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감동없는 개각, 대통령도 변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7회 국무회의에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와 입장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청와대가 설 연휴 전날 발표한 2.17 개각은 국민들에게 선물보따리는 커녕 커다란 실망만 안겨주었다. 통일부장관에 홍용표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명하고 국토부와 해양부 장관에는 친박 현역의원 2명을, 그리고 금융위원장에는 임종룡 NH농협지주 회장을 지명했을 뿐이다.


이번 인사는 국민들의 눈높이에 한참 못미칠뿐더러 핵심도 짚지 못했다. 잇따라 터진 인사참사와 세월호 사태 대응, 정윤회씨 문건 유출파동, 정책혼선을 겪으며 국민들은 현 정부의 국정운영 시스템이 확 바뀌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변화의 첫 단추로 기대를 건 것이 바로 김기춘 비서실장 등에 대한 인적쇄신이었다.

집권 만 2년 밖에 지나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미만으로 추락한 것은 국정운영의 동력을 상실케 할 수 있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다. 민심이 이만하면 야당은 물론 여당 조차도 어느 순간에는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독주와 밀실행정, 소통부족과 같은 이제까지의 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국정운영의 동력을 회복할 수 없고, 현 정부가 핵심 과제로 삼고 있는 공무원연금, 노동개혁, 금융개혁 등의 과제도 온전히 수행하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유감스럽게도 김기춘 비서실장의 후임 인선을 설연휴 이후로 미루었다. 후임자를 발표하는 대신 김 실장의 사의를 수용한다는 박 대통령의 메시지를 공개하는 것으로 민심을 다독이려했지만 오히려 ‘비서실장 하나 못구하나’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할 판이다.

인적쇄신을 기대했지만 쇄신은 없었고 결단도 늦어지니 국민들에게 감동이 있을 리 없다. 정치가 바뀌고 경제가 나아지길 기대했던 서민들이 과연 설 밥상머리에서 얼마나 위안을 받을 지 자못 궁금하다.

이완구 총리, 최경환·황우여 부총리, 김희정 여성가족부장관에 이어 유일호, 유기준 의원까지 내각에 합류하면 의원 출신만 6명이 되는 것도 논란거리다. 일각에서는 의원내각제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두 명의 장관 후보자들이 내년 총선에 출마할 경우 10달 만에 장관직을 던져야 하는데, 정책의 안정성은 뒷전으로 밀리는 셈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번 개각에 대해 "설 이후 청와대 개편까지 보고 말하겠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청와대 개편이 빠진 인사는 논평할 가치가 없고, 쇄신 여부를 지켜보겠다는 압박인 셈이다.

인사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은 정치권이나 국민들의 그것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문고리 3인방은 일부 업무조정으로 유임했고, ‘드물게 사심없는 분’으로 평가했던 김 실장은 그의 역할을 대체할 만한 인물을 찾지 못해 차일피일 교체를 미루고 있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란 말을 즐겨 쓸 정도로, 통치자에게 있어 인사는 국정운영의 알파요 오메가나 마찬가지다. 설 연휴를 지나면 박 대통령은 집권 만 3년차에 접어든다. 정권의 반환점이 가까워지고 있는 만큼 산적한 국정과제를 이행하기 위해 쇄신의지를 담은 비서실장 카드를 내놓기를 기대한다.

대통령을 주군(主君)이라고 부르는 봉건주의 사고방식의 비서실장은 정치권이나 언론, 민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초점을 대통령에게만 맞춘다.

100% 대한민국을 위해 귀를 쫑긋세우고 '끼리끼리'가 아닌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조언하는 비서실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벌오피스(백악관 집무실)의 책상에 걸터앉아 대통령과 자유롭게 토론하는 미국의 보좌진들처럼 말이다.

여기서 전제돼야 할 것은 대통령 스스로의 통치 스타일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재풀을 넓히고, 맡길 건 맡기고, 당정청과 적극 소통하는 민주적 리더십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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