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뉴스] '세월호 의인들' 왜 그들을 외면하나?

사고발생 1년이 다됐지만 의사자 5명 의상자 1명 지정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박재홍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세월호 의인' 김동수 씨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선장과 선원은 도망치기 바빴고 해경은 탈출하라는 방송도 하지 않은채 침몰하는 세월호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 과정이 생생하게 생중계 되면서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그렇지만 '모든 승객이 안전하게 탈출할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며 물이 가슴까지 차오를 때까지도 승객들을 탈출구로 인도하며 50여 명의 목숨을 구한 뒤 끝내 돌아오지 못한 고 박지영 승무원, '파란바지의 구조영웅'으로 불리던 화물차 운전기사 김동수 씨 단원고 교사들과 학생들 등 의인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이 의인들에 대한 치료나 생계지원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거나 의사자 인정이 더디기만 하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세월호 의인들' 왜 그들을 외면하나? 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세월호 의인'들을 외면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 세월호 참사와 구조과정에서 희생되거나 다친 분들을 의인으로 부르며 칭송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런 분들에게 사후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만 1년이 다된 지금까지 의사자 5명 의상자 1명이 지정됐을 뿐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5월에 세월호 승무원인 고 박지영씨와 연인사이인 고 김기웅씨 고 정현선씨 등 3명을 의사자로 인정했다.

고 박지영 씨는 세월호가 침몰 될 당시, 혼란에 빠진 승객들을 안심시키며 구명의를 나눠주고 구조선에 오를 수 있도록 하고 본인은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했다.

고 김기웅 씨는 세월호가 침몰 될 당시,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신분이었으나 학생들의 구조를 돕고 선내에 남아 있는 승객들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본인은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세월호 승무원인 고 정현선 씨 역시 세월호가 침몰 될 당시, 학생들의 탈출을 돕고, 선내 승객을 구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본인은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했다.

복지부는 이어 지난해 12월 세월호 사고 해역에서 수색작업을 벌이다가 숨진 잠수사 이광욱 씨와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을 구조한 이벤트사 대표 안현영 씨 등 2명을 의사자로 인정했다.

이씨는 지난해 5월6일 자원봉사로 수색작업을 펼치던 중 잠수부 인도선을 세월호에 연결하려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변을 당했다. 세월호와 계약을 맺고 이벤트를 맡아온 안씨는 사고 당일 선체 3층에 있다가 배가 기운 상태에서 바닷물이 차오르자 의자를 쌓아 승객 15명을 4층으로 올라가게 했지만 본인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들 5명만 의사자로 인정이 됐다. 그리고 지난 3월 19일 세월호에 탑승했던 화물기사 최재영 씨가 의상자로 인정됐다. 최 씨는 세월호 침몰 당시 다리에 3도 화상을 입었으면서도 학생들의 탈출을 도왔다.

▶ 단원고 교사들도 많았지 않았나?

안산 단원고 교정 (자료사진)
= 단원고 교사들은 공무원의 신분이어서 의사자나 의상자로 지정되지는 않는다. 공무원들은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중사망(이하 일반순직)으로 인정되거나 고도의 위험한 직무중 사망(특별순직)으로 인정되면 일반국민이 의사상자로 지정되는 것과 같은 예우를 받는다.

일반적으로 공무상 사망할 경우 순직인데 공무원 연금법에는 '순직공무원'에 대한 정의를 "고도의 위험직무를 무릅쓰고 공무수행 중 사망한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박육근, 유니나, 전수영, 이해봉, 남윤철, 김응현, 최혜정 등 7명의 단원고 교사들에 대해서는 '순직공무원'(특별순직)으로 결정이 됐다. 이 분들의 유족들에 대해서는 규정에 따라 일시보상금과 배우자나 미성년 자녀에 대해 유족연금이 지급된다.

▶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 씨를 비롯해 더 많은 의인들이 거론되지 않았나? 왜 아직 의사상자 인정이 늦어지고 있는거냐?

= 법의 맹점 또는 한계 때문에 '의사자'로 지정되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고 양대홍 사무장과 고 이민섭 잠수사의 경우다.

양대홍 사무장은 세월호가 기울고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이 자신들만 살겠다며 탈출하던 시각에도 고위 승무원 가운데 유일하게 배에 남아 마지막까지 탑승자들을 구하다 실종됐다가 한 달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왔다.

양 사무장은 마지막 순간 아르바이트생과 조리사의 목숨도 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9일 대국민담화에서 양대홍 씨 등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이런 분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보건복지부 의사상자심의위원회에서는 양대홍 사무장의 경우 '의사자 인정'결정을 보류했다. 이유는 승객을 구하는 행위가 사무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한 것으로 봐야하는지 아닌지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복지부 관계자가 설명했다.

의사상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1조에는 "이 법은 직무 외의 행위로 위해(危害)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구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과 그 유족 또는 가족에 대하여 그 희생과 피해의 정도 등에 알맞은 예우와 지원을 함으로써 의사상자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무장이 목숨을 걸고 승객들을 구한 행위가 사무장 고유의 직무를 수행한 것이냐 아니면 직무 외의 행위로 볼 것이냐에 대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잠수사 고 이민섭씨의 경우는 의사상자심의위원회에서 '의사자 인정'이 부결됐다.

같은 잠수사지만 고 이광욱 씨는 의사자로 인정되고 이민섭 씨는 인정이 안 된 이유 또한 법률적인 한계 때문이다.

민간잠수사 고 이광욱 씨의 경우는 자원봉사였으니까 의사자로 인정됐지만 이민섭 씨는 구조업체와 계약을 맺고 구조활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자신의 직무였다는 얘기다.

잠수사 이민섭씨는 지난해 5월 30일 침몰된 세월호 4층 선미 다인실 창문 절단작업 도중 의식을 잃어 목포 한국병원에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이 씨의 사망직후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가 이씨 빈소를 찾아 인천시를 통해서 이씨가 의사자로 인정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며 유족을 위로한 바 있지만 보건복지부에서는 '직무 외 행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결시켰다.

세월호 특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박종운 변호사는 "고 이민섭씨가 의사자로 인정될 수 있도록 방안을 찾았지만 법률의 한계 때문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 단원고 교사들 중에도 순직이 인정되지 못한 경우가 있나?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고 박지영 승무원, 고 정차웅 군, 고 최혜정 교사, 고 양대홍 사무장, 고 남윤철 교사 (자료사진)
= 김초원, 이지혜 두 분의 교사들은 공무원연급법상 순직공무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의사자로 지정되지도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두 분이 기간제교사로 정식 공무원의 신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기간제 교사의 경우 담임을 맡아 다른 교사들과 같은 직무를 수행했지만 신분상 공무원이 아니어서 '순직공무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확인했다.

그렇다고 이 두 분의 교사가 '의사자'로 인정된 것도 아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심의위원회에서 김초원, 이지혜 두 분이 구조요건에 해당하는지 자료를 보완해달라고 해서 심사가 보류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두 분의 의사자 인정여부를 심사했지만 유독 김초원 이지혜 두 분의 교사가 담임을 맡은 반의 학생들이 많이 사망해 구체적인 진술이나 증언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서남철 경기도교육청 안산교육회복지원단장은 "김초원 선생님과 이지혜 선생님 두 분은 증언이나 확실한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그 자료를 수집하고 보완하고 있는 중으로 안다"면서 "의사상자의 경우 구조나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하다 사망했다는 구체적인 증언이나 목격자가 있어야 하는 데 유독 두 분 선생님 반의 경우 사망한 학생이 많아서 주위에 있었던 사실을 증언할 충분한 자료가 확실하지 않아서 아직 결정이 안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서 차별이 발생한다. 정교사들의 경우에는 공무원이니까 고도의 위험한 일을 하다가 사고를 당하면 공무원연금법상 '순직공무원'으로 인정을 받지만 공무원이 아닌 경우에는 고도의 위험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직무 외 행위라는 단서조항이 충족되어야 한다. 동일한 업무를 하다가 사고를 당했지만 차별을 받고 있는 것이다.

▶ 단원고 학생들 중에서도 동료 학생을 구조하다 사망한 정차웅 군이나 최초 신고를 한 주덕하 군 양온유 양 등 의인으로 불리는 학생들이 많았는데 이들 학생들도 의사자로 인정되지 못했나?

= 단원고 학생들의 경우에는 아직 1명도 의사자로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유족들이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사자 신청은 유족이 거주지 관할 시장, 군수, 구청장에게 의사상자 신청을 해야 한다. 기초자치단체에서 광역자치단체를 거쳐서 보건복지부에 신청이 이뤄지면 서류보완을 거쳐서 의사상자심의위원회에서 의사자 또는 의상자 인정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단원고 학생들의 유족들이 왜 의사자 신청을 하지 않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의 한 학부모는 "유족회에서 의사자 신청여부에 대해 공식적인 논의는 없었다"면서 "신청은 유족들이 개별적으로 하는 것인데 학부모 개인들이 아직 신청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기교육청이나 보건복지부에서도 단원고 학생들의 유족들이 의사자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는 잘 모른다고 말했다.

▶ '파란바지의 의인'으로 불리던 김동수 씨는 왜 의상자로 선정되지 못한거냐?

'세월호 의인' 김동수 씨 (사진=권민철 기자)
= 선정되지 못한 건 아니고 선정 절차가 진행중이라는 게 정확할 것이다.

신청서는 지난 1월 30일 접수가 됐는데 제주시에 확인해보니 지난 20일에서야 광주지방검찰청과 법원에서 법정 진술서 등 관련 서류가 보완됐다고 한다.

사고가 발생한 지 1년이 다됐는데 아직도 서류보완 작업이 진행중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김동수씨에 대한 의상자 여부 결정은 오는 5월이나 6월쯤 열릴 의사상자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문제는 왜 이렇게 의상자 신청이 늦어졌느냐 하는 점이다.

김동수씨와 부인 김형숙씨는 CBS와의 전화통화해서 "의상자 신청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알아서 해주는 줄 알았다"면서 "지난해 여름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복지부에 전화도 하고 신문고에 민원을 올리고 하면서 8월부터 서류를 갖추다보니 11월에야 서류를 준비해 신청을 했지만 자료보완이 필요하다고 해서 1월 30일에야 신청서를 내게됐다"고 설명했다.

부인 김형숙씨도 종양도 있고 김동수씨가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여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형편인데 서류신청 작업을 하는 과정이 정말 어려웠다고 한다. 진도경찰서에 공문을 보내니 해경으로 하라고 하고 해경에 연락을 해서 서류를 받으면 검찰청과 법원 증언서류를 달라고 하고, TV에 파란바지를 입고 구조하는 장면이 보도됐지만 처음에는 방송장면이 필요없다고 하다가 다시 보완해달라고 하면서 이른바 '뺑뺑이 돌리듯' 하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김동수 씨는 "이런 일은 누군가가 나서서 해줘야 하는데 도움을 안 줬다"면서 "저는 기대도 안한다. 안해줄려고 하다보니 온갖 변명을 다 대는 것 같다"면서 불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 다른 지자체에서는 의상자 신청을 도와주거나 하지 않았나?

= 지난 19일 의상자로 인정된 최재영씨의 경우 광명시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제주시에 거주하는 김동수씨의 경우 지원이 부족했다.

광명시의 경우 무한돌봄센터 공무원을 전담으로 배치해서 멘토로서 관리하면서 의상자 서류신청을 담당공무원이 나서서 적극 지원했다. 광명시 이명원 복지정책과장은 "담당공무원을 해양수산부와 보건복지부 등 현장에 보내서 의상자 입증을 위한 서류작업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광명시 공무원이 직접나서서 입증서류를 찾아서 의상자 신청을 지난해 9월에 했지만 6개월이 흐른 지난 3월 19일에야 의상자 인정이 됐다. 그만큼 복지부에서 요구하는 서류가 많고 복잡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제주시 공무원이 1명이 제주도나 보건복지부에서 서류를 보완하라고 하면 김동수 가족들에게 보완을 하라고 통보하는 아주 소극적인 지원만했다. 당연히 김동수 씨 입장에서는 해주기 싫어서 그런다는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광명시는 또 복지부에서 지원하는 최저생계비 월 108만원 외에도 긴급복지사업비와 광명희망나기 특별위원문금 등도 별도로 지원했으며 복지수급자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앞으로도 생계비를 추가지원할 계획이다.

광명시 관계자는 "의상자 서류를 개인이 입증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지자체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 다른 지자체처럼 제주도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할 수 없는 거냐?

= 제주시 담당공무원은 이런 일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이 공무원은 제주도나 보건복지부에서 서류를 보완하라고 하면 김동수씨 가족들에게 알리고 또 필요하다고 하는 서류가 있는 기관으로 공문을 보내고 하는 역할은 했다.

그렇지만 김동수 가족들에게는 광명시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주는 공무원들이 필요했다.

김동수씨의 부인 김형숙씨는 "(남편이) 스스로 의인이다. 영웅이다. 내가 몇명이나 구조했다고 얘기한 적이 없다'면서 "그런데 스스로 의인이라는 걸 입증하는 서류를 갖춰서 신청서를 내라고 하니 그게 너무 싫었다"고 말했다.

김형숙씨는 "남편이 '내가 차라리 구조활동을 하다가 죽어서 왔더라면 처자식은 행복하게 살건데'라고 자조할 때 가장 가슴이 아프다"고 덧붙였다.

▶ 김동수씨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 아닌가?

= 그렇다. 김동수씨는 여전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T)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지속적인 관리와 치료가 필요하다.

김 씨는 치료를 받기위해서 제주도에서 안산까지 매주 1회 방문을 해왔다. 제주도에 세월호 치료센터가 지난 2월 초 문을 열었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는 세월호 사고 당시 겪은 충격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제주도민 생존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의료법인 연강의료재단과 협약을 맺고 '세월호 피해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김동수씨가 두 차례나 방문했지만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문이 잠겨 있거나 상시적인 운영이 되지 않아서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전히 안산으로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다.

김씨는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려 왔는데 손 떨림 증상으로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동안 버스를 타고 병원을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세월호 생존자들이 고통에서 벗어난 줄 착각하고 있다"면서 "국민들은 (보상과 치료가) 다 된 줄 착각하거나 고통에서 빠져나온 줄 알지만 절대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46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을 했던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의 주치의였던 이보라 의사는 "유족들이나 생존자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같이 울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김현정 국립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주변에서 잊으라고 한다고 잊혀질 PTST가 아니다"라면서 "힘들구나 하는 그 상황을 인정하고 들어주고 공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현정 의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에 대해 공부하고 잘 알아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당뇨병환자가 있으면 당뇨가 어떤 병인지 알아야 식이요법이나 운동요법을 도울 수 있듯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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