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자리 특종' 옛말…'워치독 기능' 위축 불가피

김영란법 국회 통과…권력자들 '언론회피 명분' 악용 가능성

3일 오후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이 본회의에서 재석 247인, 찬성 226인, 반대 4인, 기권 17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1995년 8월 서석재 총무처 장관은 기자들과 식사 도중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설이 회자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는 나중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4000억원 비자금' 기사로 이어졌다. 국민적 공분이 들끓으면서 12·12와 5·18의 장본인인 노 전 대통령과 그의 동지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해 말 구속됐다.

2015년 1월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도 기자들과 식사하다 "(일선 기자들은 내 말 한마디에) 지가 죽는 것도 모른다. 어떻게 죽는지도 모른다"고 발언했고, 육성까지 전파를 타면서 '자질 논란'을 초래했다. 결국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지만,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야당의 집중포화에 시달렸다.

온나라를 들었다 놓았던 이들 기사의 공통점은 '취재 대상자'와 기자의 식사자리에서 생산된 특종이라는 데 있다. 기자들의 '밥자리'는 권력자 또는 공직자들의 이면을 '초근접 감시'할 수 있는 기회다. 그러나 3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유사 사례 재발 가능성은 줄 전망이다.

1년 6개월 뒤인 2016년 가을부터는 기자와 공직자가 함께 식사를 하기가 쉽지 않게 된다. 1인당 3만원 이상의 밥값이 나오는 경우, 비용을 누가 대든 김영란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 기자 역시 공무원으로 의제되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밥값 자체가 아니라, 공무원이 '밥값 핑계'로 언론의 접촉을 회피할 것이라는 게 문제다.

국회 관계자는 "기자가 사람 만나는 게 일이고,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일정액 이상의 금전을 들여서는 안 된다'는 심리적 제약을 받게 되면 활동반경이 좁아질 수 있다"며 "공무원들로서는 '공무상 비밀누설죄' '피의사실 공표죄' 등에 이어 '김영란법 저촉'이란 '언론회피의 명분'을 추가로 얻게 됐다"고 지적했다.


물론 김영란법 제8조는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 등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가액 범위 내 금품'은 처벌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한다. 경우에 따라 기자와 공무원의 식사가 허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원활한 직무수행 등의 목적'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가 향후 판례가 정립되기 전까지는 논란 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아울러 처벌 여부를 가름할 '가액'도 국회 입법이 아닌 대통령령에 규정토록 해, 정부의 입맛에 따라 '이현령 비현령'이 될 소지가 있다.

서울에 재직 중인 한 현직 판사는 "대통령령으로 위임 입법할지에 대한 결정권은 국회의 고유권한인 만큼, 해당 법조항을 비판하는 것은 무리"라면서도 "언론의 권력감시 기능이 전통적으로 인정돼 왔는데, 이를 제약할 수 있는 민감한 법조항을 위임 입법으로 처리하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입법 옹호론자들의 반박은 '언론 자유를 제한하는 게 아니라 부패 언론인을 처벌하려는 것이다' '왜 식사를 같이 해야만 권력층 취재가 가능한가'라는 것이다. 타당한 지적이다. 김영란법으로 취재관행이 달라지면서 취재가 '어려워진다'는 건 맞지만, 취재가 '불가능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국 언론의 초근접 관찰이 불편해지는 만큼, 권력감시 기능이 취약해질 가능성은 커진 셈이다. 언론 기능의 불편이 과연 '누구'의 이익으로 귀결될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견 시민운동가는 "김영란법의 입법 자체는 온당하다"면서도 "다만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에게 전가될 불편이, 권력자의 편익 증대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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