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김영란법…의원님들 이러시면 안 되죠

3일 오후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이 본회의에서 재석 247인, 찬성 226인, 반대 4인, 기권 17인으로 가결됐다. (사진=윤창원 기자)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부정 청탁과 금품수수 방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이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226표, 반대 4표, 기권 17표로 압도적으로 통과됐다.

새누리당에서만 4명의 의원들이 반대했을 뿐 새정치연합에서는 단 한 명의 의원도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새누리당의 권성동, 안홍준, 김종훈, 김용남 의원이 김영란법을 반대한다고 밝혔고, 새누리당의 이인제, 김학용, 이미경, 이한성 의원 등 11명은 기권, 새정치연합에서는 추미애, 박주선, 변재일, 최민희 의원 등 6명이 기권했다.

권성동 의원은 "검경의 표적 수사와 자의적 법 집행을 우려해 반대한다"고 밝혔다.

최민희 의원과 박주선 의원은 이날 밤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막을 법의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언론 자유를 침해할 게 뻔한 법에 찬성할 수 없어 기권했다"고 기권 이유를 설명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대표 등 여야의 지도부는 찬성했다.

특히 안철수 의원은 찬성 토론에 나서 "한국을 부패공화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해줄 법"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을 반대하거나 기권한 의원들은 소신대로 행동했다고 말한다.

무조건 통과시키라는 여론의 압력이 대단하고 당 지도부가 찬성 쪽으로 당론을 끌고 간 압박 상황에서 반대한다는 것은 정치 생명을 거는 모험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영란법이 긍정 효과가 크지만, 한편으로는 부정적 측면이 많은 법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그 어떤 법보다 무서운 법

(자료사진)
김영란법은 그 어떤 부패방지법보다 무서운 법이다.

인간관계와 미풍양속으로 점철된 한국사회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초법적 성격의 부패와 청탁 방지법입니다.

대가성이 없어도 백만원만 받으면 징역 3년형과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법이고 공직자와 언론인, 국공립·사립학교 교직원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인들까지도 처벌하는 법이다. 얼추 국민 3백만명 이상이 적용 대상이다.

대략 3만원이 넘는 식사 한 끼도 수사 대상이 되고 콘도와 항공권 등 편의를 봐달라는 것 등 법 적용 대상자들의 이런저런 민원과 요구는 거의 다 청탁에 해당해 처벌된다.

고참 경찰이나 상사가 '그건 잘 좀 살펴봐'라고 말하면 처벌될 수 있다.

언론인이 피해자의 억울함을 듣고서 경찰이나 검찰에 그 사건 너무 일방적, 편파적으로 처리하는 것 아니냐고 말해도 사건 청탁이 된다.

실제로 언론사에 민원을 가지고 찾아오는 상당수가 사회적 약자들로서 '검찰과 경찰, 행정관청(특히 지자체)으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했다'며 호소하려 오는 사람들이다.

사실 청탁이 우리사회의 부패 고리와 연결돼있기 때문에 청탁을 막는 것도, 공직자들의 금품 수수 행위를 엄하게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고 효과도 클 것으로 관측된다.

김영란법으로 공직사회가 좀 더 깨끗해질 전기를 마련할 것이다.

그런데 인간관계와 가족관계(부인 신고 조항)를 소원하게 만들 수도 있는 법이어서 김영란법이 내년 9월 이후 시행되면 한국사회는 대변혁, 혁명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지 모른다.

◇ 검경 공화국 된다

(자료사진)
김영란법은 경찰과 검찰에 엄청난 권한을 주는 법이다.

한 법조인이 예견한 "던지면 누구나 돌을 맞는다"는 말처럼 경찰과 검찰이 어느 공직자, 언론인, 교사를 죽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5년 동안 추적할 수 있고 소환조사를 할 수 있다.

사회통념상 통하던 언행들에 대한 처벌 여부가 전적으로 경찰과 검찰의 손에 달렸다. 자의적 처벌 잣대를 들이댈 소지가 많은 법이 김영란법이다.

최민희 의원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와 기자들이 표적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면서 "지금처럼 검경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수사기관으로 전락하면 CBS와 한겨레·경향신문 등이 대상이 될 수 있어 이 법을 반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의 지나치게 넓은 형사처벌 대상과 벌칙의 과중성 등은 검찰로 하여금 김영란법의 남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다.

3일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김영란법의 견해에 대해 "우리야 대가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으니 일하기는 더 쉬워지겠지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공직사회와 언론계, 교육계, 재계는 현재보다 더 경찰과 검찰 권력에 저자세를 취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영란법에 언론인이 포함되면서 우리사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검찰 권력의 감시 기능을 자임했던 언론마저 검찰의 눈치를 살피게 될 처지에 놓였다.

검찰이 김영란법을 남용하지 않는다 해도 언론의 검찰에 대한 감시기능 위축은 피할 수 없게 될 전망이며, 언론사 스스로 검찰 비판 기사와 프로그램 제작을 자제하는 ‘자기검열’ 현상마저 생겨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언론의 권력, 특히 재벌 권력의 감시 기능이 현저히 약해지고 있는 추세다.

때론 정권의 입맛에 따라 '편파수사'와 '먼지털이식' 수사를 하는 검찰에 '전가의 보도'를 맡긴 꼴이 됐다는 말이 검사 출신 국회의원들 입에서 나온다.

대한변협은 이날 성명을 통해 "언론 길들이기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 서비스업 직격탄, 접대문화 확 달라질 듯

한국사회의 부패 지수를 줄이고 투명한 공직사회로 한 단계 발돋움할 수 있다는 훌륭한 입법 취지에도 법 적용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고 위헌 소지가 수두룩해 과잉입법 논란과 후폭풍,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음식점과 골프장, 유통업체 등 관련 업계는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5만원 이상의 중고급 음식점과 술집, 골프장 등에는 공직자와 언론인, 교직원 등 국민의 3백만명가량은 출입할 수 없게 된다. 접대문화가 활 바뀔 것이다.

선물 주고받기도 금지돼 백화점과 선물업체를 비롯한 유통업계도 된서리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콘도와 여행 숙박업소, 항공업계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김영란법은 경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견된다.

그 파급효과는 연쇄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이 법이 시행되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2% 떨어뜨릴 것이라는 확실하지 않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정갑윤 국회부의장도 우려한 부분이다.

◇ 한 의원, "국회의원들은 비겁하다"

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상민 위원장이 생각에 잠겨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국회의원들은 김영란법이 졸속, 과잉 입법임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무조건 2월 국회에서 통과시켜놓고 보자는 속셈으로 원내대표단회의를 통해 일사천리로 처리했다.

양당 원내 지도부는 원내대표단의 김영란법의 합의안(정무위 안에서 공직자 형제, 자녀들의 적용 대상을 축소)대로 법사위를 통과시켜 줄 것을 압박하자 이상민 법사위원장도 손을 들었다.


투표에 불참한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한 졸속입법, 포퓰리즘 법이라"고 비판했다.

여야 지도부와 226명의 의원들이 총선의 표를 의식하고 처리 시한에 쫓겨 법안 처리를 밀어붙인 것이다.

그런데 법시행 시기는 내년 총선 이후인 9월로 늦췄고, 지역구 민원은 청탁 처벌 규정에서 빼버렸다.

19대 국회의원들은 내년 총선 때까지는 김영란법의 저촉을 받지 않고 정치 활동은 물론 선거운동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국회의원들의 이해와 관련한 부분에 있어선 형평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김영란법의 위헌 소지를 알고서도 일단 통과시켜놓고 보자는 건 무책임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통과 되자마자 법의 개정론이 나오고 유예기간을 1년 6개월이나 남겨둠으로써 자칫 누더기법이 될지 모른다는 푸념도 있다.

한 의원은 "국회의원들은 4일 아침 방송과 신문을 보면서 속으로 웃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인들을 법 적용의 대상에 넣음으로써 고소해 할 것이라는 말이다.

한 야당 의원은 3일 밤 "국회의원들이 제아무리 표를 먹고 산다고 하지만 무책임하고 너무 비겁하다"고 말했다.

◇ 어린이집들의 표가 두려운 아동학대법은 부결했다

(자료사진)
여야 정치권이 2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기로 합의한 아동학대 방지법은 부결시켰다.

여야가 아동 학대를 방지할 목적의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3일 본회의에서 부결했다.

정부의 안심 보육 대책도 물건너갔다.

이유는 국회의원들이 관내 어린이집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선거 때 도와주겠다는 어린이집 원장들과 선생님들의 요구를 묵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린이들은 표가 없고 원장과 보육교사들은 표가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CCTV 설치가 인권 문제를 야기한다는 반론이 있었지만 2월 국회에서 처리한다고 철석같이 공약하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을 본회의에서 부결해버린 것이다.

국회는 또한 담뱃갑 경고그림을 의무화 하는 건강증진법 개정안도 처리하지 않았다.

이 법은 지난 2002년 발의됐으나 담배회사와 잎담배 농가, 담배소매상들의 반대로 국회 문턱에서 번번이 좌절했다.

표 앞에선 어린이들의 인권도, 흡연에 따른 국민 건강권도 한갓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19대 국회의원들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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