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권력 구도를 바꾼 패망한 일본과 '친일파'

보통 사람들인 ‘철수’와 ‘영희’를 위해 이야기꽃을 피우는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이다.

이 책은 독립운동사와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인 김삼웅과 출판평론가 장동석의 대담을 통해 해방 후부터 1970년대까지 왜곡되고 거꾸로 흘러,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한국 현대사의 주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 사회 등 다양한 지형의 핵심으로 들어가 보면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가 ‘청산되지 않은 과거’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해방 후 70년 동안 펼쳐진 우리 현대사는 정의롭고 진실한 역사적 정통성을 가진 세력보다는 반민족·반민주적인 사악한 세력에 의해서 유지되어왔다는 것이다.

김삼웅은 독립운동 세력과 민주화운동 세력, 통일운동 세력 등 국가 정통 세력이 항상 소수자나 아웃사이더가 되었으며, 반민족적인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좌파·용공·종북으로 몰리게 된 왜곡된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김삼웅은 이런 현실에서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우리 근현대사에서 부끄럽고 욕된 부분들, 또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든 덮어버리고 싶어 하는 부분들을 좀 더 세밀하게 오늘의 시점에서 재조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지금 시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의 올바른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이라고 지적한다.

다시는 국치도 독재도 용납하지 않는 국민의 결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해방 이후 패망한 일본이 한국 현대사에 어떻게 개입했는지, 친일파들이 어떻게 계속 권력을 잡을 수 있었는지,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민낯을 보여 준다.

김삼웅은 남북 분단이 패전한 일본의 교묘한 전략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지만 바로 항복하지 않았다.

소련이 참전해서 북한에 진주하면 한반도가 분할될 것으로 예상해 항복 시점을 골랐다는 것이다.

또 미군이 한반도에 들어오기 열흘 전 미군 선발대 37명이 먼저 들어왔는데 조선총독부가 이들을 극진히 접대하며, 여운형 선생을 비롯해서 자신들에게 해를 입힐 만한 민족주의자들에 대해 온갖 험담을 늘어놓고, 친일했던 장덕수, 김성수 등에 대해서는 좋은 정보만을 넘겨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본의 악의적인 정보에 의해 영향 받은 미군 선발대에 의해 한반도의 권력 구도가 친일파에 유리하게 움직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편 <동아일보>의 오보로 인한 신탁통치 논란 때문에 해방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인 통일정부 수립과 친일파 청산 문제 등이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또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정신사적으로 가장 큰 사건으로 ‘반민특위 습격’ 사건을 들며, 이 일로 민족 세력이 패배하고 친일파가 득세하며 한국 현대사가 거꾸로 흐르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 뒤 친일파들이 국권을 농락하고, 결과적으로는 일본 군인 출신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비극의 씨앗을 낳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국회 프락치 사건’, ‘ 6‧25 전쟁 당시 한강철교 폭파’, ‘조봉암의 사형집행’, ‘<민족일보> 조용수 사형 집행’, ‘장준하 죽음’ 등은 반드시 진실이 규명되어야 할 사건이라고 강조한다.

2. 본문에서

- 해방 후에 몇 가지 유행어가 있었는데요. 미 군정 사령관 하지에게는 ‘조선 독립 하지 하지 하고 하지 않는 하지’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군정장관 아놀드 소장은 ‘아놀다하지’라고 불렀어요. 아놀드 소장이 물러나고 2대 군정장관으로 임명된 러치 소장은 ‘그렇지, 그렇지, 그러니까 러치’라고 조롱했습니다. 자신의 의견은 하나도 없고 본국 명령에만 순종하는 것을 비꼰 것이죠.

- 4·19혁명 때 다 무너진 이승만 동상이 다시 세워지고 있습니다. 최근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가 이승만과 박정희 동상을 전국의 초·중·고등학교에 세우자고 떠들더군요.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퇴행은 당시 목숨을 바친 희생자는 물론 우리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프랑스에서 루이 16세의 동상을 세우자 하고, 독일에서 히틀러의 동상을 세우자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 친일파들이 이승만에게만 돈을 가져갔겠습니까? 김구 선생에게도 가져갔어요. 반민특위의 체포 대상 제1호였던 박흥식이 돈 보따리를 들고 경교장을 찾아왔는데 문전박대했어요. 당시 비서가 장준하 선생입니다. 그 기록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장준하 선생의 동향 친구가 당시 이승만의 비서였습니다. 서로 상황을 잘 알고 있었지요. 이승만은 돈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어서 오시라’면서 반겼어요. 하지만 백범 선생은 민족을 배반하고 동족의 피를 빨아 챙긴 돈은 받을 수 없다며 물리쳤죠.

- 국회 프락치 사건을 담당했던 핵심 멤버가 대개 반민특위가 친일파로 지목한 사람들입니다. 전봉덕 헌병사령관, 김정채 헌병사령부 수사정보과장, 오제도 서울지검 검사, 김태선 서울시경 국장, 최운하 서울시경 사찰과장 등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국회 프락치 사건을 수사한 겁니다. 전봉덕과 김태선은 김구 선생 암살 사건에도 연계되어 있습니다. 최운하는 임시정부와 의열단에서 처단해야 할 악질로 지목했던 인물인데, 자기 입으로 독립운동가를 몇십 명 죽였다고 자랑까지 한 사람입니다.

- 1951년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때 미국의 실무자들이 독도, 제주도, 울릉도 등을 다 한국 영토로 표기했는데 막상 협상 당시에는 미국 측에서 독도를 빼버렸습니다. 일본 밀사들이 농간을 부린 거죠. 그리고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전승국이고 연합국이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강화회의에 당연히 참가해야 하는데 그것도 일본이 수를 써서 못하게 막아버렸습니다. 전승국이면서 전승국 대접을 못 받은 거죠. 이런 부분에서 이승만의 실책은 말로 표현하기 힘듭니다. 당연히 우리가 샌프란시스코강화회의에 가서 일본에 배상 청구를 해야 했는데 못했어요. 이런 부분들은 우리 국민들이 좀 더 많이 알아야 해요. 저는 지금이라도 미국에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 당시 우리를 왜 일본에 넘겼느냐, 그토록 끈질긴 요청에도 왜 임시정부를 승인하지 않았느냐, 모스크바 3상회의 때 소련보다 더 신탁통치하려고 덤빈 이유는 뭐냐, 샌프란시스코강화회의에서 우리를 제외한 이유는 뭐냐 등등 이런 부분에 대해서 당당히 묻고 따져야 한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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