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취임 때부터 낙하산 논란을 빚었던 정 전 회장은 형편없는 실적에다 재임 시절은 물론 퇴임한 뒤에도 검찰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정 전 회장의 행보가 낯설지 않다. 이명박 정권의 전폭적인 지지로 취임해 경영 악화와 배임 등의 혐의로 불명예 사임하고 검찰 수사를 받은 이석채 KT 전 회장이 걸어간 길과 매우 흡사하다.
◇ 공기업→ 민영화 기업의 '낙하산' 수장
포스코와 KT는 이미 오래 전 정부의 그늘에서 벗어난 순도 100% 민간 기업이다.
달리 말해 정부는 이들 기업에 대한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청와대 영향력 아래에서 이들 두 기업 수장은 자유롭지 못했다. 청와대 주인이 바뀔 때는 물론이고 내부 의지와는 상관없이 항상 거센 외풍에 휘둘려왔다.
이 같은 배경에서 이명박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회장에 오른 두 사람은 '낙하산' 논란에 불을 지피며 첫 발을 내디뎠다.
두 사람은 모두 석연찮은 기업 인수·합병으로 재임 시절 검찰 조사 대상이 됐다.
정 전 회장은 2009년 2월 취임해 지난해 3월 퇴직 전까지 대우인터내셔널과 성진지오텍 등 11건의 대규모 지분 투자와 인수·합병을 단행했다.
포스코 자회사는 2007년 20여 개에 불과했지만 정 전 회장이 대형 인수·합병에 나서면서 2012년에는 70개를 넘어섰다. 5년 만에 4배 가까이 몸집을 부풀렸다.
이 같은 대규모 인수·합병에 쓰인 금액은 무려 7조 4102억원. 매년 2조에 가까운 돈을 쓴 셈이다.
물론 투자와 인수·합병은 경기 부양을 위한 기업의 의무이자 수익 창구다.
문제는 정 전 회장 취임 뒤 우량기업이던 포스코가 과거를 뒤로 하고 소위 '투자 주저 등급'으로 추락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 전 회장은 부실기업을 사들여 포스코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 포스코는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이어진 철강 업황의 악화로 회사의 곳간이 비어가는데도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포스코의 재무구조는 급격히 악화됐다.
2009년 4조원에 못미쳤던 순차 입금이 2011년 20조원, 2012년 18조 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60%에 못미쳤던 부채비율도 90%를 넘어섰다.
이 같은 경영 악화는 검찰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이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 실세들로부터 로비를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전 회장도 재임 시절 '부동산 헐값 매각'과 '인수·합병'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그는 취임 이듬해부터 부동산을 팔면서 사업 확장에 나섰다. KT를 "종합미디어그룹으로 만들겠다"며 그 실탄을 부동산과 동케이블, 자산 매각 등으로 확보하려한 것.
이처럼 자산을 매각해 확보한 현금으로 인수·합병과 기업 분리에 뛰어들었다.
이 전 회장이 취임한 2009년 초부터 3년 동안 추진한 인수합병 및 기업분리는 모두 32건. 2013년 2분기 기준 45개사, 총 1조 7298억 원 규모다. 그러나 영업 이익은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이 전 회장이 2011년 인수했던 유스트림은 적자를 거듭하다 결국 3년 만에 청산되기도 했다.
◇ 최악의 실적에도 최고의 보수…연임 하고도 정권 바뀌자 '사퇴 압박'
두 회장은 재임 시절 경영 악화에도 거액의 보수를 챙겼다.
정 전 회장의 연봉은 20억 원에 육박했고 이 전 회장의 보수는 30억원 안팎에 달했다.
아울러 두 회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박근혜 정부로부터 끊임없는 사퇴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배임 등의 혐의로 세무조사를 받게 되자 임기를 절반 이상 남긴 채 불명예 퇴진했다. 이 전 회장의 사임 3일 만에 정 전 회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당시 정 전 회장도 1년 4개월이나 임기를 남겨둔 상태였다.
이 전 회장이 사임 뒤에도 검찰 수사를 받았듯 정 전 회장 역시 비자금 수사 대상에 올라 검찰의 칼끝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 전 회장이 이번 검찰 수사로 결국 "이 전 회장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