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은 두 사람이 지속적인 내연관계에 있었고, 벤츠 승용차와 샤넬가방, 법인카드 등 고급 선물이나 금품을 준 것도 "사랑의 정표"라고 판단해 이 전 검사(40)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가 내연관계에 있던 최모 변호사(53)로부터 동료 검사에게 사건 수사를 재촉해달라는 청탁을 하기는 했지만, 금품에는 대가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뇌물 수사에서 대가성을 입증하는 것은 최대 난관이다. 연인사이는 특수한 사례로 치더라도 각종 이유로 대가성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뇌물이 아니라 지인에게 돈을 빌린 것이다", "평소 친분관계로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냥 주고받은 것이다" 등 각종 핑계가 나올 수 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김영란법이다. 공직자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 여부에 관계없이 일정 금액 이상의 금품을 받으면 처벌을 받게 한 것이 골자이다.
그렇다면 김영란법에 따르면 이씨는 처벌을 받을 수 있을까?
김영란법 제8조 금품 등의 수수 금지 조항에는 "공직자 등은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후원·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예외조항도 있다. 위로, 격려, 포상금이나 사교, 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금품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가액 범외 내에 있으면 받아도 된다. 사적거래로 인한 채무의 이행이나 직원상조회ㆍ동호인회ㆍ동창회ㆍ향우회ㆍ친목회ㆍ종교단체ㆍ사회단체 등이 제공하는 금품도 일부 예외이다.
논란의 소지가 많은 마지막 예외조항이 바로 '사회상규(社會常規)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 이다.
두 사람이 명백한 연인관계였다면 '사랑의 정표'로 건낸 고급 선물들은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이 될 소지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처벌하는 김영란법을 적용한다고 해도 이씨의 유무죄는 '사회상규'의 범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연인관계가 인정된다면 김영란법에서도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사회상규'는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수많은 판례가 쌓여야 그 범위가 좁혀질 수 있겠지만, 내연관계도 통상적인 사회상규에 포함될 수 있다는 법 해석이다.
이 사건이 김영란법의 모태가 된데다 법조계와 정치권에 만연해 있는 각종 '스폰서' 문화에 경종을 울렸음에도 불구하고 내연관계라는 특수성 때문에 법 적용이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따갑다. 아무리 내연관계에 있었더라도 검사와 변호사라는 직무상 관계 속에서 청탁이 있었다면 대가성을 일부라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를 연인으로만 규정한 대법원의 논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법원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는데 초점을 맞춘 것 같지만 연인이라는 큰 맥락 속에서도 변호사와 검사라는 직무상 관계도 공존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다층적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친한 형, 동생하는 사이일지라도 업무와 관련한 부적절한 청탁과 뇌물이 오갈 수 있다. 수많은 뇌물 사건은 호형호제하는 끈끈한 관계 속에서 싹을 틔웠다. 유독 연인 사이만 예외가 되는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특히 주고받은 금품들이 벤츠 승용차와 샤넬가방과 의류, 모피 등 수천만원에 달했던 점도 연인관계에서 주고받은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두고 법조계 주변에서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는 비아냥 섞인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벤츠 여검사는 결국 사법적으로는 무죄지만 국민의 법감정에는 유죄로 남을 사건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