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10일 고 성 전 회장을 검시하는 과정에서 "고인의 바지주머니에서 메모지가 한 장 발견돼 확보했다"고 밝혔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해 정부 여당 인사들의 이름과 금액이 적힌 메모지였다.
김기춘,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름에는 각각 10만달러와 7억원이라는 액수가 적혀 있었고, 김 전 실장의 경우 '2006년 9.26'이라고 금품을 전달한 것으로 보이는 날짜가 적시됐다.
이밖에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과 유정복 인천시장, 홍준표 경남지사의 이름과 1~3억원 등의 금액도 등장하고,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완구 총리는 이름만 기재됐으며, '부산시장'이라는 단어도 적혀 있었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핵심 당사자가 숨진 상태에서 확인이 어려운데다 공소시효 등 법리적 장애가 생길 수 있다"며 수사 착수에는 일단 선을 그었다.
이에 따라 공소시효와 고 성 전 회장이 돈을 건넸다고 밝힌 메모지와 녹취록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먼저 정치자금법의 경우 공소시효가 7년이다. 따라서 2006∼2007년에 전달된 돈은 정치자금법을 적용하면 공소시효가 이미 완성돼 수사에 착수할 수 없다.
앞서 성 전 회장은 전날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김 전 실장에게는 2006년, 허 전 실장에게는 2007년에 돈을 전달했다고 주장해 이 경우 정치자금법 공소시효는 지났다.
다만 뇌물죄를 적용할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3,000만원 이상의 뇌물이면 특정범죄가증처벌법을 적용하는데 공소시효가 10년까지 적용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법조계 인사는 "구체적으로 따져봐야겠지만 김, 허 전 실장이 당시 국회의원 신분이었고 고 성 전 회장은 건설업자였으니까 직무관련성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며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봤다.
대한변협 대변인은 지낸 최진녕 변호사는 "뇌물죄를 가정할 경우 이 사건이 2006년이 있었다고 본다면 공소시효가 10년이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에게 돈을 건넸다는 당시 환율은 달러당 944.2원으로 10만달러면 9,442만원이기 때문에 5,000만원 이상 1억원 미만에 해당하는 공소시효 7년은 이미 지났다는 분석도 있다.
원칙적으로 고 성 전 회장의 녹취는 전문증거(법정 진술 외의 다른 증거)이기 때문에 성 전 회장의 진술이 있어야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이 이미 숨진 상황이기 때문에 법원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이 인정될 수 있다. 녹취 역시 성문분석을 통해 본인임이 확인되면 증거능력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은 본인 필체와 목소리를 확인하면 된다. 증거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법원에서 판단할 몫이다"며 검찰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수사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반면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돈이 갔다 하더라도 돈을 준 동기를 진술할 사람이 숨진데다 공소시효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수사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