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싣는 순서>
① '예능 대세' 유병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② 김탁환 "세상은 추리소설처럼 '사필귀정' 아니더라"
③ 세월호 가족에게 '가족'으로 불리는 언론인
④ "1주기 지나면 언론은 또 썰물처럼 다 빠지겠죠"
(계속)
통화에서 느껴지는 이금희 씨(세월호 실종자 조은화 양의 어머니)의 말투는 싸늘했다. 불신 그 자체였다. ‘세월호 가족들이 느끼는 언론에 대한 불만이나 아쉬움을 인터뷰하고 싶다' 했지만 그는 끝내 고사했다.
지난달 29일 광화문에서 직접 만난 박은미 씨(실종자 허다윤 양의 어머니)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인터뷰를 요청하니 경계의 눈빛부터 보냈다. 본인은 끝내 거절하고 남편 허흥환 씨를 인터뷰하라고 했다. 허흥환 씨와 짧은 대화 끝에 다음 날 만나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허 씨가 되물었다.
“그런데 (보도) 나갈 수는 있어요?”
◇ “언론이 진실을 보도했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 없었을 것”
세월호 사고 이후 언론들의 보도는 세월호 가족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감’만 키웠다. 인터뷰를 해도 보도가 되지 않는 게 허다하고, 오히려 왜곡됐기 때문이다.
언론은 사고 초기부터 쏟아진 ‘전원 구조’라는 오보 이외에, 구조 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음에도 '육해공 총동원 입체 수색', '함정 23척 군용기 12대 병력 1천명 동원' 등 사실 확인 없이 정부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정부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외쳤지만, 이러한 내용들은 방송에 나가지 않았다. 분노는 극에 달한 가족들은 왜곡 보도한 방송사의 카메라를 부수고, 인터뷰를 거부했다.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라는 비판이 쏟아졌고, 언론사 스스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진상 규명이나 인양을 요구하는 외침은 외면했다. 오히려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광화문에서 단식을 감행한 유민 아버지 김영오 씨의 개인사를 언급하며 흠집 내기에 몰두했고, 그를 포함해 세월호 가족들을 보상금을 더 받으려는 사람들로 매도했다.
4·16세월호가족협의회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며 416시간 농성을 선포했던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만난 김 씨는 “언론에 아쉬운 게 많다”면서 “우리(세월호 가족들)가 지금 농성을 하는 것도 언론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이 정부쪽으로 편향돼 보도하고, 우리가 말하는 건 거짓으로 오도하고 외면해버리니까 우리가 이 상황에 나와 있는 거 아니겠느냐”며 “언론이 언론답게 진실을 보도했더라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 "1년이 지났는데, 언론은 달라졌을까"
지난 3일 서울 공덕동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사무실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 자리에서 유가족 김성실 씨(고 김동혁 군 어머니)가 한 말이다.
“그래도 언론에 기대한 게 있었어요. 정말 발로 뛰는 기자라면, 우리가 모르는 걸 하나쯤은 가져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진실을 좇는 기자라면,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아오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진상규명에 관심이라도 보이길 원했어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기자는 한 명도 없었어요. 전부 어머니 어떻게 지내십니까, 지금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일상은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치유는 되셨습니까, 나머지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아이에게는 몇 번이나 가십니까. 그게 다예요. 기사다운 기사를 쓰려고 하는 기자는 별로 없더라는 거죠.” - 'PD저널' 4월 5일 자 보도, “유족 모르는 사실, 하나쯤 보도해야 언론 아닌가” 中
“어떻게 이 문제를 파헤쳐 진상규명을 하고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하나 같이 다 하는 이야기는 추모와 기억뿐이었다”고 밝힌 그는 1주기를 맞이한 보도가 결국 추모 일색으로만 끝날까봐 그게 가장 두렵다고 했다.
◇ "기레기라는 오명, 현재 진행형"
언론개혁시민연대 추혜선 사무총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에 언론과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데, 이 표현은 현재 진행형"이라며, "세월호 사고 이후 언론의 자성과 내부 성찰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무력해 보인다. 아무런 진전이 없다"고 언론을 평가했다.
그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대의 아래 여러 합리적인 의혹이 제기됐다"며 "정부의 진상규명은 한계가 있더라도, 언론이 탐사보도라든지 취재를 통해 (제기된) 합리적 의혹에 대한 국민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하는데, 어느 한 가닥도 해소하지 못하고 1주기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점에서 변한 부분이 없다"고 했다.
이어 "(언론이) 갈등의 요소만 잡고, 그림 그리는 역할만 충실히하고 있다"며 "최소한의 역할들을 해내라고 (언론에 요구) 하기에도 (이제는) 기대를 저버린 것 같다"고 덧붙였다.
◇ “냄비 저널리즘…언론이 국론 분열의 주범”
민언련 김언경 사무처장은 세월호 사고 후 언론의 보도 행태를 한마디로 ‘냄비 저널리즘’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세월호 특별위원회가 잘 안되고 난항을 겪는 상황도 사실 언론의 탓이 크다”면서 “언론이 논란을 부추기고, 사실을 왜곡하고, 국론을 분열시킨 탓”이라고 봤다.
김 사무처장은 “세월호 보도 참사는 언론이 잘못됐을 때 국민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준 사건이다. 지난 1년간 아무런 반성과 성찰도 없이 보낸 언론의 모습이 안타깝다”며 아쉬워했다.
◇ 세월호 가족들 "반짝 관심 말고, 지속적이고 심층적인 보도를”
앞서 4·16세월호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416시간 농성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을 향해 “많이 취재 나와 주셔서 감사하다. 단지 1주기가 가까워졌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진상 규명 과정이 예상보다 훨씬 안 좋게 흘러가는 걸 아시기 때문에 관심 갖고 나오신 것으로 저는 믿는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보도해 주고, 단지 가족만의 동정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이 진상규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책임자 처벌을 어떻게 할 것인지,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어떠한 방법으로 만들어갈지를 보다 깊이 있게 취재하고 보도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이어 “오히려 국내 언론보다 국외 언론들이 더 심층적으로 취재하고 보도하고 있다는 항간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달라”고 전했다.
한 실종자 가족 역시 “1주기에 맞춘 언론의 관심은 감사하다"면서도 "하지만 1주기 지나면 또 썰물처럼 다 빠질 것 같다”며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과 진실 보도를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