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밀려 후퇴하던 6월말부터 7월초까지 모두 3차례에 걸쳐 한국군과 한국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한 민간인들로 지난 1일, 65년 만에 빛을 본 유해들이다.
1800명에서 7000명까지로 추산되는 사망자들은 제주 4.3 항쟁 관련자이거나 보도연맹원이 대부분으로, 죽임을 당한 이유는 ‘북한군에 부역할 수도 있어서’라는 게 지금까지 알려진 정설이다. 재판 등의 절차는 없었다.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의 2007년 1차 발굴에서 빛을 본 유해 34구는 5명씩 줄지어 앉은 채 머리 뒷부분에 총을 맞아 ‘학살’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기관이었던 진실화해위는 이 같은 학살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한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게는 공식사과와 위령사업 지원, 평화 인권교육 강화 등을 권고했었다.
유족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 역시 국가 공권력에 의한 학살이라는 점에서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살아있는 역사’라고 주장해오고 있지만, 우리 시대는 이를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역부족인 듯 보인다.
우선 발굴된 유해들, 갈 곳조차 없다.
충북대학교에 마련된 학살 민간인 유해 임시 안치소의 계약 기간은 올해까지. 안치소가 없어질 가능성도 있다.
새로 발굴된 유해 안치는커녕, 앞서 2007년 발굴돼 안치됐던 34구의 유해들까지 되찾아 와야 할 상황인데, 설혹 계약 기간이 연장된다 하더라도 이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게 유족회 측의 입장이다.
유족회 모소영 사무국장은 “임시 안치소의 경우 계약 기간 만료에 따라 유해들이 또 다시 집 없는 떠돌이 신세로 전락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추가 발굴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모 국장은 “더 많은 유해들이 땅 속에 묻혀있는 것이 확인됐지만, 모두 발굴할 수 없는 사정 때문에 덮어버렸다”고 말했다.
학살터를 평화공원으로 조성하는 게 유족회의 궁극적인 목표다. 앞선 절차로 해당 부지에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지금까지 발굴된 유해를 보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이번에는 예산이 문제다.
유족회 측은 최근 컨테이너 설치 방안에 대해 대전 동구청과 대전시에 협조를 구했지만, 동구청 측으로부터 일언지하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대전시 역시 권선택 시장이 ‘적극 검토’를 강조했지만, 실무 담당자는 여전히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피력하고 있다.
“예산 지원 문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역사 인식에 대해 아쉬울 때가 많다”는 게 모 국장의 한숨이다. 결국 유해들의 안식처 찾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진실화해위 활동으로 진실은 밝혀졌다. 이제 잘못을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작업이 필요한 때다. 그렇지 않은 집단은 같은 과오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보다 독일을 칭찬하는 이유다.
학살의 사실은 인정됐지만, 그 날 시작된 역사의 질곡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