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전 부장은 경찰이 고문 가담자를 2명으로 축소해서 보낸 데 대해 "팔다리를 흔들고 반항하면 둘 가지고 안된다. 검사로서는 의문을 갖고 어프로치(접근)를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사팀에서 "고문 경찰관이 3명 더 있다"는 양심선언을 듣고도 바로 재수사를 못한데 대해선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최 전 부장은 박 후보자의 대법관 자격 여부에 대해선 "여야 의원들이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 따져볼 문제"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최 부장은 경찰이 지난 88년 1월 15일 저녁 박종철 열사의 주검을 화장해야 한다고 요구했을때 이를 거부하고 '시체보전명령'을 내리면서 물고문 사건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사청문회 증인이기도 한 최 부장과의 인터뷰는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 박상옥 후보자를 포함한 수사팀이 '고문 가담자가 2명'이라는 경찰의 수사결과에 의문을 품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원래부터 5명이라고 안 것은 아니다. 그러나 2명이서는 못한다는 걸 알수 있다.
박 열사한테 수갑을 채운 흔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양 팔을 하나씩 잡고 버둥대는 두 발을 잡고 머리를 욕조에 넣으려면 5명이 필요한 거 아니겠나.
▶ 그렇다면 박상옥 후보자도 수사를 제대로 안한 것인가.
=박상옥이 (고문 가담자에 대한 수사를) 은폐하고 축소하는 데 저항을 못한 것이다. 보통 검사로 봐서는 어떤 의문을 가지고 어프로치했여야 한다.
용의주도한 검사라면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한다. 하지만 용기가 부족했다. 내가 사망원인을 밝혀내듯이 밀어붙이기에는 말석검사로서는 약한 것이다.
▶ 박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자격이 있다고 보나.
=난 검찰에서 평생을 보냈지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한꺼번에 몰아세우면 말이 안된다.
이렇게 문제가 됐으면 인사 청문회를 통해 밝혀지고 드러나서 여야가 충분히 이해한 다음에 자격 여부를 따져보는 게 맞다. 나도 청문회에서 역사적 진실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얘기할 것이다.
▶ 경찰말대로 2명만 기소한 1차 수사는 왜 부실해졌나.
=범인을 색출하는 수사는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다 보니 결국은 (정권에) 휘둘린 것이다. 범인도 일일이 검사가 수사하면 좋은데 그건 소송법에 나오는 얘기다.
신창언 당시 형사2부장하고 안상수 검사(현 창원시장)가 당차게 맡아서 가면 좋은데 그 양반들이 그걸 못했다.
양심선언(조한경 경위가 고문경찰관이 3명 더 있다고 안상수 시장에게 진술)을 들었으면 당연히 재수사를 했어야 하는데 안한 것이다.
안 검사가 조 경위를 만나고 왔으면 검사장이나 검찰총장한테 얘기를 했어야 한다. 왜 이걸 못한 건지... 두 사람(조 경위와 강진규 경사)이 억울하다고 하면서 양심선언한 게 교도소 안에서 파다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재수사 안한 것은 형법상 직무유기다. 죄가 될수 있다.
▶ 물고문 사실을 밝혀냈는데 왜 수사팀에서 배제됐나.
=나는 당시 변사보고를 받고 '적당히 포장해서 묻어버리라'는 지시를 어기고 버텨서 물고문으로 사망한 사실을 밝혀냈다.
사망 원인을 밝혀낸 다음에는 '수사에서 손을 떼라'고 해서 배제됐다. '부검까지 했는데 왜 그러냐'고 했더니 '당신은 바쁘니 공안업무에 집중하라. 당신은 사건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상부에서는 저런 공안부장에게 사건 수사를 맡겨서는 안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넘기겠다'고 제안했는데 결국 형사3부에서 맡게 됐다.
▶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
=우리 상부도 그렇고 청와대도 그렇고 시끄러운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이건 묻어 버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정부와 청와대는 일단 은폐하고 보고 부득이 들통나면 축소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다.
내가 어쩌면 눈치 없이 군것이다. 그러나 검사가 정의롭게 살아야죠.
여야간 박 후보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야당에선 "독재정권 편에서 침묵했다"며 부적격하다고 결론 내린 반면 여당은 "후보자가 박종철 고문사건의 축소은폐에 가담했던 사실이 전혀 없다"며 옹호하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에 정권에 순응한 검사가 인권보호의 최후보루인 대법관으로 적절한지에 대한 판단은여론의 향배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