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A씨에게 "이번에 매출이 늘었는데 광고 한번 하셔야죠"라고 말하는 롯데슈퍼 측 '제안'은 현실에선 '압박'이라고 한다. 단칼에 "생각 없다"고 자를 수 없는 이유는 혹시나 미운털이 박혀 판로에 영향이 생길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A씨는 "광고를 하겠냐는 제안에 알겠다고 답하면 롯데슈퍼 측이 도장만 찍을 수 있게 계약서까지 만들어서 가져다주기 때문에 서류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요즘 경제상황에서 대기업들조차 가장 먼저 줄이는 게 광고비인데, 특별히 효과도 없는 광고 때문에 연간 천만원 이상을 쓰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결국 A씨는 일종의 '거래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1년 짜리 광고판을 샀다. 생각지도 않은 지출에 광고판 제작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나마 광고판을 여러 개 사라는 제안에 사정을 얘기하며 좀 줄인 게 전부다. 계약상 롯데슈퍼가 특정 공간을 광고 사업에 활용하면서 납품업체와 계약을 하는 식이라, 계약서 상에는 '갑'이 납품업체, '을'이 롯데슈퍼다. 현실의 '갑을' 상황과 대조적이다.
롯데슈퍼 측은 "계약서 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소 연매출 100억원 이상의 납품업체에게 광고 제안을 하면 그 중에 응하는 업체와 계약을 맺기 때문에 "만약 효과가 없다고 판단한다면, 안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A 업체는 연매출 100억원이 안되는 중소업체다.
무엇보다 롯데슈퍼 측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 납품업체 간 힘의 관계가 '제안'을 '압박'으로 바꾸는 현실이다. 당장 '군 말 없이' 롯데슈퍼 측 제안에 응한 A씨의 경우 속으로는 끙끙 앓으면서 내년에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롯데슈퍼 측은 이에 대해 "납품업체와 직접 소통하는 실무진 중에는 편하게 '광고 좀 해달라'고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도 적어도 형식상 억압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만약 납품업체를 상대로 무리하게 광고를 끌어왔다면, 올해 광고미달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대형마트와 거래하는 협력업체에서 광고비 제안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가 간담회 등에서 나온다"면서 이같은 압박이 횡행하고 있는 현실을 전했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광고 제안이 대형 유통업체들이 제조 납품업체를 상대로 소위 '삥을 뜯는' 대표적인 방식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롯데슈퍼 뿐 아니라 롯데마트 등 다른 대형마트들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해당 광고가 매장의 매출에 도움을 줌으로써 제조업체 뿐 아니라 유통업체에도 이득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부담을 나눠야 되는 상황일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규모유통법은 판매촉진에 관한 행사나 활동에 대해 이익을 반분하도록 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슈퍼 측은 "광고를 제안하는 방식이 현장에서 판매업체에 대한 압박으로 느껴질 수도 있으므로 이번 기회에 관련 작업을 검토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