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육성] 절대 못죽는 세월호병을 아시나요?

단원고 故최진혁 군 어머니 고영희 씨 인터뷰

세월호 참사 1년, 유가족들도 침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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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육성] 절대 못죽는 세월호병을 아시나요?"


고영희 씨 아들 최진혁 군. 세월호에서 사고직전 모습 (사진=고영희씨 제공)
고영희(43) 씨는 세월호로 자식도 잃고 건강도 잃었다.

고혈압, 만성두통, 신우신염, 신경쇠약, 협심증, 소화불량, 허리통증, 생리불순, 배뇨장애, 잇몸질환 등 '세월호병'을 열거하기 힘들다.

진도체육관에서의 고난, 도보행진, 광화문 노숙, 서명운동, 피케팅 등 1년간 풍찬노숙을 해 오던 끝에 생긴 후유증이다.

지금도 때가되면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지킨다. 또 재판이 열릴 때면 광주 지방법원까지 쫓아가 재판을 참관한다.

오래 앉아 있기 힘든 몸을 가눈 채 그녀는 재판과정을 지켜보며 꼼꼼히 메모해 뒀다가 나중에 검사들이나 변호사들에게 추궁하기도 한다.

몸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그녀는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절대로 못죽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다른 어머니들보다 강해 보인다는 말에 그녀는 "엄마는 강하다고 하는데 나는 아니었다"며 "그 때 아들이 있던 바닷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했고 지금 진실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인터뷰 내내 아들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닦았다.

▶ 어디가 제일 불편하신가?

- 두통, 기침 할 때 가슴에 통증. 남들은 기침하면 여기(입)를 막는데 나는 여기(가슴)를 잡고 해야 한다. 그러니까 백일 도보를 했잖은가. 저희가 작년 여름에 그거 하면서 제가 몸하고 부딪히면서 한 대 맞았다. 어느 누군가한테… 사복경찰 같다. 제가 봤을 때는. 여기를 맞으면서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다. 호흡까지 잘못 되서. 그러면서 기침을 하면 남들은 여기를 막는데 저는 여기를 잡고 해야 한다.

▶ 두통은?

- 두통이 심하다. 편두통으로 계속. 그러니까 저는 1심 때부터 광주 재판을 많이 보러갔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 보고 있으면 혈압 올라오고 혈압이 150이상 올라가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1심 때.

▶ 혈압하고 동반해 오는 건가?

- 네. 그러고 손발이 저려지고.

▶ 이게 세월호 참사 이후에 발생한 질환인가?

- 네.

▶ 그러면 치료는?

- 신우신염 때문에 진료를 받았었다.

▶ 신우신염은 뭔가?

- 신장, 콩팥에 염증이다.

▶ 그거는 왜?

-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움직일 수 있는 활동량은 이만큼인데 이렇게 너무 많이 움직인 거다. 국회에서 자고 광화문에서 자고 여기 안산분향소에서 자고… 스트레스 그리고 만성피로 그러니까 충분히 쉬어줘야 하는데 못 쉬고 그래서 신우신염이 왔다고 얘기하더라.

▶ 찬데서 자고 찬데서 밥먹고?

- 네. 그리고 잠을 못자고 저 같은 경우에는 불면증도 왔다. 불면증도 왔는데 제가 요 며칠은 좀 잤다. 그러니까 신경정신과 치료도 받는다. 지금 정신과 약도 복용한다. 그걸 안 먹으면 잠이 안 온다. 그런데 가끔 안 먹어보려고 노력하는데 안 먹게 되면 그냥 한 시간? 두 시간?

▶ 잠을 청하기 위해 하는 것은?

- 자려고 노력하면 더 잠이 안 온다. 그래서 하는 게 인터넷 보고 세월호 밑에 답글 달려 있으면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직접보고 얘기하라고 하고. 또 제가 집에서 잊어버리려고 뜨개질을 했다. 수세미를 몇 백개 떠서 광주랑 해남 분들한테 나눠줬다. 작년 겨울에 행사 있을 때 가서 제가 나눠주려고 했는데 못 갔다. 입원 중에 있었으니까. 신우신염 때문에. 그 분들 나눠주고 광주 시민 분들은 3년 시민 상주 모임이 있다. 그분들이 항상 우리가 법원에 가면 식사대접해주시고 그러니까. 1심 때는 거의 3박 4일을 광주에서 보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 까지 이틀은 선장재판이면 또 이틀은 청해진 재판 그렇게 돼 있었다. 그래서 3박 4일, 2박 3일 광주에서 잤다.

▶ 매주?

- 네. 그렇게 자고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에서 늦으면 7, 8시까지 또 그 재판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그것도 재판과정 다 지켜보고 또 메모해서 기록했다가 검사들이나 우리 측 변호사들이 질문하지 못했던 거 우리가 찾아서 다시 질문하고…

▶ 언제가 제일 아쉬운가?

- 아이가 중학교를 멀리 다녔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중학교가 아니고 항상 3~40분 버스를 타고 가야되는 거리였다. 그게 제일 아쉽다. 남들 30분 더 잘 수 있는데 빨리 깨워서 밥 먹이고 그 3년이라는 게 너무 아쉽다.

그리고 가끔 내가 피곤하다고 밥만 차려주고 들어간 적이 있다. 혼자 쓸쓸히 밥 먹였다는 자체가 제일… 나도 혼자 밥 먹는 거 싫어했는데. 그 어린애를 갔다가 밥 차려주고 엄마 피곤하니까 그게 제일 걸린다. 나 피곤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진짜 미안…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도 혼자 밥 먹는 거 싫어하는데. 그 아침에 입맛 없는데 눈비비고 멀리 학교 가는데…(울음)

▶ 언제 아이가 생각나나?

-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렸더라. 곧 있으면 벚꽃이 피겠구나. 최근에 가장 생각났던 건 애들 개학 입학 3월 2일인가 전 날짜간줄 모르고 그냥 길 건너에 일이 있어서 잠깐 갔다 오는데 횡단보도 맞은편에 단원고 교복 입은 남학생들이 세 명이 쭈욱 서있더라. 근데 심장이 뛰면서 아, (우리 아이는) 없지? 없어. 신호가 바뀌고 애들이 걸어오는데 심장이 막 뛰는데 애들 가슴에 이렇게 노란 리본이 다섯 개씩 세 개씩 다 달려 있더라. 아 없구나. 그래서 솔직히 저녁 해질 무렵에는 밖에 나가는 게 무섭다.

▶ 왜?


- 우리애가 멀리서 보면… 진혁이가 키가 크다. 깜짝 깜짝 놀란다. 성큼성큼 걸어오는 게 문득 우리 진혁이가 걸어오는 거 같기도 하고. 어쩔 때는 이 아이는 걸어오는데 저 뒤에 우리 진혁이가 보이는 거 같아. 그래서 그게 나가는 게 제일 힘들다. 그때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시간에…

▶ 지금도 체취가 느껴지나?

- 아이 아빠와 둘이 누워있으면 진혁이가 안 들어오는데 나 혼자 토요일 같은 때 이불속에 누워있으면 (아이가 들어) 온다. 이불속으로 들어와서 '엄마 나 오늘은 뭐 먹고 나갈껀데 오늘은 뭐해줘'. '그러자' 그러면 이불 속에서 10분, 5분은 같이 누워있었으니까 아직 그 이불이 그대로 있으니까 이렇게.

그래서 토요일 날 같은 때 우리 신랑이 일 있어서 분향소를 나온다거나 일 있어서 나가면 나 혼자 누워있으면 그때는 이제 울고 있는 거다. 이 시간에 아빠가 없으면 들어와서 나랑 같이 누워있어야 되는데 그래서 미쳐버리게 울다가 혼자 나가는 거다.

뜨개방 가서 뜨개질하다가 또 주변사람들 만나면 만나는 것도 무섭다. 그냥 그래서 집에서 혼자 울다가 지쳐서 누워있는 경우가 많다.

주변 사람들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냐?', '보상금 다 받았는데 왜 그러고 있냐?' 그래서 솔직히 주변 사람 만나는 것도 힘들다. 친인척들 만나는 자체도 힘들고. 저도 여기 지금 분향소 나온 것도 쉼과힘이라고 명성교회에 있는 그분들을 알아서 여기 뭐 할게 있어서 나와 가지고 있었는데 분향소도 잘 안 나온다. 내 아이 말이 하고 싶을 때 해야 되는데 야 너는 왜 진혁이 말 안해? 하기 싫은데 해야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냥. 그래서 애 아빠가 걱정을 많이 한다. 혼자 안 두려고.

▶ 지난 일 년 동안 언제가 고비였나?

- 진혁이 생일 때도 힘들었고 그냥 어느 날 문득 너무 힘들어서.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게 싫더라. 유가족들이 막… 그래서 혼자 그냥 이 분향소를 빙 도는데 나무가 보이더라. 아 내가 이 스카프를 묶고 저기 하면 저 가지가 부러질까 내가 죽을까 그걸 한 시간 반을 고민했다. 추운데 초가을 쯤 인가 보다. 진짜로 키만 닿았으면…

그리고 또 뭐가 있었냐면 인터넷 막 뒤졌는데 가장 쉽게 빨리 죽는 방법? 소주 한 병하고 게보린 열 알을 먹으면 죽는다는 것도 있더라. 그것도 봤었다. 그러니까 1심 재판 끝나고 선고 떨어지고 그랬을 때 잠깐 2심 들어가기 전에 항소 들어가기 전에 공백기가 있다. 그때가 너무 힘들었다. 아이를 위해서 뭐를 해줄 수 있는 게 없더라. 그때는 국회도 저기 한 상태고 광화문도 어느 정도 갈 수 있는 분들만 가게 되고 그때 진짜 힘들었다. 그래서 신우신염을 얻고 신우신염 온지도 모르고 막 그렇게 돌아다녔던 거다. 그때 진짜로 죽을 생각을 했었다.

▶ 잘 극복한 건가?

- 극복을 했다고 그래야 되나? 아니면 지금은 악에 받쳐서 분노에 차서 화가 나서 저 자식들 죽기 전에는 못 죽겠다. 저 자식들이 살인죄 적용받기 전까지는 못 죽겠다. 그러고 이게 진실을 밝혀질 때 까지는 진짜 못 죽겠다. 어쩔 때는 그렇게 악에 받치더라.

▶ 진혁이 엄마는 좀 강한 거 같다.

- 강해 보이려고. 왜냐면 아까 술 얘기는 했다. 그래도 교회는 다닌다. 신앙이 있다. 그 학교 옆에 명성교회 다니는데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시면 얘들을 다 살리지 않았을까? 믿음이 솔직히 말하면 바닥까지 내려갔다.

지금 근데 사고 때 또 강해졌던 게 뭐냐면 진혁이 음성으로 들은 게 두 가지 멘트가 있다. 진혁이를 못 찾고 헤매고 있을 때 '엄마보다 약한 사람을 가서 안아주라'고 그랬었다.

근데 그게 진혁이 목소린데 꼭 하나님처럼 들렸고. 두 번째는 진혁이를 찾고 너무 펑펑 울었는데 내가 다 죽여 버린다고 그랬을 때 '엄마 이제 다 용서하라'고 그런 멘트가 딱 들렸다. '엄마 이제 용서해 엄마보다 약한 사람을 안아줘'.

근데 또 어찌 보면 솔직히 가서 엄마보다 약한 사람을 안아주라고 했을 때 그때 당시 제가 안아준 엄마가 있다. 근데 그 엄마가 기운차려서 밥을 먹었었다. 밥을 못 먹고 있다가. 그러니까 이런 거보면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같은데 왜 진실은 아직도 안 밝혀지고 있는지…

세월호 하면 이제 그만해라 잊어라들 하시잖나? 이제 정상으로 돌아와라. 근데 자식을 잃어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자식을 잃어보지 않고서야 이렇게 사고가 아닌 사건인데 잊어라, 이제 그만해라 그거는 안 해줬으면 좋겠다. 그만 해줬으면 좋겠다. 왜냐면 세월호 특별법 다 되지 않았냐? 아직 아니다 틀만 있는 거다. 아직 법령도 정해지지 않았다.

배? 세월호 배 인양해야 된다. 그 안에 아직 돌아오지 못한 우리 자식들도 있지만 총 합쳐서 9명의 가족이 있다. 그분들은 뼛조각이라도 만져보고 싶어 하는데 분명히 그 배안에 있는데 그거 배를 인양 안하다고 하면 그분들은 어찌 사는가? 입장 바꿔 내가 그랬다면 저분들처럼 저러고 있을까도 싶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못 있을 거 같다. 내 아이 보내놓고. 국민여러분 도와주십시오. 세월호 배 인양해야 합니다. 지금 남아있는 가족들 살리려면 세월호 배 인양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국민의 세금을 잡아먹는 세월호 식충이가 아닙니다. 단지 아이를 잃은 슬픔 그리고 그 슬픔의 진실을 밝히고자 이렇게 발로 뛰고 몸으로 뛰고 심지어 해외까지 나가서 저희들의 진실을 밝히고자 이렇게 합니다. 국민 여러분이 도와주십시오.

☞ [CBS노컷뉴스 특별기획] "세월호 1년, 대한민국은 달라졌습니까?" 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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