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전 회장은 1985년부터 대아건설을 경영한 건설업계에서는 유명했던 인물이다.
1951년생으로 충남 해미에서 태어난 성완종 전 회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13살 때 무작정 상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신문배달 등으로 종잣돈을 만들어 사업을 시작했고 30대 중반에는 대전-충남 지역 3위 건설업체였던 대아건설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특히 2003년에는 도급순위 20위권 중반의 경남기업을 인수하면서 일약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 건설업계에서는 유명한 인물이 됐다.
건설경제인이었던 그는 지난 2003년 충청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의 특보단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 놓았다.
지난 2007년 대선때는 당시 한나라당의 경선후보였던 박근혜 후보를 측면에서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고 2012년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뒤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그러던 성 전 회장은 2012년 제 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이 이름을 바꾼 선진통일당의 공천으로 자신의 고향인 충남 서산-태안에서 당선돼 금뱃지를 달았고 이후 새누리당과 선진통일당이 합당하면서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 됐다.
성 전 회장은 그러나 자신이 만든 서산장학재단을 통해 지역주민을 지원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6월 의원직 상실형인 벌금 500만원을 대법원이 확정하면서 뱃지를 잃었다.
특히 자신의 의원직 상실로 치러진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는 동생을 경선후보로 내세워 지역구 관리에 나서기도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던 중 정부가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해외자원개발 비리도 수사하기로 하면서 첫번째 케이스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고 9일 오전 10시반 영장 실질심사가 예정돼 있었지만 새벽에 자신의 집에서 유서를 남긴채 잠적해 경찰이 추적에 나섰다.
성 전 회장의 한 지인은 검찰조사 직후 "너무 억울하다"면서 "자신은 경남기업 회장직도 내놓고 사회적으로 이미 선고를 받았다"고 항변해 왔다고 밝혔다.
고인이 된 성 전 회장에 대해서는 "매사에 열정적이고 아이디어가 풍부했던 분"이라면서 "이렇게 막을 내리게 돼 안타깝다"고 이 지인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