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했던 탓일까. 김희진은 이를 악물었다.
이후 김희진의 독무대가 펼쳐졌다. 이동공격으로 도로공사 범실을 유도하더니 속공, 이동공격, 시간차로 연속 3점을 올렸다. 기울어지던 4세트가 서서히 기업은행으로 넘어왔고, 19-19에서 다시 오픈 공격을 내리꽂아 경기를 뒤집었다.
김희진의 분노는 끝나지 않았다. 이동공격으로 1점을 추가하더니 24-20에서는 속공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김희진의 4세트 활약 덕분에 기업은행은 29일 열린 V-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도로공사를 3-1(25-21 20-25 25-14 25-20)로 제압했다. 남은 3경기에서 1승만 거두면 2년 만에 챔피언 자리에 복귀하게 된다.
경기 후 김희진은 "캐치볼 이후에 열이 받았다. 진짜 제대로 쳤다. 손가락이 부러져라 찍었는데 그것 때문에 펄쩍 뛰고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그 때부터 표정도 바뀌었다. 아니었다면 또 흐지부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진은 1차전에서 8점을 올렸다. 김희진이었기에 부진한 성적이었다.
김희진도 "8점이면 엄청 부진했다. 그동안 최하가 6~8점 정도였는데 그걸 챔프전에 했으니…"라면서 "플레이오프 때부터 잘 안 풀렸는데 오늘로서 조금 풀린 것 같다"고 멋쩍게 웃었다.
특히 11-16으로 뒤진 상황에서 니콜의 후위공격을 홀로 막아내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정철 감독도 "1차전에 부진했던 김희진이 정말 중요할 때 완전히 살아났다. 블로킹은 2개인데 니콜을 원맨으로 떨어뜨린 게 정말 중요한 시점이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김희진은 "안 좋은 버릇이 생긴 게 원래 버티는 블로킹을 했는데 어느 순간 잡으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면서 "그 때는 자리를 지키려고 마음을 먹었다. 있는 점프, 없는 점프 다 끌어냈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하고도 챔피언결정전에서 GS칼텍스에 무릎을 꿇었다. 베띠라는 외국인 선수를 막지 못했다. 이번 시즌에도 상대방에는 니콜이라는 외국인 선수가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이정철 감독은 "김희진, 박정아가 지난 시즌보다 레벨이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이정철 감독의 예상 못한 칭찬에 김희진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질책이) 많이 줄었다. 똑같은 실수를 해도 예전에는 다음 작전 타임에도 그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은 괜찮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제 2년 만의 챔피언 복귀에 1승만 남았다. 김희진은 "지난 시즌에는 정규리그 2연패하면서 자만은 아니지만, 기다리는 입장이었다"면서 "지금은 바락바락 올라와서 잡고, 챔프전에서 또 잡고 있다. 그래서 더 좋다. 극적이다"라고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