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주요 정책연구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인 국책연구소마저 청년 구직자의 절박한 상황을 사실상 비용절감용으로 쓴 정황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예상된다.
◇ "배움도, 노동의 대가도 없어요" 자괴감만…
지난달 세종시 국책연구단지 내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S연구소에서 한 달간 인턴생활을 한 대학생 A씨.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A씨는 자신의 성적과 역량, 지원동기 등을 가득 채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등을 학교 측에 제출했다.
사회과학대학 소속인 A씨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경제사회 문제를 연구하는 이곳의 일을 가까이에서 보고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합격통보를 받았을 때 누구보다 기뻤다.
하지만 A씨에게 배정된 부서와 업무는, A씨가 예상한 연구소 일과는 거리가 있었다.
"경영지원실, 그러니까 행정실로 배치가 됐어요."
그곳에서 A씨는 단순 서류작업과 복사, 문구류 주문 등 사무보조를 맡았다. 점심에 도시락 배달도 그의 몫이었다.
함께 파견된 인턴 B씨는 회계를 안다는 이유로 직원들이 하는 사업비 정산업무에 투입됐다. 기관평가 기간이라 일손이 달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 5일 40시간을 꼬박꼬박 채웠다.
한 달 뒤 A씨와 B씨를 비롯한 대학생 인턴들의 통장에 들어온 돈은 21만원. 교통비와 식비라고 했다.
대학에서는 이들에게 장학금 명목으로 50만원을 지급했다. 연구소와 대학에서 받은 돈을 합쳐도 시급은 약 4,400원꼴. 우리나라 최저시급 5,580원을 크게 밑돈다.
인턴들은 "그나마 우리는 나은 편"이라며 "세종시 국책연구단지 내 다른 연구소로 간 인턴 중에는 10만원을 받은 학생도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 대학생 인턴들은 "연구소에서 배운 게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경력에 도움이 될까 열심히 했지만 1달 짜리 인턴 경력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허드렛일을 해서 불만인 게 아니에요. 그냥... 그곳에서 우린 뭐였나 싶어요."
A씨가 이 연구소에서 얻은 건 '자괴감'이라고 했다.
◇ '근로자 아니기 때문에 돈 안줘도 된다'는 연구소
이에 대해 S연구소는 "인턴기간이 짧았던 데다 기관평가 기간이 겹쳐 교육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측면은 있다"면서도 "이들은 근로자가 아닌 교육생"임을 강조했다.
S연구소는 지난해 말 대전의 한 대학과 인적교류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고, 파견된 인턴들은 그 협약에 따라 오게 된 학생들이라고 했다. 이 연구소 인사팀장은 "말하자면 현장학습, 체험학습이다. 우리가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돈까지 줄 의무는 없는 것"이라며 "그래도 도의적 차원에서 교통비와 식비를 지급했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의 류하경 변호사는 "근로자로 봐야 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산학협력이든 현장실습이든 붙인 이름에 관계없이, 실제로 어떤 일을 했는지가 법적 판단 기준"이라며 "인턴기간 동안 연구소의 지휘명령과 감독을 받았다면 근로계약관계로 봐야 된다"고 말했다.
이어 "단순 서류작업, 복사, 도시락 배달 등은 교육이 필요 없는 단순 노무"라며 "또 직원들이 하는 정산업무까지 했다는 것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과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근로자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등이 적용되고 사용자는 학생들을 직접 쓴 연구소"라며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부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전고용노동청에서도 "근로자로 인정되면 노동부 진정 등을 통해 받지 못한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S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직원이 많이 빠져나갔다"며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역대학과 MOU를 서두른 감이 있다"고 털어놨다.
이곳에는 대학생 인턴 외에도 지난해 12월부터 근무 중인 청년인턴들도 있는데, 이 때문에 부족한 인력을 인턴으로 대체하려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S연구소는 "세종시 이전 과정에서 결원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당 인력은 별도로 뽑았다"며 "세종시 국책연구단지의 다른 연구소 중에는 그런 사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