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울산 모비스는 창원 LG와의 2014-2015 KCC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홈 1,2차전에서 만원 관중을 채우지 못했다. 티켓 판매를 담당하는 구본근 운영과장은 속이 상했다. 선수 시절 때처럼 승부욕이 솟아났다. 5차전을 앞두고 구단에 어떻게든 만원 관중을 채우겠다고 공언했다.
전화기에서 손을 떼지 않았고 발바닥에 땀 나도록 뛰어다녔다.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최종 5차전이 열린 지난 26일 울산동천체육관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5313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구본근 운영과장을 향한 내부 찬사가 쏟아졌다.
한명의 관중이라도 더 농구장에 찾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누군가는 이처럼 고민하고 노력한다.
그러나 모비스는 원주 동부와의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힘이 빠졌다. 답을 찾기 어려운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올해 챔피언결정전 2차전은 31일, 화요일 오후 5시에 개최된다. KBL이 공중파 TV 중계 편성을 잡으면서 경기 개시 시간이 오후 7시에서 오후 5시로 변경됐다.
오후 5시에 농구장을 찾을 수 있는 관중이 얼마나 있을까. 모비스 구단 관계자는 "2000명쯤 오실까요?"라며 한숨이다. 모비스의 시즌 홈 경기의 평일 평균 관중수는 4115명이다. 오후 7시에 시작된 경기들의 평균이다.
◇급박했던 공중파 중계 편성
KBL은 3월 들어 챔피언결정전의 공중파 중계 편성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공중파도 평일 황금시간대에 열리는 농구 경기를 갑자기 편성하기는 여의치 않다.
한 방송사는 오후 2시 경기를 제안했다. 그 시간 외에는 편성을 하기가 어렵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KBL도 난색을 표했다. SBS를 찾아갔다. 오후 5시 경기를 먼저 제안한 것도 KBL인 것으로 알려졌다.
SBS는 프로농구 중계권사가 아니다. KBL은 그만큼 절박했다. SBS의 윤세영 회장은 1997년 KBL 초대 총재다.
원주 동부와 인천 전자랜드의 4강 최종전이 열린 지난 27일 경기 시간 변경안이 발표됐다. 여론은 들끓었다. 하루 전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확정지은 모비스는 이미 1,2차전에 대한 티켓 예매를 시작한 뒤였다. 갑작스런 경기 시간 변경에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KCC "우리는 항의한 적 없다"
2014-2015시즌 타이틀스폰서 계약을 체결한 KCC는 시즌 초반부터 KBL에 불만이 많았다. 예년보다 줄어든 미디어 노출 때문에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보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즌 초반 중계 파행을 겪었던 프로농구다.
타이틀스폰서 계약은 중계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보통 공중파 중계 횟수가 옵션으로 걸린다.
KBL이 공중파 중계 편성에 올인한 이유는 애초 타이틀스폰서와의 관계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KCC가 내용증명을 보냈다는 소문도 나왔다. 그러나 KCC 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KCC 구단 관계자는 "이번 공중파 중계 편성과 관련해 KBL과 어떠한 교감을 나눴거나 어떠한 항의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KCC가 시즌 초반부터 타이틀스폰서의 대우를 받지 못해 불만을 가진 것은 사실이나 이번 건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타이틀스폰서 계약에는 올 시즌 30회 이상 공중파 중계가 돼야 한다고 나와있다. 그런데 케이블이나 위성TV 등을 통한 5회 중계가 공중파 1회 중계로 적용한다는 내용도 있다. 아쉽기는 해도 계약상 문제는 없다"고 설명했다.
◇KBL "후원사의 요청 있었다"
프로농구는 올 시즌 공중파를 통해 총 3회 생중계가 이뤄졌다. 여의치 않은 생중계 편성에 KBL도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프로농구를 통해 광고 효과를 보려고 했던 후원사들의 불만이 적잖았다.
KBL 관계자는 "챔피언결정전만큼은 공중파 중계도 잡히고 원활한 중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달라는 후원사들의 요청이 있었다. 내용증명은 아니고 타이틀스폰서가 아닌 다른 후원사들의 협조 공문을 받은 것은 맞다"고 밝혔다.
후원사들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KBL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갑작스런 경기 시간 변경에 농구 팬들에게는 정말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이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먹고 살기 바쁜 평일 5시가 웬말이냐'
그러나 팬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 경기장에 찾아가 농구를 볼 수 있는 권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챔피언결정전 1차전이 열린 29일 울산동천체육관 관중석에 현수막이 걸렸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KBL의 무능 행정', '먹고 살기 바쁜 평일 5시가 웬말이냐', '소통없는 독재정치 김영기는 물러나라' 등 팬심을 읽지 못한 KBL을 비판하는 목소리였다.
현수막은 관중석에 등장한 뒤 오래 지나지 않아 KBL 관계자의 제지를 받고 철거됐다. 현수막을 빼앗는 과정에서 한 팬이 허리를 다쳐 병원에 가기도 했다. KBL 관계자는 경기가 끝나고 찾아가 직접 사과했다.
모비스 팬들은 KBL에 확실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KBL 관계자가 와서 현수막을 빼앗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아예 현수막을 2개씩 제작했다.
현수막은 3쿼터 시작 때 걸렸다가 내려졌고 4쿼터 중반 다시 등장했다. KBL 관계자가 거친 몸동작으로 현수막을 빼앗는 모습에 야유가 쏟아졌다.
직장인은 물론이고 학생도 오후 5시에 열리는 프로농구 경기를 현장에서 관람하기란 쉽지 않다.
모비스의 양동근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평일 오후 5시 경기에 맞춰 오시기는 힘들지 않나. 반차를 내거나 원래 좋아하는 분들은 늦게 와서 후반만 보셔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금메달의 열기는 외국인선수 2인 동시 출전을 강행한 김영기 총재의 독단적인 결정이 알려지면서 금세 식었다. 4강 플레이오프 '언더독의 반란'으로 뜨거워진 농구 열기는 경기 시간 변경이라는 악재를 만나 빛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