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영상자료원이 미보유 한국 극영화 94편을 발굴·공개하는 언론시사회 현장에서 그의 주연작 '나무 비탈에 서다'가 상영되면서다.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독짓는 늙은이'(1969), '무녀도'(1971)와 함께 최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순재는 극중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제대한 뒤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사는 재벌집 아들 현태를 연기했다.
현태는 하루하루를 무위도식하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자살한 전우 동호(김동훈)의 약혼녀 장숙(문희)이 찾아온다. 장숙은 동호의 자살 원인을 듣고 싶어 하지만, 현태는 한사코 밝히기를 거부한다.
사실 현태는 결벽증이 있던 동호를 증오한 까닭에 그에게 술집 작부를 붙여 타락하게 만들었다. 이후 동호는 술집 작부에게 남자가 치근대는 것을 보고 그 둘을 죽인 뒤 자신도 자살한다. 결국 현태가 넘겨준 유서를 통해 장숙은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고, 둘은 밤을 함께 보낸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 장숙을 만나 책임 추궁을 받은 현태는 이상 충동에 휩싸이고 동호에 빙의라도 한 듯 자신과 평소 가까이 지내던 술집 작부 계양에게 치근덕대는 남자를 칼로 찌르고 감옥에 간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을 정면으로 다루기보다는 전쟁이라는 국가폭력의 구조가 개인에게 남긴 상처의 내면을 탐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이날 5분으로 축약·공개된 영화는 주인공의 내레이션과 탱크 등 전쟁의 참상을 드러내는 장면을 오버랩 하는 방식으로 전쟁 탓에 생긴 트라우마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특히 긴박한 음악은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극대화하는 장치로 쓰인다.
당대 많은 문예영화들이 형식적인 실험을 통해 한국영화 표현의 경계를 넓히고자 노력했는데, 이 영화는 그러한 시도가 가장 성공적인 결과로 나타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인물의 복잡한 성격화,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대사, 혼란스럽고 황폐한 내면을 나타낸 화면 구성도 돋보인다.
이날 이 영화를 소개한 영상자료원 조준형 연구부장은 "한국영화가 동시대 유럽의 영화와 어떻게 공명하는지를 보여주는, 한국영화의 다양한 흐름 중 모더니즘 계열의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며 "1960년대 후반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데뷔작일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시사회에 참석한 최하원 감독은 "영화를 보면서 한참 젊은 시절 '영화란 무엇이냐' '영화가 드라마냐 영상이냐'를 논하고 공부했던 것이 느껴져 감동 받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