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우려를 쏟아낸다.
정부가 금융기관 입장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바라보고 있으며 가계부채 뇌관인 저소득층 가계부채 문제 대책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가계부채 감축대책으로 내놓은 '안심전환대출'에 대해서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마저 "부채를 늘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소득 상위계층을 위한 정책"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2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9월말 현재 가계부채 총량은 1060조3천억원, 이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이 55.3%, 기타대출이 44.7%를 차지했다.
지난해 가계대출은 전년 대비 64조원 늘었는데 지난해 8월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를 단행한 이후 12월까지 무려 39조6천억원 늘었다.
특히 한은이 기준금리를 완화한 뒤인 지난해 4분기에만 가계대출이 30조원 늘어 분기 사상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및 대응 방향'을 발표하며 "가계대출이 다소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전반적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금융위는 소득 4~5분위의 고소득 차주가 가계부채의 70%를 차지해 상환능력이 양호하고, 연체율과 LTV가 낮은 수준(평균 52.4%)이라는 점을 이런 평가의 근거로 제시했다. 금융기관의 자본건전성(BIS 비율 13.89%)이 높아 손실 흡수 능력이 충분하다는 점도 꼽았다.
◇ 금융 위기 가능성은 낮지만 개별 가계 위험성 커져
정부의 이런 평가에 대해 전문가들의 판단은 엇갈린다.
정부 분석대로 현재 가계부채가 금융위기나 실물경제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가계부채 전체 규모와 증가율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현대경제연구소 김광석 선임연구원은 "중산층인 3분위까지 포함하면 전체 부채 중 상당 부분을 상환능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 계층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가계부채가 금융부실이나 실물경제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가계부채 위험이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는 정부의 말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며 "채권자인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부실채권비율이나 연체율 등이 개선됐기 때문에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기관 부실화를 초래하고 그런 부실화가 확산돼 금융시장 안에서 시스템 리스크로 발전할 가능성은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반면 홍익대 전성인 교수는 "개별 은행 입장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이 신용대출보다는 안전한 대출일지 모르지만 경제 전체적으로는 악성대출"이라며 "주택담보대출 증가를 차주의 상환능력으로 평가하는 것은 금융시스템 감독자가 아닌 은행의 위험관리사 수준의 평가"라고 꼬집었다.
전 교수는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나는 것은 부동산시장과 금융시장의 연계성이 커지는 것"이라며 "이는 부동산시장의 위험이 금융시장의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과 금융시장의 위험이 부동산시장 위험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늘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전체 경제시스템 리스크는 오히려 커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계부채 증가가 가계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가계 소득 중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3년을 기준으로 160.7%로 미국(115.1%)보다 현저하게 높고 OECD평균(135.7%) 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가계의 부채 부담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의미인데 지난해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와 기준 금리 인하로 가계부채가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가계의 부채 부담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대 경영대학 박창균 교수는 "가계부채가 문제가 없고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것은 정치적 수사"라며 "가계부채의 총량이 위험수준이고, 총량 완화와 구조개선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금융당국도 공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다만 "금융당국도 지난해 초까지는 가계부채 총량 관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2기 경제팀이 출범한 뒤 경제 활성화 정책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방향을 수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정부는 부채의 70%를 소득 4-5분위가 보유하고 있어서 큰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뒤집어 보면 소득 1-3분위, 소득도 적고 상환능력도 취약한 계층이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30%를 보유하고 있는 것인데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김광석 선임연구원도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생계형 대출이 늘고, 저소득층의 채무상환 부담 문제가 가중되고 있다"며 "채무상환 능력이 떨어진 사람들의 연체율이 높아지거나, 이들이 가계부채에 시달리다가 갚기 위해 또 대출하는 악순환일 수 있는데 가처분 소득을 늘리는 방안 등 채무상환 능력을 보완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금융위는 "소득이 늘어나는 것은 여러 경로가 있겠지만 실현되는 데는 시차가 있고, 금융위 차원으로 개선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라며 "여러가지 가계 소득을 늘리는 대책들이 나오고 있다"며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 "안심전환대출, 고소득층에만 혜택" 지적
정부가 내놓은 '안심전환대출'을 놓고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이어졌다. 거치기간 없는 원리금 분할상환을 전제로 하다 보니 대출 상환 여력이 있는 고소득층이 수혜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다.
금융위는 다음달 24일부터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5억원 이하를 1년 이상 빌린 대출자의 경우 기존 대출 잔액 범위 내에서 2%대의 10~30년 만기 고정금리‧분할상환 전환상품 대출을 20조원 한도 안으로 공급하기로 했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금리부담은 다소 완화된다고 해도 가계입장에서는 원금 상환 부담이 늘기 때문에 적지 않은 부담"이라며 "특히 소득 하위 계층은 부담이고 소득 상위 계층은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있어 소득 상위 계층이 이 제도를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어 "(정부가) 이 제도를 활용하기를 원하는 계층은 (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소득이 높지 않은 계층일 텐데 원금 상환 부담을 감내할 수 있는 계층은 고소득 계층"이라며 "정책목표와 정책결과가 달라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전성인 교수는 "안심전환대출은 정부정책을 불신하는 국민들에 대한 추가 혜택"이라며 "과거 정부 말을 믿고 고정금리로 전환한 대출자들은 3-4%의 높은 이자를 감내하고 있지만 정부 말을 믿지 않은 대출자들은 시세보다 싼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