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카르도 포웰은 경기 전 'I ♥ KOREA'라는 문장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몸을 풀었다. 한국이 너무 좋은 포웰은 집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포웰의 농구는 평소와 달랐다. 여전히 공격적이고 여전히 폭발적이었지만 그는 스코어러를 넘어 리더의 역할에 보다 충실했다. 동료들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지시했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주저없이 감정을 표출했다.
"포웰은 팀이 지는 순간 시즌이 끝나는 벼랑 끝 경기가 되면 평소와 달라진다. 스스로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진다. 평소보다 더 집중한다"
포웰의 성격을 잘 아는 한 농구 관계자의 말이다.
승부욕이 독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지난해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에서 그랬다. 전자랜드는 부산 케이티와의 최종 5차전에서 57-79로 패했다. 전자랜드는 2쿼터까지 17점 차로 뒤졌고 포웰은 경기 내내 휘슬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후반 들어 스스로 경기를 망쳤다. 무리한 공격, 느린 백코트에 테크니컬 파울은 덤이었다.
25일 오후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시즌 6강 플레이오프 원주 동부와의 4차전은 달랐다.
신인 포워드 정효근이 초반 팀 분위기를 살렸다. 1쿼터에만 7점을 올렸다. 포웰 대신 선발 출전한 테렌스 레더가 버틴 시간에 전자랜드는 주도권을 잡았다. 유도훈 감독은 "포웰의 막판 체력을 감안해 레더를 먼저 내보냈다. 3차전 막판에는 지쳐보였다"고 밝혔다.
포웰은 이날 코트에서 포인트포워드 이상의 존재였다. 자신의 날카로운 패스를 받은 이현호가 슛 던지기를 주저하자 곧바로 불만을 나타냈다. 누구로 하여금 공격을 시킬 것인가를 직접 선택할 때가 많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입이 튀어나왔다.
그만큼 집중력이 강했다. 동부의 외곽슛 부진이 겹치면서 전자랜드는 37-24로 앞선 채 전반전을 마쳤다.
포웰은 2쿼터 도중 박병우와 충돌해 입 안이 터져 출혈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3쿼터 들어 더욱 힘을 냈다. 8점을 몰아넣었다. 3쿼터 종료 6분40초 전, 점수차를 16점으로 벌리는 골밑슛을 성공시킨 뒤에는 양팔을 들어 자신의 근육을 자랑하는 세리머니로 홈팬들을 열광시켰다.
포웰이 20점 10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달성한 전자랜드가 벼랑 끝 위기에서 탈출했다.
전자랜드는 동부를 79-58으로 누르고 시리즈 전적을 2승2패로 원점으로 되돌렸다. 이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할 한팀은 오는 27일 원주에서 열리는 최종 5차전에서 결정된다.
집중력이 좋았던 것은 포웰 뿐만이 아니었다. 정효근이 17점을, 정병국이 14점을 올리며 팀 공격의 윤활유 역할을 했다. 전자랜드는 리바운드 싸움에서도 39-31로 동부에 앞섰다.
동부는 경기 초반 데이비드 사이먼이 어깨를 다쳐 남은 시간 출전하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