는 것을 많이 해주셔서 괜찮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대선배의 조언에 깨어난 아기 사자 구자욱. 과연 거친 야생과 같은 1군 무대와 팀내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또 다른 '라이언 킹'으로 자라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