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영령들 아픔 딛고 영면하소서"

제67주기 제주4.3희생자추념식 3일 오전 봉행

비에 젖는 비석을 망연자실 바라보고 있는 80대 노모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또 한줌의 눈물이 밀어내며 흐른다.

이제는 흐릿한 기억으로 잊혀질만도 한 67년전 4.3의 악몽은 각성효과를 가져오는 듯 비극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바로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되살린다.

“내가 그 때 같이 죽었어야 하는데... 살아도 산 목숨이 아니주...”

48년 4월3일 남편을 잃은 고생순 할머니(88.제주시)의 자조섞인 넋두리가 제주4.3평화공원 추모곡의 가사처럼 녹아든다.

4.3 영령의 넋을 달래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제67주기 제주4.3희생자추념식’이 유가족과 도내외 인사 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됐다.

국화꽃을 헌화하고, 향을 피워 올린 유족들은 당시의 아픔이 상기되는 듯 오열과 숙연함 속에 추념식을 올렸다.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두 번째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정부대표로 박근혜 대통령이 불참한 대신 이완구 국무총리가 참석했다.

정부 대표로 대통령이 4.3추념식에 참석한 건 고 노무현 대통령이 유일하다.


추념식은 비 날씨에 관계없이 야외광장에서 치러졌다.

추념식은 국민의례와 헌화 및 분향, 경과보고 영상, 정문현 4.3유족회장 인사말, 원희룡 제주도지사 인사말, 이완구 총리 추념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완구 국무총리는 추념사를 통해 “현대사의 큰 비극 가운데 하나인 4.3의 아픔을 이겨내고 희망의 새로운 시대로 나가자”며 “제주도민의 관용과 통합의 정신은 미래를 열어나가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인사의 말씀을 통해 “올해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진정한 4.3해결의 시점으로 생각한다”며 공동체적 관용 정신의 원칙을 비롯해 국민통합과 세계평화의 가치구현의 원칙, 미래세대 교훈 전승의 원칙 등 4.3문제 해결의 3대 원칙을 제시했다.

정문현 4.3유족회장은 “아직도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4.3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서글프다”며 “4.3으로 인한 낡은 이념 갈등을 끝내고 화해와 상생의 장으로 나올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4.3 희생자 만3천500여명의 이름이 새겨진 행방불명인 표석에는 비 날씨에도 불구하고, 헌화의 발길과 오열이 끊이지 않았다.

48년 10월 함덕 학살 당시 아버지를 잃었다는 김용례 할머니(72)는 “당시 아버지가 아무런 이유없이 트럭에 태워진 뒤 동네사람들과 함께 학살당했다”며 “어머니가 나를 포함해 다섯남매를 키운 그 고생은 말로 다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4.3희생자 추념식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정의당 천호선 대표등 여야 당 대표와 강창일.김우남 국회의원 등이 참석해 유족들의 아픔을 달랬다.

제주도민들도 오전 10시 교회와 성당의 타종에 맞춰 1분동안 추모 묵념을 올리며 다시는 이런 고통이 없기를 바랐다.

도외 지역에도 서울지역은 4일까지 탐라영재관에, 부산지역은 부산제주특별자치도민회관에 분향소가 설치된다.

일본에서도 오는 18일 오후 5시 도쿄 니뽀리써니홀에서 4.3추모행사가, 19일 오후 2시에는 오사카 시립이꾸노꾸 구민센터에서 재일본4.3희생자위령제가 열린다.

하지만 이같은 범국민적 추모행사 속에서도 극우단체들이 4.3희생자 결정을 문제삼으며 재심의를 주장하는 등 4.3흔들기로 갈등을 조장, 유족들에게 또다른 상처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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