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경제이주민' 된 탈북자, '남조선 판타지' 깼다"
② 이미지 파는 탈북 장터… "막말해도 됩네까?"
탈북 여성 김북녀(41·가명)씨는 얼마 전 한 방송국 관계자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았지만 이내 거절했다.
일부 방송에 나온 탈북 여성들이 때로는 근거도 없이 북한 사회를 무작정 비방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김씨는 “부모형제가 있는 그 땅에서 태를 묻고 자랐는데(한곳에서 컸다는 북한말) 아무 말이나 막하는 걸 보면서 쟤들 뭐하는 짓인가 했다”며 “연예인이나 스타가 된 줄 알거나 정치하러 온 사람처럼 방송에서 말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서울의 한 탈북 여대생도 ‘실향민의 며느리로 시집을 잘 갈 수 있다’거나 ‘성형수술 비용 정도는 출연료로 마련할 수 있다’는 솔깃한 말에 출연을 고민하다 끝내 마음을 접었다.
◇ “막말하는 쟤들 뭐하는 건가”…북한 비판 선전도구로
‘탈북 간판’은 남한 사회 미디어 시장의 상품이 됐다.
탈북자가 뉴스나 다큐멘터리 속 주인공이 아닌 생활정보 프로그램의 리포터나 예능 토크 방송의 패널, 가상 결혼 생활 속 파트너로까지 TV속에 등장하면서 북한의 경험과 탈북 과정의 이야기가 매매되고 있다.
북한 사회와 탈북자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없지 않지만, 단순히 젊고 예쁜 탈북 여성의 이미지만 소비되거나 북한을 비방하는 선전도구로 이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가 지난해 8월 낸 모니터보고서는 일부 종합편성채널의 탈북 여성 프로그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탈북미녀라는 이미지가 부각되거나 평등한 부부관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탈북은 곧 반북이고 친남한이라는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정도면 남한체제 선전 방송”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에서의 경험을 과장하는 차원을 넘어 정권 코드에 맞춰 왜곡되거나 거짓된 발언을 ‘자판기’처럼 내놓는 일부 탈북자들도 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등 북한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확인 불가능한 주장을 쏟아내거나 자신을 특수부대원으로 소개하며 ‘5.18 북한 개입’ 등의 거짓말까지 일삼은 것이 대표적 사례.
◇ 탈북자는 왜 거짓 방송의 공범이 됐나
탈북자 출신인 강철호 목사(새터교회)는 “방송에 나와 자극적인 이야기를 해야 그게 먹힌다는 걸 알게 된 탈북자들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북한에 있을 때 소위 잘 나가던 사람들이 남한에서도 환영받는 걸 보면 ‘나도 김일성대학 나왔다’고 말하거나 ‘정치범 수용소 가봤다’는 검증하기 어려운 말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지난해 11월 ‘미디어에 나타난 탈북자 연구’ 보고서를 통해 “탈북자들이 전하는 북한 권력층의 동향과 정치 정보와 군사 정보의 경우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북한 권력층 내부 사생활 등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모습들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북한에서의 경험을 넘어 왜곡 과장된 이야기들이 미디어에서 팔려나가는 실상의 배경엔, 북한에 대한 호기심을 수단으로 삼는 미디어의 수요와 남한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탈북자들의 공급이 있다.
탈북자들은 출연료로 통상 회당 수십만 원을 받아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리고 있고, 방송사 입장에서는 다른 프로그램보다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시청률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김명준 교수는 “종편과 탈북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면서 “북한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관심을 끄는 상황에서 전문가가 아닌 탈북자들을 상대로 핵문제까지 물어보는 건 제대로 검증하지 않는 언론의 문제”라고 말했다.
일부 탈북자들이 자리잡은 새터가 거짓 정보마저 사고파는 장터로 변질된 가운데, 이는 남북 사이의 가교가 아니라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