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 게재 순서 |
| ① 라가치상 휩쓸었지만…그림책은 '찬밥신세' ② 엄마들은 왜 그림책을 편식할까 |
한국 그림책은 볼로냐 라가치상에서 2004년 첫 수상한 이후 2014년까지 대상 3종과 우수상 9종을 배출했다. 5개 전 부문(픽션, 논픽션, 뉴호라이즌, 오페라프리마, 북앤시즈)에서 6종의 우수상을 낸 올해의 성과는 특히 눈부시다. 이는 뛰어난 역량의 작가와 '돈이 안 되는' 예술적인 그림책을 꿋꿋이 만들어온 출판사의 노력이 합쳐진 결과다.
반면 국내 출판사의 뜨거운 출품 열기가 수상작 증가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이번 라가치상은 48개국, 1천 여편의 작품이 응모했다. 대상 2종과 우수상 5종을 낸 프랑스(122작품)가 가장 많이 출품했고, 한국(112작품)이 뒤를 이었다. 그림책 선진국 미국과 일본은 각각 99작품과 42작품을 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그림책 작가들은 각종 해외 도서전에서 주목받고, 많은 나라에 저작권을 수출하고 있지만 국내 시장 상황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꽃할머니'의 권윤덕 작가는 "작가들이 받는 인세가 1/3로 줄었다. 1년에 1만권 팔리던 책이 지금은 3천권 팔리는 식이다. 초판 찍고 더 이상 책을 찍지 못하는 '1쇄 작가'도 많다"고 했다.
그 이유는 ▲출판시장 불황 ▲어린이 인구 감소 ▲독서시간 부족 등을 꼽을 수 있다. 지난 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도서구입비는 1만8154원으로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단행본 도서의 평균 정가(1만8648원)보다 적은 것으로 한 달에 책 한 권도 사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속적인 출산율 감소로 그림책의 주독자층인 어린이 인구가 줄어든데다 어린이들은 '학원순례'에 지쳐 책을 읽을 여력이 없다. 그림책 속 캐릭터를 봉제인형으로 제작,판매하는 마을기업 '햇빛공방' 정수정 대표는 "집집마다 5살만 되어도 아이의 하루 일정이 빡빡한 것 같다. 유치원 갔다오면 바로 학원 가고, 집에 돌아와도 영어나 한글 학습을 하니까 그림책 읽을 시간조차 내기 힘들다"고 했다.
국내 시장 위축으로 해외에서 활로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지만 해외 시장 상황도 썩 좋지는 않다.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위원회(KBBY) 김서정 회장은 "해외에 수출되는 도서 중 70% 정도가 아동도서인데, 수출되는 아동도서의 80% 이상이 학습서, 만화, 전집"이라며 '케이북'(K-Book)의 실상을 전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볼로냐아동도서전 담당 이지연 씨는 "중국, 대만 등 중화권은 이미 저작권 판매가 포화상태다. 해외에 저작권을 판매해도 세계적으로 출판시장이 침체해서 초판 부수가 대부분 2천부 이하"라고 했다. 권윤덕 작가 역시 "'만희네 집'(일본, 프랑스), '일과 도구'(중국, 대만),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미국, 스페인, 프랑스) 등이 해외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맺었지만 들어오는 인세는 많지 않다"고 했다.
특별전은 지난 2월 대만 타이페이 도서전에서 미리 선보여 호응을 얻었고, 볼로냐 도서전(3월)이 끝나면 일본 도쿄 도서전(7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10월), 멕시코 과달라하라 도서전(11월)으로 이어진다.
한국 그림책을 세계 독자에게 알리려는 시도가 늘어난 건 고무적이다. 하지만 그림책을 둘러싼 국내외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는 단순히 책을 많이 파는 것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그림책을 아동도서의 하위장르가 아닌 하나의 독립장르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돼야 한다고 한 목소리다. '떼루떼루'로 올해 라가치상 뉴호라이즌 부문에서 수상한 박연철 작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시, 소설, 동화 등 각 장르 별로 작가에게 창작기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하지만 그림책은 장르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 소외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부 정대훈 차장에 따르면, 그림책은 글의 양이 많으면 동화에 포함되지만 글의 양이 적으면 동화에 포함되지 않는다. 문제는 '글의 양이 많다, 적다'를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 이런 논리라면 글 없는 그림책은 지원금을 신청할 자격조차 없다.
김서정 회장은 "그림책에 미래를 거는 신진 작가가 늘고 있다. 하지만 창작환경이 개선되지 않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누군가 총대를 메서 실질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장성 대표는 "그림책 같은 예술은 한 사회의 문화적 역량을 가늠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작가들이 자긍심을 갖고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사회가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