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정훈 병장의 어머니 이연화(53)씨는 천안함 사건 5주기인 26일을 며칠 앞두고 큰 선물을 받았다.
얼마만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오랜만에 꿈에서 아들을 만난 것이다. 깜짝 놀랄 정도로 밝게 웃으며 자신에게 기댄 아들의 얼굴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뇌리에 남았다.
옅은 미소를 띄우며 말하던 이씨의 눈가엔 금세 굵은 눈물이 맺혔다. 이제는 아들과 두 손을 맞잡으며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아직도 아들이 군생활을 하고 있다'며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이제 간신히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추억을 함께한 장소는 자연스레 멀리하게 됐다.
“정훈이가 자리에 앉아 맛있게 먹던 모습이 아른거려 그 식당에서 밥 먹을 자신이 없어요. 함께 여행 갔던 곳에 선뜻 발을 내디딜 수 없더라구요. 아이와 함께 공유했던 모든 것이 눈에 밟혀서 아무것도 못해요.”
고 최정환 상사의 부인 최선희(38)씨는 한창 ‘아빠’를 찾는 5살배기 딸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딸이 친구들의 아빠 자랑에 풀이 죽어있는 모습을 볼 때면 저절로 가슴이 미어진다.
“예전엔 할아버지를 아빠라고 불렀는데 이제 아닌걸 알게 됐죠. 밤에 ‘할아버지는 아빠가 아니야’라며 울기도 해요. 아빠가 ‘하늘나라 갔다’고 설명해주면 ‘사다리를 타고 갔냐, 비행기를 타고 갔냐’며 자기도 비행기를 태워달라고 때를 쓰기도 하죠.”
무뚝뚝하게만 보이던 고 신선준 상사의 아버지 신국현(63)씨는 아들 이야기를 떠내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아들을 잃은 뒤 앞만 보며 달려온 자신을 한없이 탓하게 됐고, 결국 삶의 의미를 잃었다.
“전에는 조금 더 벌어서 자식들한테 조금이라도 더 해주고 싶은 생각에 열심히 일했죠. 그런데 이제는 특별히 줄 사람이 없잖아요. 아등바등 사는게 재미가 없어졌죠.”
특히 아들과 손자의 손을 잡고 목욕탕에 오는 이들을 보면 아들이 더욱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따뜻한 봄이 오면서 청첩장이 쌓일 때마다 아들도 살아있다면 결혼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고 이상희 하사의 아버지 이성우(54)씨는 천안함 사건 이틀 전 장남과의 전화 통화가 아직도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빠 내가 사랑하는거 알지?”라는 처음 들었던 사랑고백이 마지막 대화가 됐기 때문이다.
자신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두 아들이 남아있지만, 큰 아들에게 못내 전하지 못한 말 한마디를 꺼내는 그의 목소리가 얇게 떨렸다.
“모든 것을 잊고 저 세상에서 잘 지내면 나중에 먼 훗날 저도 가게 됐을 때…, 그때 볼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