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스 주장 양동근(34 · 181cm)은 옆에 앉아 있던 SK 김선형(27 · 187cm)을 보며 "쟤는 모르겠지만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뛰기가 힘들다"고 짐짓(?) 하소연했다. 이어 "선형이는 한창이지만 나는 이제 은퇴를 해야 할 때가 됐나 보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요즘 뛰는 것 보면 40살까지 뛰겠다"는 기자의 말에 양동근은 "아니에요"라며 대번에 손사래를 쳤다. 김선형이 "동근이 형의 팀 장악력과 경기 조율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지만 양동근은 쉽게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양동근은 지난 시즌 2연속 팀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끈 뒤에도 쉬지 못했다. 국가대표팀에 차출돼 농구 월드컵에 출전했고,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끄는 등 반년 동안 쉴 틈이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시즌에 합류한 것이다.
양동근은 올 시즌 46경기 전 경기를 뛰며 평균 35분7초로 리그에서 가장 많이 뛰고 있다. 2위인 윤호영(31 · 원주 동부)의 33분44초보다 1분 20초 이상 많다. 경기 전 라커룸에서 만난 유재학 모비스 감독도 자못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유 감독은 "동근이가 핵심인데 이틀 전 경기(전주 KCC전)에도 40분을 다 뛰었다"고 염려했다.
▲경기 전 엄살, 결전에서 펄펄
그러나 양동근은 이날 경기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다소 풀어졌던 눈빛이 달라졌다. 정규리그 우승의 향방이 갈릴 수 있는 일전이었기 때문이다. 1위 모비스는 이날 지면 SK에 0.5경기 차로 쫓겨 선두를 장담하기 어렵게 된다. 여기에 유 감독의 KBL 첫 통산 500승이 걸린 경기이기도 했다.
양동근은 "사실 감독님의 대기록이 걸려 있는지도 오늘 알았다"면서 "물론 감독님의 500승을 만들어 드리고 싶지만 그런 생각보다 집중해서 이기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조금 전의 넋두리는 단순한 엄살이었다.
경기에 나서자 양동근은 이틀 전 풀타임을 뛴 34살 노장답지 않았다. 펄펄 날았다. 특히 승부의 추가 기울기 시작한 2쿼터 중반 이후 활약이 압권이었다.
수비가 되자 양동근이 공격에서 존재감을 뽐냈다. 4분 50초께 함지훈의 동점 득점을 어시스트한 양동근은 쿼터 종료 4분 전 통렬한 역전 3점포를 터뜨렸다. 1분48초 전에는 상대 허를 찌르는 레이업슛을 넣었다.
종료 1분10초 전에는 자신에 대한 집중 마크의 명을 받고 출전한 박형철을 속여 파울 자유투를 얻어내는 노련함을 뽐냈다. 2쿼터만 7점 3도움을 올린 양동근을 앞세워 모비스는 40-35로 앞서 기선을 제압했다.
▲유재학의 수제자, 500승을 선물하다
후반에도 양동근은 발군이었다. 3쿼터 30초 만에 첫 포문을 3점포로 열었고, 20초 뒤 상대 실책까지 유도했다. 뱅크슛에 가로채기, 도움, 공수 리바운드까지 원맨쇼로 SK 코트를 휘저었다. 모비스는 3쿼터까지 58-45, 13점 차로 앞서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었다.
4쿼터에도 양동근은 SK가 쫓아오던 중반 잇따라 레이업슛을 성공시켜 추격 의지를 꺾었다. 종료 6분 35초 전 가로채기에 이어 속공에 나선 양동근은 6분6초 전에도 환상적인 레이업슛을 넣어 64-53 리드를 이끌었다.
더욱이 모비스는 이날 유재학 감독의 역대 최초 통산 500승(384패, 승률 5할6푼6리)을 달성해 의미가 깊었다. 5000석 규모 홈 구장에 6775명 올 시즌 두 번째 많이 들어찬 울산 관중이 환호를 보냈다.
무엇보다 유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양동근이 500승 달성에 맨앞에 섰다. 이날 양 팀 최다 22점에 6리바운드 5도움을 올렸다. 2004-05시즌 신인 때부터 명가드 유 감독의 혹독한 조련을 받은 양동근은 4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며 KBL 최고 가드로 우뚝 섰다.
경기 후 유 감독은 양동근의 말을 전해듣더니 "누구 마음대로 은퇴하느냐"고 펄쩍 뛰면서 "동근이가 오늘은 감독을 위해 열심히 뛴 것 같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양동근의 은퇴 발언은 그야말로 허언, 유 감독의 600승 이상을 이끌지도 모르겠다.