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사 피습 후…애먼 진보단체까지 '종북몰이' 속으로

주한 미국대사 습격 사건 이후 극단적 폭력 행위를 규탄하는 목소리 중 일부가 '종북 논란'을 키우는 데로 모아지면서, 또다른 극단적 행위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이튿날인 지난 6일, 미국대사관 인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보수 단체들의 집회가 이어졌다.

어버이연합, 고엽제전우회, 엄마부대 등 보수단체들은 "종북세력의 테러행위를 규탄한다"며 "종북세력을 척결해야 한다"고 구호를 외쳤다.

흉기를 휘두른 김기종 씨 행위에 대한 규탄을 넘어 '종북·반미 세력을 척결하자'는 주장이다.


김 씨가 사건 직후 한미군사훈련에 대해 "전쟁 훈련을 중단해야 한다"고 발언한 점과 과거 수차례 북한을 방문한 점 등을 들어 종북세력으로 낙인 찍은 뒤 또다시 '종북몰이'에 나선 모습이다.

하지만 주한 일본대사에게 돌을 던지고 연예인 팬클럽과 충돌하는가 하면, 박원순 서울시장의 행사를 훼방한 김 씨의 전력을 살펴보면 이른바 '종북 세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김 씨의 배후를 밝혀야 한다는 여론 몰이 속에 애꿎은 진보 단체들에 대한 비방까지 기승을 떨치고 있다.

실제 극우 인터넷 사이트로 꼽히는 '일간베스트 저장소' 등에는 김 씨의 배후라면서, 반전·평화·통일 운동을 벌이는 진보 단체들의 이름이 열거돼 전파되고 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조승현 평화군축팀장은 "이미 온라인을 통해 '김 씨가 평통사 회원이다', '평통사가 종북단체다' 등의 허위사실이 돌아다니고 있다"며 "관련 자료를 수집하면서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진보연대 최은아 자주통일위원장도 "여론몰이가 계속된다면 기존 평화·통일 단체들도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미 국무부 웬디 셔먼 차관의 과거사 망언 등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묻히게 됐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이런 가운데 경찰과 검찰은 김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에 나서 공안 사건으로 무게 추를 옮기고 있다.

정치권도 이번 사건과 특정 정치세력 사이의 연관성을 언급하며 배후설에 불을 지피고 있는 상태.

여당인 새누리당은 김 씨가 옛 통합진보당이 속해 있던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의 일원임을 강조하면서 개인 차원의 돌출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최진봉 교수는 "사건이 터지자마자 종북세력을 운운하며 배후가 있다고 하면 경찰, 검찰의 수사는 물론 여론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인터넷에 퍼지는 진보 단체에 대한 무차별적 비방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상임대표 김태훈 변호사도 "수사기관이 김 씨가 북한과 연관됐다는 증거가 없는 채로 국가보안법부터 들먹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과잉 대응이 자칫 또 다른 극단적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