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모처럼 홈에서 열리는 피겨 대회라 관심도 적잖았다. 시차 적응을 할 필요가 없는 데다 익숙한 경기장에서 홈 팬들의 뜨거운 성원을 업는다면 없던 기량도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때마침 '피겨 여왕' 김연아(25)는 최근 평창동계올림픽을 3년 앞둔 행사에서 "시차가 없는 것은 우리 선수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 터였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 금메달과 지난해 소치 대회 은메달 등 숱한 외국 대회를 치렀던 김연아이기에 의미가 있는 발언이었다. 평창올림픽을 염두에 둔 멘트였지만 4대륙 선수권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김연아 키즈들'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가능성은 확인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포스트 김연아'의 선두 주자로 상위권이 예상됐던 박소연(18 · 신목고)은 9위에 머물렀다. 13일 쇼트프로그램 53.47점과 15일 프리스케이팅 110.28점으로 163.75점으로 지난해 162.71점보다 조금 높아졌지만 순위는 나아지지 않았다.
쇼트프로그램에서 실수를 연발한 게 컸다. 프리스케이팅에서도 조금 더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지만 트리플 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에서 회전수 부족 판정과 함께 넘어지면서 수행점수(GOE) 2.10점이 깎였다.
막내인 채송주(17 · 화정고)도 예상보다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139.09점으로 13위였다. 3명 모두 우승자인 폴리나 에드먼즈(미국)의 184.02점과 20점 이상 차이가 났다. 2, 3위에 오른 일본 미야하라 사토코(181.59점), 혼고 리카(177.44점)와도 격차가 상당하다.
제 실력을 보이지 못해서 더 아쉽다. 김연아의 말대로 시차는 없었지만 부담감에 짓눌렸다.
박소연은 경기 후 "우리나라에서 열린 무대라는 긴장을 쇼트에서는 이기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부담이 커지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집중력도 흔들리게 되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려고 늘 노력하고 있다"면서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연습한 대로 차분히 경기해 나아진 모습을 보이겠다"고 강조했다.
1년 사이에 키가 4cm가 자랐다는 김해진은 "너무 빠르게 커서 축이 흔들리고 무릎과 허리에 충격도 많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다행히 성장통이 끝나가는 단계라 그동안 부상으로 많이 훈련하지 못한 것을 보완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평창올림픽은 4대륙 대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관심이 집중된다. 이미 박소연, 김해진은 지난해 소치올림픽도 경험했다. 경기 자체가 아닌 부담감과의 싸움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문제다.
물론 긴장감 극복의 가능성은 실력과 비례한다. 자기 기량만 보이면 된다는 생각은 실력이 있어야 성립되는 얘기다. "다른 선수 경기에 신경쓰지 않고 내 연기에만 집중했다"는 말은 김연아의 단골 레퍼토리다. 소치올림픽에서 논란 끝에 금메달을 놓친 뒤에도 김연아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앞서 언급한 선수들은 대부분 김연아를 보고 듣고 흠모하며 자랐다. 롤 모델로 삼고 있다. 기량뿐만이 아니라 그 배포와 멘탈을 배워야 할 부분이다. 그냥 닮아지지는 않는다.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야 한다. 평창올림픽까지는 3년이 채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