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육성] "죽은 외동딸 따라가 지켜주고 싶어"

단원고 故최진아 군 아버지 최장식 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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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려준 선물 외동딸 진아를 떠나보낸 최장식 씨 (사진=권민철 기자)


세월호 희생가구 파악결과 결손가정·1자녀가정 64세대…"당신이라면 뭘 하겠나?"

세월호 희생자 가정의 가족수를 조사해 보니 희생자를 포함한 가족 숫자가 2~3명인 가구가 64세대나 됐다.

편모, 편부 가정, 조손 가정 등 결손가정이거나 자녀가 1명인 세대를 의미한다. 이들의 가족 잃은 슬픔의 깊이를 헤아리기는 더더욱 힘들 것이다. 최장식(52)씨 가정도 그렇다.

최씨 가정은 사고 이후 무자녀 가정이 됐다. 최씨에게 딸 진아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었다. 병원에서 아이가 생길 확률이 0.01%라고 했었다. 그래서 외동딸을 지극 정성으로 키웠다. 좋은 일만 하며 사는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다. 딸은 부부에게 삶의 전부였다.

하지만 딸은 세월호에 실려 돌아오지 못한 곳으로 떠났다. 부부의 집은 지난 1년 내내 적막 그 자체였다. 말도 웃음도 사라졌다. 이따금씩 한밤중에 부부가 서로 부둥켜안고 내놓는 통곡만이 그 집이 사람 사는 집이라는 걸 말해줬다. 그러다 혼절하곤 했다. 벌써 세 차례 앰뷸런스가 그의 집을 다녀갔다. 그는 요새도 딸 진아가 보고 싶으면 훌쩍 단원고 교실에 다녀오곤 한다.

▶ 딸은 얼마 만에 보신건가?

- 결혼해 3년 만에 봤다. 다니던 병원에서 2년 동안 안 생겨서 큰 병원 가서 했더니 포기하라고 했다. 아이가 생길 확률이 0.01%라고 했다. 그런데 생겼다. 얼마나 좋았겠나.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하늘에서 점지해줬다고. 착하게 살라고.

우린 아닌 게 아니라 남한테 싫은 소리도 안하고 남한테 해코지도 할 일도 없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당하고 나니까 다 싫다. 어제도 애 엄마하고 둘이 부둥켜안고 울었다. 저희는 지금 집에 들어가면 말하지 않는다. 말이 없어졌다. 집에 들어가면 집사람은 거실 나는 방 딱 들어가면 끝이다.

그리고 집사람 밥 차려주면 밥이나 좀 먹고. 맨날 술로만 사는 거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이렇게 아플까?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기다려 주는 애가 있잖나? 아빠 엄마 불러줄 애가 있잖나? 나는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그게 더 속상한 거다.

그래서 지금 회사에서도 복귀하라고 왔는데도 차마 못하는 거다. 주위 시선도 따갑고 또 뭐 나를 동정해주는 거 같기도 하고. 회사에서 해주는 것 같은데 지금 다니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지금 힘들다 굉장히 힘든 상태다.

▶ 어제는 어떤 일로 부둥켜 울었나?

- 애가 떠오르니까. 자꾸 애가 보고 싶고. 최고 힘든 게 애가 배안에서 얼마나 힘들어 했을까. 엄마, 아빠 살려줘 그 생각만 하면 막 머리가 돌아버려요. 불안한 거다.

내가 들어가서 구해주지 못한 죄책감, 미안함, 나라에 대해서는 분노. 너무 힘든 거다. 여기 있잖나? 우울, 분노, 불만, 절망, 무기력, 죄책감, 죽고 싶은 생각 다다.

저는 지금 애 쫓아갈까? 어떤 때는 애를 그냥 쫓아가버릴까? 가서 지켜줄까? 여태까지 못 지켜 준거 가서 지켜줄까? 그 생각한다.

그렇다고 애 엄마 혼자 있는데 저거 또 불쌍해서 어떻게 하나? 아휴 힘들다 진짜.(눈물) 사고 이후하고 이전하고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지금 뭐 남들한테서 울고 싶은 때도 있고 그래도 울지도 못하고 진짜 너무 힘들다. 그래도 나는 좀 나은 게 뭐냐면 저기 있는 분들 중에 얼굴을 못 본 사람이 있다. 늦게 나와서. 그나마 나는 볼이라도 부벼 보고 만지기라도 했다.

▶ 작년에 진아 생일 때 어떻게 지냈나?

- 애 좋아하는 것쯤 해주고 애 좋아하는 음식 몇 개 해서 먹으라 해주고 그리고 뭐 한참 앉아 있다왔다… 더군다나 생존자 애가 와가지고 같이 지내주고 그러니까 눈물이 얼마나 나던지.

저 같은 경우는 두 번 세 번 쓰러졌다. 애 보내고 난 다음에 세 번 쓰러졌다. 한번은 학교 갔다 애들 노는 거 보고 집에 와서 쏘주 한잔 먹다가 쓰러지고. 한번은 또 애 친구 만나서 밥 먹고 나서 집에 와서 또 애 생각나니까 또 울다가 쓰러지고. 119 불려가는 것도 지겨워. 이제 실려 가는 것도 지겹더라.

▶ 무기력은 어떻게 나타나나?

-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거다. 어쩔 땐 밥도 먹기 싫을 정도로 그냥 방안에서 꼼짝 못하고 집에만 있을 때가 많다. 나오지도 않고 그냥 뭐든지 다 하기 싫은 거다. 뭐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사실 뭐 울지 말아야지 애가 힘들어져서 울지 말아야하면서도 자꾸 눈물 나고. 애만 생각하다보면 울고. 우리 유가족들이 다 그렇다. 치유가 안 된다 저희한테는 평생이 가도 치유가 안 된다.

최고 힘든 게 막상 눈감으면 어떤 때 보면 애가 배안에서 너무 힘들어 했을까봐 차라리 물이 바로 들어와서 그냥 세상 떠났으면 말을 안했을 텐데. 그 공포에 떠는 거 생각 해봐라 한숨만 나온다.

▶ 직장 복귀계획은?

- 복귀는 해야 되는데 마음이 정리가 돼야 복귀를 하지. 마음에 정리가 전혀 되질 않는다. 그렇게 괜히 일하다가 애 생각나다가 괜히 다치기라도 해봐라. 물론 나도 손해지만은 회사에도 손해 아닌가?

그리고 이제는 그 사람들도 그러더라. 그만 좀 해라. 잊어라 잊어야 산다. 그 소리가 듣기가 싫은 거다. 어떻게 그걸 잊겠나? 걔들이 그만하고 싶어서 그만 하는 게 아니다.

일단은 우리 애들은 갔다. 이거 왜 조금이라도 잡아 놓지 않으면 다음번에 애들 또 죽일 건가? 벌써 생각을 해봐라. 유치원 다니는 애들 씨랜드부터 생각을 해봐라. 애들을 얼마나 죽였나? 우리는 그걸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 그런 건데 그만 좀 하라고? 그런 소리도 다 듣기 싫은 거다. 니들 자식이 죽었으면 그 소리가 나오겠냐?(한숨)

저희 집사람도 혼자서 나모르게 많이 운다. 나 나와 있으면 혼자서 애 방에 가서 사진보면서 많이 울고 굉장히 힘들어 한다. 그러고는 내 앞에서는 자꾸 웃으려고 내가 워낙 힘들어하니까. 근데 난 집에만 들어가면 방으로 그냥 직행한다. 여기 있는 분들이 거의 그렇다더라.

저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분들이 유가족 분들이 집에 가면 말이 없어지는 거다. 이게 뭐겠는가, 얘기하다보면 괜히 짜증만나고 신경질만 나고 그러다. 또 에이 술이나 한잔하러 간다거나 술사다가 집에서 먹고. 저도 좀 술을 좋아했지만 이렇게 매일 먹진 않았다. 이렇게 매일 한병 두병 먹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세번 소주 한 석잔 소주 반병정도 두 세번 먹지 이렇게 매일 먹지는 않았다. 술이 취해서 술김에 잔다. 그게 자는 건가? 세 시간 자다 일어나면 또 잠이 안와가지고 괜히 애 방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한숨만 푹푹 쉬다가 또 들어가서 누워있다가…

저희들이 정신건강이고 뭐고 다들 쇠약해졌다. 저뿐만 아니라 다들 물어보면 잠도 못자고 죽겠다 그러고.

▶ 이사 가신 뒤 진아 방은 있는 그대로 해놨나?

- 아니다. 애가 자기가 침대도 조그맣고 그래서 바꿔 달라 그래서 새로 싹 바꿔줬다. 원래 바꿔주기로 약속했으니까…

그럼 엄마 아빠 싹 바꿔줘 책상이고 농이고 싹 바꿔줘. 그래 알았어. 니가 원하는 거 다 바꿔줄게. 그렇게 약속을 했었다. 그래서 싹 바꿔줬다.

저세상에서도 그걸 봤으면 좋아했을라나? 모르겠다. 진짜 애하고는 우리 집에서는 대화가 없었다 하는데 우리는 대화가 많았다. 진짜 엄마 아빠 같이 얘기하고 뭐하고 대화는 진짜 많았다. 애가 착하게 커서 그런지 선생님 말도 잘 듣고 그래서 말 잘 들으니까 저렇게 됐다. 사춘기 때도 말썽한번 안 일으키고 엄마한테 조금 틱틱거리기만 했지 진짜 말썽한번 안 일으켰다.

▶ 주변 시선 때문에 이사를 갔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나?

- 네

▶ 그게 그렇게 힘들던가?

- 힘들다. 막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데 굉장히 힘들더라. 그래서 바로 이사하자 결정을 한거다.


▶ 지금 후회는 안하는가?

- 이사해서 후회는 없다. 오히려 잘했다고 본다. 아무래도 그런 시선이 없으니까.

▶ 멀리 갔나?

- 아니, 바로 옆 동네로 갔다. 알긴 알아도 하필이면 이사 간다는 게 그 애 친구가 사는 그 건물로 이사가가지고.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 애를 보니까 내 딸 보는 거 같고.

▶ 사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 지나가면 들린다. 세월호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그 소리가 듣기 싫은 거다. 아예 모르는 척하고 가만히 놔두면 괜찮은데. 저 집 뭐 세월호 어쩌고 저쩌고 얘기하면 짜증이 난다.

▶ 사실 그 분들도 흉보는 게 아닐텐데…

- 글쎄 그건 모르겠다. 뭐 흉보는 건지. 동네에서 계속 있으면 웃지도 못하자나. 그러니까 얘기하다가도 집사람하고 시장을 같이 가더라도 얘기도 못하고 그냥 그 시선이 굉장히 무섭더라. 나도 사람인데 웃을 수도 있잖은가? 맨날 언제까지 인상 푹푹 쓰고 길거리 다니면서도 인상 쓰고 다닐 필요는 없잖은가? 그 동네 살면서 느낀 게 뭐냐면 내가 여기서 살다가는 더 우울증 걸리겠다. 가뜩이나 우울증 걸렸는데 더 우울증 걸리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 인터넷 댓글도 보시나?

- 하도 욕을 해서 댓글은 아예 안 본다. 화가난다. 누가 그런지 그사람들 얼굴 좀 봤으면… 처음에는 많이 봤어요. 그런데 지금은 볼 생각도 없어요. 맨날 자기들한테 밥달라는 것도 아니고 돈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근데 왜 주위에서 우리를 못살게 구는지 모르겠어,

▶ 추석, 설, 명절 때는?

- 제발 그런 거 안돌아 왔으면 좋겠다.

▶ 명절 때 힘드신가?

- 명절, 생일, 조금 있으면 애 간 날이다. 말도 못하게 힘들겠다. 다들 힘들어 한다. 저뿐만 아니라 그런 날만 오면 힘들어한다. 아예 추석 명절은 뭐 꿈도 안 꾸고. 명절 날은 꿈도 안 꾼다.

▶ 올 설에는 어떻게 지냈나?

- 애한테 갔다 왔고, 애 좋아하는 음식이나 해주고 방안에다가 애 좋아하는 음식 좀 차려주고 말았다.

▶ 친척이나 형제는?

- 안다닌다. 못간다. 만나볼 생각도 없고.

▶ 그래도 의지할 수 있을 텐데…

- 의지가 안 된다. 친척이라고 해봤자 가면 좋은데 그 사람들도 괜히 저희 때문에 힘들어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우리만 힘들면 됐지. 괜히 그 사람들 우리 애 때문에 힘들어 질 필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냥 못 간다 연락만 해주고 말은 거다. 이제 명절 날은 저희는 안갑니다 그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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