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로몬] '빅뉴스'는 왜 금요일 오후에 발표될까?

靑, 오늘 오후 김기춘 실장 후임 인선…'금요일 사랑'은 검찰이 원조

쓸로몬은 쓸모있는 것만을 '즐겨찾기' 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신조어' 입니다. 풍부한 맥락과 깊이있는 뉴스를 공유할게요. '쓸모 없는 뉴스'는 가라! [편집자 주]

청와대 전경 (자료사진)
청와대가 금요일인 27일 오후 김기춘 비서실장의 후임을 발표합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수사결과를 금요일에 발표하는 건 사실 검찰의 '전가의 보도'입니다. 그런데 이번 정권에서는 주요 인선도 주말이나 휴일을 앞두고 발표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오늘 오전 브리핑을 통해 비서실장 인선과 관련해 "아마 오늘 오후에 발표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7일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의가 공식수용된 뒤 꼬발 열흘 만에, 그것도 당일 공지를 통해 발표되는 인사입니다.

청와대가 이처럼 주요 인선을 금요일에 단행하는 일이 현 정권 들어 잦아지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역시 금요일이었던 지난달 23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명되고 청와대의 부분적인 인적 개편이 있었죠.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재만 총무비서관 등 소위 '문고리 3인방'은 인사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야당이나 언론, 그리고 정치에 관심이 높은 일부 사람들은 쇄신의 효과가 떨어진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비난 여론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 금요일 오후 발표는 여론 관심과 언론 검증 피하기 위한 '꼼수'

바로 뉴스의 주목도가 떨어지는 금요일에 발표됐기 때문입니다. 반나절만 소나기를 맞고 나면 주말 동안에는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사실 주말에는 독자 여러분도 신문이나 방송 뉴스를 잘 안 보실 겁니다. 요새는 주말판 때문에 신문지면 자체도 줄었고, 방송사들의 뉴스 시간도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언론들의 검증을 피해가긴 위한 조치라는 해석도 내놓습니다. 국회 인사청문회라는 제도가 있지만 인사 대상자의 1차적인 검증은 대부분 언론이 담당합니다.

그런데 금요일 오후에 의외의 인물이 임명된다면 많은 언론들이 시간과 자료 부족 등의 한계로 바로 검증에 들어가기 힘들어집니다. 더구나 토요일에는 거의 대부분의 기자들이 쉬죠. 주6일 근무가 지켜지고 있는 정치부 기자들에게 토요일은 유일한 휴일입니다. 이렇게 어영부영 이틀이 흘러가는 겁니다.

◇ 설연휴 앞둔 17일에는 김기춘 실장 사의표명 여부 두고 '우왕좌왕'

닷새 간의 설 명절을 앞둔 지난 17일 화요일에도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내정 등 4개 부처 개각이 있었습니다. 애초 김 비서실장은 또 인사 대상에서 제외됐죠. 그랬더니 야당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순식간에 비난 여론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청와대는 뒤늦게 김 비서실장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습니다. 연휴를 앞두고 김 비서실장을 제외한 인선을 단행하려다 예상과 달리 짧은 시간에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자 입장을 바꾼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청와대의 '오락가락' 행보 탓에 야당의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정정하며 "개각과 함께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의 표명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점은 청와대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의 금요일 발표는 검찰이 쓰는 수법

사실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민감한 사안 발표를 금요일 오후에 하는 것은 검찰이 자주 쓰는 수법입니다. 한번 기억을 되돌려 볼까요.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가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고등검찰청 기자실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의혹 관련 고발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송은석기자
금요일이었던 지난 2013년 11월 15일 서울중앙지검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의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정문헌 의원을 제외한 여당 의원들은 줄줄이 면죄부를 받았고, 오히려 참여정부 인사들 위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불공정 수사' 비판을 피해 가기 위한 의도로 보였지만 이후 1심 법원은 참여정부 인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찰이 수사결과를 금요일에 발표했던 이유가 입증된 셈이죠.

두 달 전인 9월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민감한 사안이 계속 불거졌습니다. 국정원의 댓글 공작에 공직선거법을 적용하는 문제를 두고 법무부와 갈등을 빚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의 진상 규명 지시가 있었죠. 다음주에는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됐고 뒤이어 수사를 지휘하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수사팀에서 배제되기도 했습니다.

연이은 조치들의 원흉이었던 국정원의 대선ㆍ정치개입 사건의 수사 결과도 물론 금요일인 6월 14일에 발표됐습니다. 당시 검찰 출입기자들은 '금요일에 수사결과를 발표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는데요, 검찰은 "수사상황 상 금요일에 발표를 하게 된 사정을 이해해 달라"고만 답했습니다.

◇ 검찰의 '금요일 사랑'은 이명박 정권에서부터

검찰의 '금요일 사랑'은 이명박 정권에서도 잦았습니다. 서울중앙지검은 2012년 6월 이명박 전 대통령 일가의 서울 내곡동 사저 헐값 매입 사건의 수사결과를 사전 예고도 없이 금요일 오후에 갑자기 발표했습니다. 이에 기자단은 수사결과가 월요일 아침신문에 실리도록 자체적으로 보도시점을 늦추기도 했습니다.

앞선 2011년 4월에도 서울중앙지검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 관련 의혹의 수사결과를 역시 주말을 앞둔 금요일에 발표했습니다. 당시 검찰은 한 전 청장을 개인비리로만 기소했는데요. 이명박 정권 실세를 상대로 한 연임 로비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이어진 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 등 핵심 의혹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 청와대는 자신이 없는 걸까, 소통하지 않겠다는 걸까

다시 청와대 인사 발표로 돌아가 보죠. 청와대의 인선과 개각은 주말이나 휴일을 앞두고 기습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검찰의 '금요일 사랑'도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고, 법원에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하물며 인적 쇄신과 국정운영 의지를 담은 인선 발표의 중요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청와대는 자신이 없는 걸까요, 아니면 국민들과 소통하지 않겠다는 뜻일까요.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축하 박수를 받으며 임명되는 비서실장과 장관을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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