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조선왕조실록] 영국 상선이 통상을 요구하다

음력 2월 18일

조선왕조실록, 오늘은 영국 상선이 충남 해안에 나타나 통상을 요구했던 소식을 전합니다.

1866년 고종 3년에 외국 상선 한 척이 충남 해미현의 조금진에 정박했습니다.

현장에 출동한 조선 관리들의 조사결과 '로나'라는 이름의 영국 배였습니다. 선주는 영국 런던의 상인 오페르트였고, 당시 배에는 30여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이 배에는 청나라 상인들도 있었는데, 오페르트는 청나라 상인들을 앞세워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청나라 상인들은 "우리 청나라는 수백년 동안 통상하면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들과 화목하게 지내면서 피차 이득을 보아 나라는 부강해지고 백성도 많이 늘어났으니 통상하는 것은 무익한 것이 아니다"라고 조선 관리들을 설득하면서 자명종과 망원경 등을 선물로 주려했습니다.

하지만 조선 관리들은 국법에 어긋난다며 빨리 조선을 떠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인 선주 오페르트의 목적은 통상 보다는 다른 쪽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2년 후 충청도 덕산에 있는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를 도굴하려다 적발됐습니다.

이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더욱 강화되는 계기를 제공했는데, 통상이 아니라 문화재 도굴같은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 세종 1년 (1419) : 거짓으로 병역을 면제 받은 보충병들을 다시 병역을 하게 함
⇒ 부정하게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들에게 다시 병역 의무를 지게 했다.

■ 세종 14년 (1432) : 충청도·경상도에서 공납한 염소새끼를 매도에 방목케 하다
⇒ 충청도와 경상도에서 공납한 새끼 염소 100 마리를 강화도 매도에 방목하게 했는데 이때 까지도 염소 사육이 일반화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 숙종 1년 (1675) : 무신을 승지 후보에 올리도록 하다
⇒ 문관만 하던 왕의 비서인 승지에 무관을 후보로 올리도록 했다. 아마도 당시 청에 대한 북벌이 논의되었던 것과 관련 있는 것 같다

■ 정조 19년 (1795) : 수차 제도를 통용시켜달라는 청이 올라오다
⇒ 가뭄이 들었을 때 논에 물을 대는 수차를 다시 만들라고 했다. 세종이 수차를 만들어 사용한 이후 별로 사용되지 않았다

■ 고종 3년 (1866) : 영국 선박 로나호가 충남 서산 앞바다에 나타남
⇒ 영국 선박 로나호가 충청도 해미 앞바다에 정박해 통상을 요구했다.

■ 고종 20년 (1883) : 당오전 구리돈과 은표를 함께 통용토록 함
⇒ 국가 재정이 부족해 상평통보 5배의 가치를 가진 당오전을 만들기로 했다. 1894년 까지 11년간 발행된 당오전은 제 가치를 하지 못해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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