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잊었나?…열차 내구연한 폐지 '1년 후 오늘'

서울 성동구 소재 서울메트로 군자차량기지로 지하철 1호선 전동차가 육중한 신음을 내며 들어선다. 차체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져 검붉게 녹슨 속살을 드러낸 전동차는 정비대 위로 몸을 실었다.

1989년 도입된 이 열차는 올해로 도입 26년째. 특히 노후화가 심각한 서울메트로의 경우, 이 열차를 포함해 사용기간이 25년 이상된 차량은 410대에 이른다.

차량기지 현장에서 만난 정비사들은 입을 모아 "낡은 차량을 새 차량처럼 유지·정비하려면 몇 배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 결국 폐지된 내구연한, 세월호 참사로 부활되나 했더니…

이러한 차량 노후화의 배경에는 수차례 이어진 규제 완화 바람이 있다.

정상적 사용 가능 햇수를 뜻하는 내구연한은, 지하철의 경우 1996년 15년에서 25년으로 늘어났으며 2009년에는 최장 40년으로 대폭 확대됐다.

급기야 꼭 1년 전인 지난해 3월 19일에는 내구연한 관련 규정이 철도안전법에서 아예 삭제돼, 한번 발주한 열차를 언제까지나 사용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돼 정부는 각종 안전 대책들을 내놓았고, 내구연한 역시 부활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차량 수명을 일괄 규제하는 내구연한은 끝내 되살려지지 않았고, 다만 개별 차량의 평가를 통해 사용 가능 기간을 측정하는 '기대수명' 조항만 올해 초 법에 포함됐을 뿐이다.


◇ 책임 떠넘긴 정부, 정비 인력도 갈수록 줄어

기대수명 결정 권한은 서울메트로에서 도로교통공단으로, 도로교통공단에서 또다시 한국철도기술연구원으로 맡겨진다.

민주노총 서울지하철노동조합 남삼우 정책부장은 "국가가 법률로 철도 안전을 담보하지 않고 책임을 떠넘긴 셈"이라며 "예산 감축이라는 경제 논리가 안전보다 우선할 우려가 매우 크다"고 주장했다.

철도기술연구원의 판단에 따라서는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노후 열차들이 선로를 달릴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전동차 발주시 20~30년의 내구성을 확보하도록 했고, 기대수명을 5년 주기로 측정해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는 정원의 2~3배를 싣는 지하철의 특성상 부품의 마모가 빠르고 위험성은 커질 수밖에 없어서, 남상우 부장은 "이런데도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문턱인 내구연한 개념은 이제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정비인원은 2000년 2573명에서 지난해 3월엔 1973명으로 대폭 줄어들어, 세심한 정비로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정부의 설명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 경정비(2달→3달), 중간검사(2년→3년), 전반검사(4년→6년)는 2008년을 기점으로 그 주기가 늘었다.

전문가들은 안전한 사용연한을 정부가 책임지고 설정해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회공공연구원 이승우 연구위원은 "5년 단위 평가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평가 주체들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며 "최소한 시행령을 통해 철도 차량 내구연한을 설정하고, 현재 열악한 정비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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