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에서 길을 잃고 해변에서 최후를 맞은 향고래가 6년 만에 다시 태어났다.
지난 30일 밤 8시 인천 강화자연사박물관 1층에서는 수컷 향고래(sperm whale)의 '골격 표본' 제작작업이 한창이었다. 전체 공정의 95% 이상을 끝내고 막바지 이빨 부착작업이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머리 부분은 몸길이의 1/3을 차지했다. 아래턱은 가늘고 길며, 원뿔 모양의 날카로운 이빨이 수십 개나 있다. 위턱의 이빨은 퇴화하어 눈에 띄지 않는다.
가슴지느러미 골격은 몸집에 비해 작았지만, 사람의 손바닥 형상을 하고 있어 이채로웠다. 꼬리 부분은 추동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뼈가 위아래 양방향으로 돌출된 것도 인상적이다.
'골격 표본' 제작에만 8개월이 걸렸다. 제작에 참여한 김경환(52) 조형물 작가는 "퍼즐을 맞추듯 고래 뼈를 다시 조립하다보니 다 자기 짝이 있었다"면서 "이 과정에서 생명의 위대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 심해에 사는 향고래는 왜 강화도까지 왔을까?
향고래는 깊은 바다에 서식한다. 수심 300m에서 1,000m에 사는 대왕오징어를 즐겨 먹는다. 때로는 수심이 2,200m에 이르는 심해까지 내려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특징이 있는 향고래가 수심이 얕은 서해에 출현한 것은 이례적이다. 앞서 지난 2004년에도 수컷 향고래 한 마리가 전남 우이도 해변에 좌초돼 죽은 채 발견된 적이 있다.
이 향고래의 위에서는 가로세로 각 50cm 크기의 스티로폼이 발견됐다. 이런 해양 쓰레기는 고래의 생명을 위협한다.
고래들이 플라스틱이나 스티로폼, 비닐 등을 대형 오징어로 착각하고 먹게 되면 위가 파열되거나 장협착 증세를 일으키게 된다. 결국, 병든 고래는 방향 감각을 잃고 표류하다 사망하기도 한다.
볼음도 해변에서 발견된 향고래의 뱃속에서도 1ℓ짜리 플라스틱 물병과 비닐이 나왔다. 하지만 고래연구소 안용락 박사는 "물병의 크기가 작아 이것을 직접적인 사인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볼음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향고래는 길을 잃고 서해로 들어와 죽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서해는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 길 잃은 큰 고래가 해변으로 떠올라 죽기 쉽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해양생물의 종은 다양하다. 하지만 자연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해양생물 표본이나 샘플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 2004년 전남 우이도에서 발견된 향유고래의 경우도 '골격 표본'을 제작하는 방안이 논의됐으나 결국 무산됐다. 제작기간이 긴 데다 예산도 많이 들어 선뜻 나서는 해양박물관이나 자치단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6월 개관하는 강화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되는 '향고래 골격 표본'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당시 향고래는 뻘에 있어서 크레인을 동원해 육지로 옮겨오는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현장에서 고래를 해체해 매립했다. 뼈에 붙은 살덩어리를 썩혀 제거하기 위한 작업으로 매립기간만 2년 6개월이 걸렸다.
고래 뼈를 발굴한 뒤에는 뼈가 머금고 있는 기름기를 제거하는 작업이 남아있었다. 1년 6개월 동안 뼈를 미온으로 가열하기도 하고 약품과 미생물 처리도 병행했다.
또 1년동안 건조시켰고 골격 표본의 조립에도 8개월이 걸렸다. 약 8000만 원에 달하는 강화군청의 예산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향유고래 골격 표본 제작을 지휘한 백용해 녹색습지교육원장은 "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향유고래 골격 표본을 완성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일로 우리 사회가 해양생물과 해양생태 보호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