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욱은 1일 경기도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케이티와 원정에서 4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의 맹타를 휘둘렀다. 팀의 5-1 낙승에 힘을 든든하게 보탰다.
특히 1군 마수걸이 아치를 그렸다. 구자욱은 6회 1사에서 상대 바뀐 투수 정대현의 시속 139km 직구를 잡아당겨 오른쪽 담장을 넘겼다. 5-0으로 달아나는 비거리 100m 쐐기 솔로포였다.
사실 구자욱은 데뷔 첫 홈런과 관련해 아쉬운 기억이 있다. 지난달 29일 SK와 대구 홈 경기에서 간발의 차로 1호 홈런이 무산됐다. 2회 SK 선발 윤희상을 상대로 작심하고 당긴 타구가 오른쪽 폴대를 살짝 벗어나 파울 홈런이 됐다. 경기 후 구자욱은 "맞는 순간 넘어간다고 직감했는데 폴대 안으로 들어왔으면 좋았을 뻔했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랬던 구자욱은 데뷔 4경기 만에 짜릿한 손맛을 제대로 봤다. 3-0으로 앞선 4회 2사 3루에서 우전 적시타로 방망이를 예열한 뒤 다음 타석에서 기어이 첫 대포를 터뜨렸다. 구자욱은 경기 후 "1군 정규리그에서 기록한 내 인생의 첫 홈런이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다만 2일 통화에서는 "지금은 좀 무덤덤해졌다"면서 들뜬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승엽 선배는 초등학교 때부터 롤모델"
이승엽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홈런왕와 MVP를 밥 먹듯 차지했고, 2003년에는 당시 아시아 한 시즌 신기록인 56홈런을 때려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요미우리의 4번 타자로도 활약했다. 구자욱은 "당시 야구를 했던 아이들은 모두 이승엽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면서 "나 역시 선배처럼 크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일단 첫 번째 꿈은 이뤘다. 이승엽 선배와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함께 경기에 뛰는 것. SK와 대구 홈 개막전에서 구자욱은 이승엽 바로 뒤인 6번 타순에 배치돼 같이 그라운드를 누볐다.
3회는 데뷔 첫 안타를 쐐기 2타점 2루타로 장식하며 2루에 있던 이승엽 선배를 홈으로 불러들이기까지 했다. 경기 후 구자욱은 "선배와 유니폼을 입고 같이 뛰는 게 꿈이었는데 첫 번째 꿈은 이뤄졌고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공교롭게도 이승엽과 구자욱의 홈런은 궤를 같이 했다. 이승엽 역시 SK와 2차전에서 시즌 홈런을 기록할 뻔했다. 역시 구자욱과 같은 궤적을 보여 파울 홈런이 됐다. 그런 이승엽은 1일 케이티와 경기에서 구장 개장 1호 아치를 그렸다. 다음 날 후배인 구자욱이 화답한 것이다.
▲장타력은 갖췄다, 관건은 벌크업
아직 구자욱은 이승엽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본에서 뛴 8시즌을 빼고도 이승엽은 KBO 리그 통산 홈런 1위(391개)에 빛나는 대타자다. 시드니와 베이징올림픽,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국제대회에서도 결정적인 순간 대활약을 펼쳐 얻은 별명이 '국민 타자'다. 올해 갓 데뷔한 구자욱에게는 어마어마한 존재다.
구자욱이 이승엽 같은 거포가 되기 위해서는 힘을 받쳐줄 체중이 필요하다. 구자욱은 189cm, 75kg으로 다소 왜소한 체격이다. 지난해 퓨처스리그 타율 3할5푼7리 8홈런 27도루가 말해주듯 아직은 거포보다 호타준족에 가깝다.
그러나 장타력만큼은 분명히 갖췄다. 부드러운 스윙으로 큰 타구를 제법 날린다. 올해도 일단 장타율은 6할2푼5리다. 추후 살을 찌우면 근력도 늘어날 테다. 이승엽 역시 데뷔 초반에는 호리호리한 몸매였지만 이후 꾸준히 웨이트 훈련을 통해 근육량을 키웠다. 현재는 183cm, 87kg의 든든한 체격이다.
구자욱은 우선 팀내 경쟁에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 현재는 1루수로 선발 출전하고 있지만 재활 중인 채태인이 한 달 뒤쯤 돌아오면 자리를 내줘야 할 판이다. 시범경기에서 외야수로도 나섰지만 아무래도 수비가 불안해 주전으로는 쉽지 않다.
하지만 구자욱은 "외야 수비도 문제 없다"며 다부진 각오를 드러냈다. 이어 "살이 잘 찌는 체질이 아니지만 열심히 먹고 운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엽의 길은 험난하고 엄청나게 멀다. 그러나 '라이언 킹'도 아기 사자일 때가 있었다. 구자욱은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